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의 닭진드기 전쟁은 어떻게 외면당했나?

박은하 기자·정상빈 인턴기자 2017. 8. 19. 15:3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8월 16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의 한 농장에서 방역당국이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계란을 폐기하고 있다./연합뉴스

135억6000만. ‘천문학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될 이 숫자는 뭘까.

지난해 한국에서 소비된 계란의 양이다. 빵과 과자, 라면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먹은 것을 포함해 한 사람당 계란 256개를 먹은 셈이다. 한 해에 이만큼이나 생산하려면 닭은 몇 마리나 있어야 할까. 농림축산식품부의 통계자료를 보면 2017년 7월 기준으로 전국의 ‘산란용 닭’ 5738만2929마리가 지난 석 달 동안 하루 평균 계란 3497만8257개를 낳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00만개가량 감소한 수치다. 조류인플루엔자의 여파 때문이다. 전국의 농장에서 키우는 닭의 수는 훨씬 더 많다. 알을 낳는 닭(산란계) 외에 고기용 닭(육계)도 있기 때문이다. 산란계 양계장의 절반 가까이가 3만 수 이상을 기른다. 살아있는 닭들을 돌보며 3억개의 계란을 쏟아내는 이들 양계장의 하루하루는 얼마나 ‘전투적’일지 상상해볼 수 있다.

8월 14일부터 전국 양계장의 계란 출하가 ‘올스톱’했다. 계란 껍데기에서 ‘피프로닐’ 등 인체에 유해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기 때문이다. 농식품부는 전국 산란계 농장 1239곳을 대상으로 전수조사에 들어갔다. 18일 기준 ‘친환경농장’ 포함 총 45곳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돼 소비자들의 분노와 충격을 자아내고 있다. 공장식 축사의 문제가 거론되며 동물복지농장이 대안으로 급격히 부상하고 있다. 문제는 조류인플루엔자 등 몇 년째 유사한 문제가 쳇바퀴 돌듯 반복돼 왔다는 점이다. 소비자와 농업당국이 계란가격 외에는 무심했던 탓이 가장 크다.

경기도의 한 농장에서 양계장을 운영하는 ㄱ씨(54)는 며칠째 끔찍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ㄱ씨는 남편과 태국 등지에서 온 이주노동자 3명과 함께 다섯 명이서 닭 3만마리를 돌보고 있다.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아 친환경농장으로 인증 받은 곳이다. ‘살충제 계란 ’ 뉴스가 터지고 나서 농림부 검역관이 찾아와 계란 1판을 무작위로 가져갔다. 검역관은 “아마 사흘 후에는 계란을 출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사태는 일파만파 커져갔다. 미심쩍게나마 믿었지만 기대도 접은 상황이다.

■정부도 소비자도…농가와 악조건은 관심밖
오히려 ㄱ씨의 농장에서도 ‘살충제 계란’이 나왔다는 잘못된 보도가 나가 한바탕 난리가 났다. 다행히 언론사에 항의해 기사는 재빨리 지웠지만 쏟아지는 비난을 견디기 어렵다. 외지인이 오가는 통에 전염병이라도 돌지 않을지 가슴은 벌렁벌렁하기만 하다. 농장에서 살충제 계란이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살충제를 뿌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충제를 뿌리지 않기 위해 ㄱ씨 농장 사람들이 기울이는 노력과 처한 환경은 전혀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은 억울하기만 하다. “환경이 악조건인데 정부에서 제시하는 것은 없고, 문제가 터지면 검사하고, 영업정지나 벌금을 때리며 책임을 지라고 하죠. 이러니까 양계를 다 안 하려 하죠.”

‘악조건’이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문제의 발단이 된 ‘닭진드기’의 정체부터 살펴보자. 닭진드기는 ‘와구모’, ‘닭이’ 등으로 불린다. 유럽과 아시아의 농가를 괴롭혀 왔다. 0.7~1.0㎜ 크기의 절지동물로 닭의 배설물과 사료 등에서 번식해 성체가 되면 닭의 깃털 아래 붙어서 피를 빨아먹고 산다. 일선 농가에서는 조류인플루엔자(AI)보다 훨씬 두려운 존재다. AI는 가을철 등 특정 계절에 주로 찾아오지만 닭진드기는 사시사철 발생한다. 습하고 무더운 여름철의 발병률이 더 높기는 하다. 닭고기나 계란의 품질에 영향을 미쳐 인체에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도 모기에 물리면 가렵고 짜증이 나듯이, 닭들에게 가려움·불면증·스트레스를 유발해 산란율을 20%까지 떨어뜨린다. 닭장에 갇혀 있는 닭들은 목욕도 못 하니 더욱 고통이 크다. 닭진드기가 닭들에게 장티푸스 등의 병을 옮긴다는 점도 문제다.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가금연구소는 국내 양계농가의 닭진드기 감염률을 94%로 보고 있다. 사람 역시 아무리 깨끗하고 좋은 집에 살아도 여름철 모기에 완전히 물리지 않을 방법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독일, 네덜란드 등 축산 선진국에서도 감염률은 80%에 달한다.

