산업 대기업

삼성 'C랩', 저시력 장애인의 빛이 되다

권승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8.20 19:11

수정 2017.08.20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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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보조 앱 릴루미노 개발 기어VR로 윤곽선 등 파악
사업화 가능성 높은 과제에 임직원 스타트업 설립 지원
삼성중심 R&D생태계 계획
삼성전자 '릴루미노' 팀원들이 시각장애인들이 사물이나 글자를 보다 뚜렷이 볼 수 있게 보조해 주는 애플리케이션 '릴루미노'를 시연하고 있다.
삼성전자 '릴루미노' 팀원들이 시각장애인들이 사물이나 글자를 보다 뚜렷이 볼 수 있게 보조해 주는 애플리케이션 '릴루미노'를 시연하고 있다.

저시력 장애를 가진 한빛맹학교 학생이 '기어VR'을 착용하고 앞자리에 앉아 있던 엄마를 알아봤다. 학생의 시력은 책이라도 읽을라치면 책에 얼굴을 파묻다시피 해야지 느릿느릿 읽을 수 있는 정도였다. 학생은 "일반인의 세계를 느껴볼 수 있었다"며 감격했다. 그 모습을 본 아이의 엄마는 소리 죽여 눈물을 흘렸다.


삼성전자는 18일 시각 보조 애플리케이션 릴루미노를 공개하며, 한빛맹학교 학생이 기어VR을 통해 이를 체험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선보였다. 라틴어로 '빛을 되돌려준다'는 뜻의 릴루미노는 삼성전자가 창의적인 조직문화 확산을 위해 실시하고 있는 C랩(Creative Lab)에서 개발됐다. 아이디어를 처음 제안한 조정훈 크리에이티브 리더(CL)는 '재미로 하는 가상현실(VR)이 저시력 장애인들의 '등불'이 되게 하자'는 목표로 릴루미노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가상현실, 저시력 장애인들의 어둠을 밝히다

조정훈 CL은 삼성전자 내에서 프로토콜 분석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우연히 그는 잔존시력이 남아있어 빛과 명암을 구분할 수 있는 저시력 장애인이 전체 시각장애인의 86%에 달한다는 사실을 접했다. 이후 그는 휴대폰과 VR을 통해 조금이나마 시력을 교정할 수 있는 방안을 고심했다. 그 결과, 지난해 5월 조 CL의 아이디어는 삼성전자 C랩의 과제로 선정됐다.

릴루미노는 기어VR에 장착된 스마트폰의 후면 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영상을 변환 처리해 시각장애인이 인식하기 쉬운 형태로 바꿔준다. 릴루미노는 △윤곽선 강조 △색 밝기.대비 조정 △색 반전 △화면 색상 필터 기능을 제공한다. 더불어 일부 시야가 결손된 시각장애인을 위해 이미지 재배치 기능도 제공한다.

앞으로 조정훈 CL은 안경 형태의 제품을 개발해 시각장애인들이 일상생활에서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김찬홍 한빛맹학교 선생님은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는 좋은 도구가 생긴 것 같다"며 "이 사업이 지속성을 가지고 더 많은 저시력인들에게 좋은 솔루션이 될 수 있도록 회사에서 많이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연구개발(R&D) 생태계 씨앗 될 삼성전자 C랩

조정훈 CL이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기술 개발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C랩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삼성전자는 2012년부터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 C랩을 실시했다. 이재일 삼성전자 창의개발센터 상무는 "기존의 인사 체계에서는 창의적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웠다"며 "이를 뛰어넘어 창조적 성과를 내고자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다"고 말했다.

C랩에서는 각 팀원에게 완전한 자율권이 부여된다. 아이디어가 채택되면 주 제안자가 CL이 돼 자율적으로 팀원을 모으고 예산도 편성한다. 심지어는 근무 장소와 근무 시간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C랩 외부에 있는 삼성전자 임직원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 상무는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자신의 경험을 녹여주는 등 삼성전자의 집단지성이 적극 활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C랩에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과제까지 총 180개 과제가 수행됐다. 이 중에서 사업화 가능성이 높은 과제에 대해 삼성전자는 임직원들이 스타트업을 설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현재까지 25개 C랩 과제가 스타트업으로 독립했다. 대표적으로 사용자의 허밍으로 작곡하는 앱을 개발한 '쿨잼컴퍼니'는 최근 세계 3대 음악 박람회 '미뎀랩(MIDEMLAB) 2017'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C랩을 통해 삼성전자 중심의 R&D 생태계를 만들 계획이다.


이 상무는 "(임직원들이 창업한) 회사들이 성공하게 되면 삼성전자로서는 우군 세력을 확보하는 셈"이라며 "삼성전자 중심의 R&D 생태계를 형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창업 이후 실패한 임직원들에게 경력 채용의 길도 활짝 열어뒀다.
이 상무는 "밖에서 창업을 통해 배운 기업가 정신은 큰 경험"이라며 "경력직에 지원할 시 더 좋은 평가를 줄 뿐 아니라 직급도 올려서 채용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ktop@fnnews.com 권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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