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물고기, 온난화를 견딜 수 있을까

원호섭 2017. 8. 20.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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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데브리스 일리노이대 교수 특별기고
아서 데브리스 교수 <사진제공=일리노이대>
남극에 사는 물고기는 '특별한' 것이 있다. 수온이 0도에 가까운 차가운 바닷물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일반 물고기와는 전혀 다른 생리기작이 필요하다. 이를 돕는 것이 바로 '비동결 단백질(AFP·Antifreezing protein)'이다. 이를 처음 발견한 과학자는 미국 일리노이대의 아서 데브리스 교수. 그는 1964년 남극 물고기를 조사하던 중 AFP를 발견했고 이후 관련 연구의 세계적 석학으로 불리고 있다.

올해 1월, 극지연구소는 남극에서 피가 하얀 물고기인 '남극빙어'를 잡은 뒤 국내 실험실로 가져와 유전체 연구를 하고 있다. 데브리스 교수는 지난 5월 극지연구소 방문시 한국의 많은 독자들이 남극빙어와 관련된 기사를 읽고 큰 관심을 보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직접 쓴 기고를 매경에 보내왔다. 그는 "한국 독자들에게 남극 물고기의 중요성과 향후 연구가 갖고 있는 가치에 대해 알리고 싶다"고 전했다.

큰머리 남극 암치아목. 이 특별한 그룹의 어류는 일년 중 대부분을 해수온이 빙점(영하 1.9도)에 이르는 남극해에 서식한다. 남극 암치아목에는 대략 120여종의 물고기가 있으며 남극해 전체 어류 생물량의 약 90%를 차지한다. 이들은 차가운 남극해에 생존하기 위해 특별한 진화를 이어왔다. 먼저 '부레'가 없다. 다른 물고기처럼 헤엄을 치기 위해 남극 암치아목은 뼈의 미네랄 함량을 줄여 가벼워지는 길을 택했다. 산소가 풍부한 차가운 물에 살다보니 헤모글로빈도 필요없다. 적혈구가 부족하기 때문에 이들은 투명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남극 빙어다.

큰머리 남극암치 <사진제공=극지연구소>
모든 남극 암치아목은 차가운 바닷물에 노출되어 있는데 생존을 위해서는 체액의 어느점이 해수보다 낮아야만 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AFP다. AFP는 비단 기초연구에만 활용되는 것이 아니다. 북극해 인근의 양식장에서는 차가운 물로 인해 어류가 폐사면서 경제적인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 AFP의 기작을 다른 물고기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면 양식·식품산업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AFP는 이미 아이스크림 산업에 활용되고 있다. 다국적 식품회사인 유니레버사는 북극 등가시치에서 분리한 AFP를 대량생산한 뒤 이를 아이스크림에 첨가해 판매하고 있다. AFP가 포함된 아이스크림은 아이스크림 안에서 얼음이 생기는 것을 막아 부드러운 맛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다. 이 아이스크림은 지방 함량도 낮다. 지방 함량을 낮추면 어는점이 높아지면서 얼음 알갱이가 많이 생기는데 AFP를 넣으면 지방이 적으면서도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을 만들 수 있다.

남극 암치아목 중 까다로운 종이 바로 '큰머리 남극암치'다. 많은 남극 암치아목 종의 물고기들이 연약한 뼈대를 갖고 있어 포획시 생존이 어려운 반면 큰머리 남극암치는 온 몸이 비늘로 덮여있어 튼튼한 성질을 갖고 있다. 이 개체들은 상당히 강하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냉수가 반드시 필요하다. 만약 6도 이상의 수온에 1주일 이상 머무르면 하나둘 목숨을 잃는다. 극지연구소는 남극에서 큰머리 남극암치 50여마리를 잡은 뒤 아라온호를 이용해 무사히 한국에 있는 실험실까지 옮기는데 성공했다. 특히 1kg 이상 되는 큰 남극 어류를 북반구에 있는 실험실로 옮긴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 극지연구소가 설계한 냉장실 수조 덕분에 가능했다.

극지연구소가 향후 이 물고기로 연구하려는 주제는 상당히 중요하다. 지구 온난화 시대에 남극의 차가운 바닷물에서 사는 어류의 생존 가능성 여부를 확인할 수 있어서다. 이 어류들은 수천만년 동안 지속적으로 차가운 환경에 노출되어 온 만큼 따듯한 물에 대한 적응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남극의 수온이 올라가고 있는 상황에서 남극 어류 생물량의 90%를 차지하는 물고기의 생존 능력을 사전에 파악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생존을 위한 마지노선인 6도 이상의 해수에 노출될 때 이들이 살아남지 못한다면 남극 생태계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큰머리 남극암치를 1시간 정도 10도의 따듯한 물에 노출시킨 뒤 꼬리의 혈액에서 RNA를 분리해 내 조사할 수 있다. RNA가 온도 스트레스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거꾸로 살아남는다면 AFP는 그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또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큰머리 남극암치의 부화, 산란 과정 등도 파악해 낼 수 있다. 이같은 연구는 어류 서식 환경을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는 냉각시스템을 구비한 극지연구소에서만 가능하다. 이들의 연구는 향후 남극 어류 생물학자 뿐 아니라 많은 분야의 과학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데 일조할 것이다.

[아서 데브리스 일리노이대 교수 / 원호섭 기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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