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주식처분 갈림길 ..매각하거나 매각당하거나

송진식 기자 2017. 8. 20.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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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삼성생명, 삼성물산 등 주요 그룹 계열사들이 밀집해있는 서울 서초동 ‘삼성타운’에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 이준헌 기자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매각’ 문제가 정치권을 중심으로 공론화되고 있다. 삼성생명은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의 지분 8.24%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7월 말 기준 보유지분의 시세가치는 무려 32조원에 달한다.

정치권에서는 ‘경제민주화’를 내건 문재인 정부 집권기야말로 그간 온갖 특혜 논란을 빚어온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보유 문제를 해소할 적기라고 판단하고 있다.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상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의 금융회사는 그룹 내 비금융회사 지분을 5% 이상 취득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이에 따르면 삼성생명 역시 삼성전자의 지분을 5% 이상 가질 수 없지만, 참여정부 당시 법 개정 이전에 취득한 주식에 대해선 예외를 인정해준 탓에 삼성생명은 계속 삼성전자의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특혜 비판 받아온 취득원가 기준
삼성생명의 최대주주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20.76%)이다. 삼성생명의 2대주주는 삼성물산(19.34%)인데,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17.08%)이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의 2대주주이기도 하다. 삼성 총수 일가가 5%대의 턱없이 적은 지분으로 삼성전자를 ‘지배’할 수 있었던 핵심 원동력 중 하나가 삼성생명이다.

삼성전자 지분 매각 문제는 삼성그룹의 지주회사체제 전환을 위해서라도 피해갈 수 없는 필수과제다. 삼성도 마냥 이 문제를 외면할 수만은 없다는 얘기다. 정부와 정치권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아직 순환출자 문제를 안고 있거나 경영승계 초기과정에 있는 다른 재벌기업들도 큰 영향을 받게 될 전망이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 일부 혹은 대부분을 매각해야 하는 상황은 크게 두 가지 경우로 나눠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삼성이 지주회사체계로의 개편과정에서 자의로 주식 매각에 나서는 경우다. 전문가별로 시점이나 방식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삼성그룹 구조개편의 큰 축 중 하나는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하는 금융지주회사 설립이다. 삼성생명을 금융지주회사로 만든 뒤 삼성화재, 삼성카드 등 금융계열사를 자회사로 편입하는 방식이다.

최고의 삼성 전문가로 꼽히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역시 지난해 2월 경제개혁연대에서 발간한 ‘삼성그룹의 금융지주회사 설립에 대한 분석과 전망’ 보고서에서 “향후 1~2년 내 금융지주회사 전환작업이 공식화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의 당시 예측은 정확했다. 삼성은 공개적으로 금융지주회사 설립을 인정하거나 언급한 바 없지만 실제로는 물밑작업을 통해 부지런히 금융지주회사 설립을 준비 중이었다는 사실이 공교롭게도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 재판과정에서 밝혀졌다. 공판을 통해 확인된 증언 등에 따르면 삼성은 지난해 1월 금융위원회에 회사 분할과 삼성전자 주식 매각 문제에 대한 자체 보고서를 만들어 “실현 가능성을 검토해 달라”고 타진했다.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하려면 금융위의 사전 승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삼성생명은 이에 대해 “강화되는 국제 회계기준에 맞춰 회사를 개편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해명했지만, 재계에선 이를 금융지주회사 설립을 위한 준비작업으로 해석하고 있다.

삼성생명이 금융지주로 개편하면서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하는 방안은 정부나 삼성에나 최선의 방식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이른바 ‘삼성 특혜’에 대한 짐을 덜 수 있고, 삼성 입장에선 이재용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지주회사체계로의 그룹 구조개편에 속도를 더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해야만 하는 정반대 시나리오도 있다. 바로 보험업법이나 보험업법 감독규정 개정을 통한 삼성전자 지분에 대한 사실상의 ‘강제매각’ 조치다.

