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한예지 기자] '택시운전사' 천만 관객 돌파를 기념해 영화 속 숨은 의미를 되짚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영화 '택시운전사'가 20일 오전 8시 기준으로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로써 2017년 첫 천만 영화이자 통산 19번째 천만 영화이며, 한국 영화 중에선 15번째로 천만 영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됐다.

'택시운전사'(감독 장훈·제작 더 램프)는 1980년 5월, 서울의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이 통금 시간 전까지 광주에 다녀오면 큰돈을 준다는 말에 독일 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를 태우고 아무것도 모른 채 광주로 가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그날의 진실과 이로 인해 변모하는 인물의 변화와 감정의 폭주를 통해, 그날의 광주에 대한 부채감을 대변하며 뭉클한 위로와 희망을 전하는 영화적 메시지는 천만 관객의 마음을 움직였다.

'택시운전사'의 천만 돌파를 기념하며, 영화 속 숨은 세가지 의미를 짚어봤다.


만섭이 바라본 붉은 빛 광주
극 중 만섭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특공조장 사복조장(최귀화)에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도망치던 골목에서 시민들을 트럭에 실어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계엄군들을 보게 된다. 비로소 광주의 실체를 보며 충격에 휩싸이는 만섭의 신은 붉고 습한 컬러로 표현된다.

송강호는 이에 대해 "광주 상황을 목도할 때, 사진과 영상으로만 봤던 것이 내 눈 앞에 실제로 벌어질 땐 아무리 촬영이라지만 연상이 되고 너무 고통스러웠다. 도망치다 고개를 돌렸는데 트럭이 보이지 않느냐. 그때 카메라도 깜빡깜빡이는데, 이는 만섭의 시선인거다. 내 눈에 보여지는 게 현실인가 꿈인가 하는 느낌을 준다. 몽환적이기도 하고, 어마어마한 혼란과 공포를 겪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훈 감독은 실제로 당시 사진을 봤을 때 광주의 밤 사진은 굉장히 어두웠다며 "총알을 막기 위해 창문을 이불로 다 막고 불빛을 차단해서, 광주의 골목들은 다 어두웠다. 몇개의 건물들은 화재로 활활 타오르고, 그 불빛으로 인해 주변히 밝혀지는데 다른 곳은 굉장히 어두워 공포스러운 느낌이 있었다"고 했다.

고립되고 갇힌 공간에 스모그로 가득찬 느낌이었고, 광주의 밤은 낮보다 더 공포감을 줬다고. 특히 5월 20일날 밤 광주 MBC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극 중 만섭은 이때 모두와 헤어지고 죽을뻔한 상황을 겪게 되는 것. 이를 "연출적으로 다른 신들에 비해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석했다. 사진에서 봤던 그 공포감을, 불빛이 주변에 번져가고 붉은 빛을 띠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는 감독이다.


왜 만섭은 피터와 만나지 않았을까

실제의 김사복처럼, 극 중 김만섭도 결국 피터를 만나지 않는다. 영화란 장르의 극적 요소를 위해 두 사람이 재회하는 신이 그려졌어도 좋을 뻔 했다. 하지만 장훈 감독은 이에 대해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는 "만섭은 용기를 내 유턴을 해서 다시 광주로 돌아갔지만, 그의 목표는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보통의 사람이 인간의 도리를 지키기 위해 큰 용기를 낸 것 뿐"이라며 "만섭의 캐릭터로서 도달점은, 만섭이 자신의 임무를 지키는 것이었다. 상식적으로 돈을 받았으니 손님을 태우고 목적지로 가야 하는거다. 그 일이 목숨을 걸만한 위험한 상황이 됐는데도 이를 해냈다는 건 인간으로서의 도리였다. 만섭이 그날을 겪기 전과 후는 물론 달라졌겠지만 그는 영웅이 아닌 여전히 보통사람이었다"고 했다.

또한 당시는 피터로 인해 외국에 광주 민주화운동이 알려졌지만, 여전히 국내는 폐쇄된 시대였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만섭은 아마 제 이름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다고.


엄태구, '택시운전사' 방점을 찍다

엄태구는 극 중 비포장 검문소 중사 역을 맡아 극 후반부 강렬한 신스틸러 역할을 해낸다. 위압적인 표정과 낮게 깔린 목소리는 극적 긴장감을 한껏 고조하지만, 이후 그가 보인 태도는 비극의 시대에 놓인 또다른 인간군상의 모습을 보이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송강호 또한 해당 신이 가장 마음에 드는 신이라며 "실화이기도 하고, 그 장면은 시나리오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에 들었다. 이 모든 아픔은 광주 시민의 아픔이겠지만, 여기엔 이 작전에 고통 받으며 투입됐던 군인들의 아픔도 있었다. 결국 시대의 아픔을 이 한 장면으로 표현해내며, 영화가 지향하는 지점도 뚜렷했다"고 표현했다. 모두의 아픔을 극복하고 치유해야 한단 그 신에 담긴 메시지가 인상깊었다고.

앞서 전작 '밀정'에서도 엄태구와 함께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송강호는 이번 '택시운전사'에서의 엄태구 역할은 자신의 "반추천"이 있었다며 "'밀정'에서 엄태구를 봤는데 정말 기가 막힌 친구였다. 그 사이에 감독님이 해당 배역을 찾는데 제가 추천해서 오디션을 보게 된 것"이라고 뿌듯해했다. 실제 촬영 당시 엄태구가 뿜어내는 긴장감이 상당해, 현장에선 하중사로 불렀다고.

장훈 감독 또한 엄태구 캐스팅 비화에 대해 "사실 그 역할이 한 신 밖에 나오지 않지만 임팩트가 있어야 하고, 작은 반전이 있기에 캐스팅에 고심했던 중요한 역할이었다. 많은 배우들을 만나봤지만 느낌이 딱 와닿는 배우가 없었다. 그러다 송강호 선배가 '밀정'을 하고 오셔서 엄태구 씨 이야기를 하더라"고 귀띔했다. 애초 미장센 단편영화제 심사위원을 하며 엄태구의 작품을 봤었단 그는 그제야 엄태구를 떠올렸고, 실제 만나서 어떤 느낌일지 대사 리딩을 요청했는데 읽는 순간 바로 확신을 했다고.

장훈 감독은 엄태구와 다음 작품에서도 함께 호흡을 맞춰보고 싶지만 "아끼고 잘 보여주고 싶은, 그만큼 애정있는 배우라 정말 아무 역할이나 맡기고 싶지 않다. 엄태구 씨가 더 잘할 수 있고 그의 진가를 더 발견할 수 있는 그런 역할을 맡기고 싶다"며 넘치는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티브이데일리 한예지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영화 '택시운전사' 포스터,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