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스터디 가입부터 좁은 문..'스펙' 장벽에 서러운 취준생들

박영주 입력 2017. 8. 20.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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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면접, 토익 900점 이상, 출신 학교 커트라인까지
입사시험 전 스터디 가입 '테스트'부터 각종 스트레스
취준생 75% '취업 스터디 가입 진입 장벽 있다' 응답
"좁은 취업 문 뚫기 위해 멤버 선택 신중 당연" 반론도

【서울=뉴시스】박영주 이종희 기자 = 취업준비생(취준생) 김모(25·여)씨는 매일 오전 서울 봉천동 집 앞에 있는 커피숍으로 간다. 취업 준비만 온전히 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에 '스터디그룹' 가입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금융계 취업을 준비하면서 정보를 얻고 싶어 스터디그룹에 가입하려고 했지만 기본적으로 스펙(spec·조건)이 안 되면 받아주지 않는다"며 "스터디그룹 가입 조건인 900점 이상의 토익점수를 만들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씨는 "입사시험 전에 스터디그룹에서부터 받아주지 않아 상처가 됐지만 혼자 취업을 준비하는 게 버거운 것이 사실"이라며 "같은 직종을 희망하는 경쟁자들과 공부하면 자극도 받을 수 있고 정보도 얻을 수 있어 자격요건을 갖춰 스터디그룹에 다시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주요 대기업의 하반기 공채가 이달 말부터 시작되는 가운데 상당수 스터디그룹에서 텃세와 '갑(甲)질' 행태가 나타난다고 취준생들은 호소한다.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영어면접을 보거나 출신 학교 커트라인을 정하는 식이다. 취업하기 위해 가입하는 '스터디모임'까지 가입 요건이 까다로워지면서 취준생들을 두 번 울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송모(31)씨는 "스터디라는 게 보통 지인 2~3명으로 시작해서 외부인을 모집하는데, 첫 모임에서 기존 멤버들이 나를 상대로 오리엔테이션 면접을 진행했다"며 "마음에 드는 사람을 걸러내기 위해 나를 테스트한 것처럼 느껴져 기분이 나빴다"고 토로했다. 송씨는 "며칠 뒤 스터디원(스터디그룹 일원)으로 부족했다는 취지의 통보를 받았다"고 전했다.

최모(30)씨는 "영어 회화 실력이 떨어지는 편이라 주1회 하는 영어 회화 스터디를 신청했었다"며 "첫날 가보니 기존 가입자들의 실력이 굉장히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 주 스터디 날짜가 다가오는데도 장소나 시간을 알려주지 않아 공고가 났던 사이트에 들어갔더니 새 스터디원을 모집하고 있었다"면서 "알고 보니 나를 두고 '모의면접'을 진행했던 것"이라고 불쾌해했다.

취업포털사이트 인크루트가 최근 취준생 회원 46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234명(50%)이 '취업스터디에 신청·참여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266명은 '취업스터디 가입에 진입장벽이 있다'고 대답했다.

또 53명은 취업스터디 모집에서 탈락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25명은 취업준비 경험 부족을, 19명은 서류·인적성·면접 등 공채 전형별 합격 경험이 없었음을 취업스터디 탈락 이유(복수응답)로 꼽았다.

스터디그룹 측에서는 구성시 스터디원을 신중히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반박한다. 너무 친해 긴장감이 떨어져서는 안되며 주는 정보만큼 받을 정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입요건을 둘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김모(26·여)씨는 "처음에 스터디원을 모집했을 때 가입제한을 두지 않았더니 모임 때마다 지각하거나 온갖 핑계를 대고 빠지는 사람들이 있었다"며 "그러다보니 스터디 진도가 제대로 안 나가고 분위기마저 흐트러졌다. 결국 스터디를 해체했다"고 설명했다.

신모(27·여)씨는 "모집 공고를 '토익 900점이나 해외 거주 경험 2년 이상' '서울 중·상위권 이상 대학 출신'으로 올렸더니 지원자는 급격히 줄었지만 실속은 있었다"며 "취미 모임도 아니고 좁은 취업 문을 뚫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인데 스펙 제한을 해서 성공률을 높여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냐"고 반문했다.

전문가들은 취업스터디의 이런 행태가 경쟁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한다. 초·중·고등학교 때부터 자연스럽게 몸에 익힌 경쟁의식을 그대로 드러내는 행위라는 것이다.

고려대 황명진 사회학과 교수는 "스터디그룹은 서로 의지하며 공부하는 모임이지만 최근 목표나 성과를 정해놓고 경쟁하면서 본질을 잃어버렸다"면서 "좁은 취업 문을 뚫어야 하다 보니 공부도 경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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