■금융지주 전환 시 ‘매각기간’이 관건
보험사의 경우 보험업법 제106조에 따라 대주주 및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회사의 채권이나 주식을 소유할 때 총자산의 3% 이하 금액만 쓸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삼성생명의 경우 올 3월 기준 총자산은 약 199조원이므로 원칙적으로는 삼성전자의 주식을 최대 약 5조9700억원까지 보유할 수 있다.

하지만 삼성생명은 시세가치가 30조원이 넘는 삼성전자 주식을 계속 보유해 왔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하위 보험업법 감독규정에서 보험사가 보유 중인 주식의 가치를 평가할 때 시세가치(공정가치)가 아닌 취득원가를 기준으로 하도록 하고 있는 탓이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를 취득할 당시 총원가는 5조6716억원으로 최대 보유한도인 5조9700억원에 약간 못미친다.

취득원가를 기준으로 하고 있는 이 감독규정은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삼성을 위한 전형적인 특혜 규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학계에서도 은행 등 다른 금융권과는 달리 유독 보험사에만 취득원가를 적용하는 규정을 놓고 문제제기가 있어 왔다. 여당 내부에서도 이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많았고, 이종걸 의원 등은 현행 ‘취득원가’ 기준을 ‘공정가치’ 기준으로 바꾸도록 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기준 변경은 금융위가 현행 규정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가능하다. 기준이 바뀔 경우 삼성은 최단 1년부터 최장 7년 이내에 법적 주식 보유 허용한도 금액(5조9700억원)을 초과하는 26조원가량의 삼성전자 주식을 의무적으로 매각해야 한다.

■보험업법 개정안 통과될까
보험업법 개정이나 감독규정 변경을 통한 강제매각은 이 부회장 입장에서는 피하고 싶은 일이다. 이 경우 주식 매각으로 얻는 차익 대부분을 유배당 계약자나 주주들에게 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부회장 입장에서는 최대한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의 주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이 나은 선택이다. 금융지주회사로 삼성생명을 전환할 경우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라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특수관계인 중 ‘최대주주’만 아니면 된다. 이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2대주주인 삼성물산의 지분율(4.57%)보다 낮게만 지분을 유지하면 문제가 없다. 현재 보유 중인 지분 중 3.91% 정도만 매각하면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역시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니다. 지분 3.91%만 판다고 해도 매각대금이 10조원을 훌쩍 넘어간다. 이 덩치 큰 주식을 언제 누구한테 얼마에 파느냐도 관건이다. 주식 대량매각으로 인한 주가 하락 등 부가적인 문제도 걸린다는 게 삼성생명의 입장이다.

무엇보다 최대 관건은 실제 매각에 나설 경우 얼마 동안의 기간에 걸쳐 매각을 하느냐 여부다.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매각 기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유배당 계약자들에게 환원해줘야 할 차익이 커지기 때문이다. 경제개혁연대가 올 2월 발표한 ‘삼성그룹의 지주회사 전환 등에 따른 삼성생명 유배당 계약자에 대한 배당문제’ 보고서를 보면 ‘삼성전자 지분 전량 매각’을 가정할 때 삼성생명이 1년 내 지분을 매각할 경우 유배당 계약자들에게 돌아가는 배당 재원은 약 3조9000억원인 데 비해 7년간에 걸쳐 지분을 매각할 경우 배당 재원은 1조8567억원으로 2조원 이상 차이가 난다.

삼성생명의 경우 삼성전자 주식을 취득할 당시 ‘자금’은 모두 유배당 계약자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왔다. 주식 취득이 이뤄진 1990년대 이전에는 삼성생명이 유배당 상품만 팔았기 때문이다. 유배당 계약자들의 돈으로 산 주식인 만큼 최대한 이들에게 많은 배당이 돌아가도록 하는 게 상식적이지만 삼성의 ‘본심’은 그렇지 않다는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정무위)실의 김성영 보좌관은 “삼성이 금융위에 삼성생명 분할 문제 검토를 의뢰했을 때 사실 최대 쟁점은 주식 매각기간을 7년으로 해달라는 것이었다”며 “하지만 금융위는 난색을 표하며 2년 내 매각 방침을 고수해 계획이 실행되지 못한 것”이라고 밝혔다.

