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기자의 두번째 도전①] "또 아이 가져 죄송합니다"

김노향 기자 2017. 8. 20.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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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1년차 기자이자 머지않아 두 딸의 엄마가 되는 워킹맘입니다.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 전업주부로 전향했다가 10개월 만에 이직에 성공했고 이후 1년8개월이 지난 지금 둘째아이의 출산과 육아를 위해 휴직합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고민과 선택이 있었습니다. 저의 경험과 정보를 독자들과 나누려고 글을 연재하기로 했습니다.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지난주 회사에 휴가신청서를 냈다. 3개월의 출산휴가와 3개월의 육아휴직이다. 법정 휴가기간보다 짧고 누군가에겐 쉬운 출산·육아휴가인데도 새삼 꿈같았다.

기자는 1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마음놓고 육아휴직을 낼 수 있는 회사에 다녀본 적이 없다. 그래서 첫아이를 임신하고 공백기를 가지면서 10년의 커리어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임신·출산과 함께 회사를 떠났던 선후배 동료들을 떠올리면서. 한때는 기자라는 직업이 지긋지긋하기도 했지만 영영 작별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슬퍼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아기가 태어나면서 바뀐 일상. /사진=김노향 기자

그런 내게 한번도 아닌 두번의 임신이 찾아왔다. 다행히 새직장에서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출산·육아휴가를 낼 수 있었다.

"저… 둘째아이를 갖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계획에 없던 임신이긴 했지만 나도 모르게 "죄송하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상사와 동료들 중에는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사람도 있었고 "반가운 소식은 아니네"라는 말도 들었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다짐했는데도 스스로 위축되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때마침 회사가 연중 가장 바쁜 시기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닌지 눈치가 보였다.

근로기준법은 누구에게나 출산·육아휴가를 보장하지만 모든 사람이 권리를 누리는 건 아니다. 차별이나 편견으로 아니면 전혀 다른 이유로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실제로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육아휴직 급여를 처음 받은 사람은 8만3612명으로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약 8.5%다. 그러나 회사규모에 따른 격차는 ▲100인 미만 기업 1% ▲중견·대기업 3.2%로 3배 이상 났다. 또한 육아휴직자 가운데 남성근로자 비율은 11.3%로 10명 중 1명 수준이다.

최근 인터뷰한 대기업건설사의 과장은 아내의 반복된 유산과 아이의 정서불안으로 육아휴직을 신청하면서 사내 첫 '아빠 육아휴직자'가 됐다. 그런데 가장 힘들었던 점이 상사나 동료들의 편견이 아닌 경제적 문제였다고 한다. 현행법상 육아휴직 급여의 상한선은 한달 75만원으로 자녀 있는 가정이 경제생활을 유지하기엔 부족한 금액이다. 특히 주택담보대출 이자 등을 갚아야 하는 대부분의 평범한 도시근로자 같은 경우 더욱 그렇다.

또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은 육아휴직에 대한 차별이 없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닌 경우가 많다. 육아 복지가 최고 수준인 공무원임에도 육아휴직을 냈다가 인사 불이익을 받은 취재원도 있었다. 인사 담당자는 업무순환을 위해서라고 설명했지만 육아휴직자 입장에서 보면 차로 두시간 거리를 출근해야 하는 근무처에 발령받았으니 불이익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공무원도 그렇다는데 이 땅의 많은 예비엄마가 출산휴가 3개월을 내면서도 죄인처럼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설령 육아휴직 1년을 온전히 쉴 수 있는 회사라도 진심으로 축복받으며 떠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마저도 일부에게는 배부른 소리지만 말이다. 중소기업 종사자나 비정규직, 프리랜서에게는 육아휴직 자체가 다른 세상의 일이다.

아이 한명도 키우기 힘든 세상에 둘째가 생겼다. /사진=김노향 기자

한편으로는 어렵게 복직에 성공하고도 일과 육아의 기로에서 분투하는 다양한 유형의 워킹맘이 있다.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주말마다 찾으러 가는 엄마, 중국인 베이비시터와 한집에서 먹고 자는 엄마 등이다. 얼마 전까지 나는 그 많은 워킹맘 중에도 드문 편에 속하는 '외벌이 엄마'였다. 남들은 "요즘 유행하는 육아아빠!"라며 감탄했지만 우리 부부의 속사정은 달랐다. 생후 8개월의 아기를 돌보던 베이비시터가 갑자기 그만두겠다고 통보했을 때는 입사한 지 불과 6개월째였다. 남편은 회사에 육아휴직을 신청했다가 거절당했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건 상상할 수 없었고 다른 베이비시터를 구하는 일도 중간에 지쳐서 포기했다. 둘 중 한사람은 사표를 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친정엄마는 지방에 사는 데다 시어머니는 직장을 다녔는데 만약 한분이 아이를 돌봐준다고 했어도 육아만은 우리 부부의 힘으로 해결하고 싶었다.

우여곡절 끝에 다음주면 둘째아이 출산을 위한 휴가가 시작된다. 우리 부부는 어쩔 수 없이 경제적 가장을 번갈아 맡으며 생계형 직업인의 길을 걷고 있다.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 하지만 지난 1년 반의 경험은 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큰 행복과 삶의 의미를 찾아준 일이기도 했다.

지금 나에게 힘이 되는 존재는 남편도 아이도 아닌 같은 처지의 워킹맘들이다. 선배들도 친구들도 했고 지금도 많은 엄마들이 자기 커리어를 지키기 위해 눈물을 훔치며 하루를 견딘다. 이런 사실이 위로가 돼준다. 앞으로 6개월 회사를 떠나며 이 엄마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아기도 낳은 우리가 이 세상에 못할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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