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사태 재발 방지책' 만든다던 정치권의 침묵

송성훈,김태준 2017. 8. 20.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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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제도적 재발방지장치 마련 약속했지만 불발
'정경유착' 적폐, 당사자인 정치권에서 먼저 풀어야

지난해 12월 6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재계 총수 9명이 한꺼번에 국회로 불려갔다.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다. 한국 재계는 착찹했다. 1988년 12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재단 모금 비리 관련 국회청문회 장면이 그대로 재현됐기 때문이다. 출석한 총수들도 그들의 2, 3세로 바뀐 것말고는 28년전 국회 청문회의 판박이였다.

아직도 후진적인 '정경유착'이 근절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전국민이 낙담했고, 정치권은 여야 구분없이 앞다퉈 재발방지책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한국사회에 '정경유착의 종언'을 고하자는 목소리가 높았다.

청문회에서 '앞으로도 정부가 내라고 하면 다 낼 거냐'는 국회의원 질문에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국회에서 입법해 이를 막아달라"고 부탁까지 했을 정도다. 강제성이 있는 기부금이나 성금을 법으로 차단시켜달라는 부탁이었고, 정치권도 적극 호응했다.

그로부터 8개월. 그 사이에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됐고, 새 정부가 출범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재판도 빠르게 진행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심 선고가 이제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같은 상황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던 지난 연말의 정치권 약속은 아직까지 이뤄진게 없다. 한국사회에 다시는 정경유착이 자리 잡지 못하게 하는 법적 장치나 제도적 재발방지책, 그 어느 것도 마련되지 않았다.

당시 더불어 민주당은 '정경유착방지법'과 '부정축재방지법'을 제정하겠다고 국민들과 약속했고, 올해 1월 인명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은 '정경유착형 준조세 금지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 법안들은 새정부 초기 인사청문회를 두고 여야가 기싸움을 벌이면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야당뿐만 아니라 민주당 내부에서도 집권 후 정경유착 근절에 대한 입법활동에는 다소 관심이 멀어진 상황이다. 여당이 지난 17일 적폐청산위원회 첫 회의를 가졌지만 대부분의 여당의원들은 이 위원회의 실체와 기능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이 위원회는 법·제도 개선, 국정농단 재판상황 종합 점검, 각 부처별 적폐청산 법·제도 개선 방안 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여당의 한 의원은 "적폐청산위가 구성됐지만 무엇을 하는 조직인지에 대해서는 여당의원들도 거의 모른다"며 "구색갖추기용 조직이라 실질적으로 의미있는 결과를 끌어낼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기업들의 정치자금을 좀더 수월하게 받을 수 있는 법안은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중앙당이 정치자금을 모금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정치자금법 개정안'은 지난 6월22일 국회본회의에서 상정돼 재석의원 255명 중 찬성 233명, 반대 6명, 기권 16명으로 압도적으로 가결됐다. 이 법으로 인해 창당준비위원회를 포함한 중앙당은 연간 50억 원까지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고, 선거가 있는 해는 두 배인 100억 원까지 모금할 수 있게 됐다. 한 사람당 후원금 상한선은 500만원까지다.

6월 임시국회에서는 2번의 본회의가 열렸는데, 통과된 법안은 중앙당 후원회 부활을 담은 정치자금법 개정안이 유일하다. 당시 인사청문회로 인해 국회가 파행되는 가운데에서 정당은 자기들 밥그릇 챙기는 데 여념이 없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대선 이후 본회의를 통과한 법이 거의 없는데 이 법만은 일사천리로 통과됐다"며 새정부가 적폐청산 일환으로 전 정권에서 벌어진 정경유착 고리를 끊겠다고 하는 데 정치권은 기업들로부터 돈을 더 받겠다니 국민들로부터 인정을 받을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정치권이 나몰라라 하고 있는 가운데 그나마 기업들은 제2의 최순실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삼성을 시작으로 대기업들은 올해 상반기 주주총회에서 관련 규정들을 일부 개정했다. 일정규모 이상의 기부금이나 성금에 대해서는 반드시 이사회 의결을 거치도록 한 것이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기업들이 아무리 다양한 장치를 마련한다고 해도 정권을 잡은 정치권이 변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며 "이번처럼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상황에선 기업은 또다시 얽혀들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5년마다 바뀌는 정권과는 달리 사업의 영속성을 고민하는 기업에겐 생존의 문제"라며 "정경유착 근절을 위해 공직사회와 사회적 제도까지 모두 바뀌어야한다"고 덧붙였다. 재계는 지난주 국세청장의 발언을 의미있게 보는 분위기다. 지난 17일 한승희 신임 국세청장은 "세정의 정치적 중립성 만큼은 철저히 지켜지도록 저부터 결연한 의지를 갖고 실천하겠다"고 밝혔다. 정권에 의한 하명 세무조사를 않겠다는 얘기다.

[송성훈 기자 / 김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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