본래 금융지주회사법 상 이 같은 초과지분 매각 시 기본 5년이 주어지고, 금융위는 상황을 고려해 최장 2년까지 매각기간을 추가로 부여할 수 있다. 삼성 측은 이를 근거로 매각기간을 7년으로 요구했지만 당시 보고서를 검토한 금융위 관계자는 “삼성생명은 보험사라 규정상 2년 이내로 해야 한다”며 반려한 것이다. 방영민 삼성생명 부사장은 이 부회장 공판에 출석해 “2년 내 지분을 매각하라는 금융위 요구는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가 불가능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삼성의 ‘본심’이 드러남에 따라 금융지주 전환이 진행될 경우 주식 매각기간을 어떻게 설정하느냐를 놓고 상당한 논란이 일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생명의 금융지주 전환 문제와는 별개로 주식평가액 기준을 공정가치로 변경하려는 움직임은 계속 진행 중이다. 이종걸 의원이 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의 경우 보험업법 감독규정을 직접 공정가치 기준으로 고쳐놓았다. 대신 달라진 법 적용으로 지분을 매각해야 할 경우에는 7년에 걸쳐 매각하도록 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삼성에 대한 특혜도 없애는 동시에 단기간 주식 매각으로 인한 시장 혼란, 주주가치 훼손 등을 막기 위한 절충안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 여부는 미지수다. 발의 때부터 이미 ‘삼성을 겨냥한 표적입법’이라는 반론이 제기된 데다, 개정안에서 제시한 ‘7년’의 매각기간이 지나치게 길다는 지적도 일각에서 나온다.

공정가치로 변경하는 것은 금융위가 자체 감독규정만 고쳐도 가능한 일이지만 재계는 당장 실현될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우선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이 내용이 들어 있지 않고, 무엇보다 금융위가 적극적이지 않아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개정안에 대한 국회 정무위원회의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위는 “보험은 장기계약의 성격을 가지므로 단순한 자산가치 변동에 따라 평가기준을 바꾸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고 밝혔다.

법 개정이나 규정 변경을 통해 기준을 바꾼다 해도 삼성생명이 인적분할 등을 통해 금융지주 전환을 추진할 경우 이 법을 적용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 지적도 있다. 경제개혁연대 이은정 실행위원은 “인적분할로 보험회사가 신설회사의 주식을 신규 취득한 것으로 볼 때 자산운용 규제의 기준을 취득가로 할지 시가로 할지에 대한 명확한 해석도 없고 사례도 없다”고 밝혔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7월 14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발의된 ‘퇴로차단법’ 주목
이와 함께 삼성생명의 전자 지분 매각을 ‘촉진’할 또 다른 법안이 발의돼 있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11일 법률의 제·개정으로 특정 주주의 지분 매각이 강제되는 경우, 불가피한 사유에 한해 특정 주주가 해당 지분을 매입하는 것을 허용하는 내용의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재 논의되는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매각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막대한 금액의 주식을 제대로 처분하기 어렵다는 문제다. 박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이 지분을 매각할 때 주권상장법인인 삼성전자가 예외적으로 이를 바로 사들일 수 있게 된다. 단, 이 예외 적용에 따른 단서조항에 따라 삼성전자는 사들인 지분을 즉시 소각해야 한다. 삼성 측이 그간 전자 지분 매각에 대해 “처분 자체가 곤란하다”며 퇴로로 삼아왔음을 빗대 재계에서는 이 법을 ‘퇴로차단법’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김진방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식 대량매각 시 문제가 되는 건 가격 조작 등의 부정거래 문제인데 예외적으로 합법적인 길을 열어두는 것은 합리적으로 보인다”며 “다만 지분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일부 주주들의 반발이 있을 수 있겠지만 시장가격에 합당하게 매입해 소각한다면 주주가치 훼손 등의 문제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에서 직원들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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