‘피프로닐’ 파동도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부터 시작됐다. 벨기에의 농장에서 검출된 피프로닐은 한국에서 검출된 양의 30배에 달한다. ‘악조건’이라는 것은 이런 환경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농민을 괴롭히는 심각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축산업을 한 이상 각오해야 하는 ‘당연한 조건’에 가깝다. 이 조건에서 괴로워하는 것이 농민뿐이라는 점이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아우성을 치는데 방법이 없어요. 조심하라고만 하지 정부에서 딱히 제시하는 조건은 없어요. ‘이것은 된다, 저것은 안 된다’ 이런 기준도요. 한 달에 한 번 지역 양계협회에서 모임이 열리면 그 자리에 나가 농장주끼리 서로 노하우를 주고받아요.” 경기농업기술원은 지난해 전북 남원의 풍년종계원 이춘겸씨를 닭진드기 퇴치 우수사례로 선정했다. 이씨는 석회를 이용해 인체에 무해한 닭진드기 퇴치법을 개발했다. 이것도 이씨가 일본의 농가를 방문하면서 알게 된 노하우였다. 상당 수 장·노년 이상의 농장주와 이주노동자들로 이뤄진 국내 농가에서 자체적으로 과학적·효율적인 진드기 퇴치법을 개발하기란 쉽지 않다.

■정작 살충제에 가장 노출된 이들은 농민
이 같은 사례 발굴을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당국이 연구에 완전히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 피프로닐이 처음 검출된 지역인 경기도 남양주시는 문제가 터지자 동부팜한농이 2014년 개발한 ‘와구프리 블루’라는 친환경 살충제를 지난해부터 보급했다고 밝혔다. 책임을 개별 농장에 돌린 모양새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충제’가 농민들에게는 매력적인 대안이 된다. 정확히는 유일하게 선택 가능한 방법이 된다. ‘닭진드기’를 퇴치하려면 계사의 닭을 모두 비우고 소독해야 한다. ‘3만마리’나 되는 닭을 일거에 비우기는 쉽지 않다. 육계농장이라면 가능하다. 고기용으로 닭들을 싹 팔고 빈 계사를 소독한 다음 다시 병아리들을 채워넣는다. 그러나 산란계 농가에서는 계속 닭들이 계란을 생산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위생적 소독’을 감행했다가는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는다.
2012년 8일 인천 강화군 불은면의 양계장에서 한 축산농민이 윗도리를 벗은 채 달걀을 수거하고 있다. 당시 폭염으로 이 농가의 3만5000여마리 닭 중 300여 마리가 폐사했다.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결정적으로 ‘닭진드기’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사람이 피해를 입는다. ㄱ씨가 말했다. “닭진드기가 사람에게도 옮겨 붙어요. 방치하면 속옷, 생식기 등에도 들어가요. 살충제는 정말 ‘살기’ 위해서 뿌리는 거예요.” 이 문제에 대한 뚜렷한 해결법은 나오지 않았다. 닭이 스스로 모래목욕을 해서 진드기를 제거하는 방법을 제외한 각종 친환경적 방법들 역시 농업노동자가 겪는 어려움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지 않는다. 닭진드기가 농업노동자에게 옮을 틈도 주지 않고 값싸고 재빠르게 박멸할 수 있는 방법은 살충제뿐이다.

수의사와 의사, 정부당국과 연계하는 제대로 된 농업 방역업체가 없다는 점도 원인이다. 일본에서는 수의사의 진단을 받고 약을 처방하면 이를 방역업체가 체계적으로 살포하며, 지방정부가 이를 관리하는 시스템이 비교적 잘 돼 있다. 지난해 AI가 몰아쳤을 때 일본에서 살처분한 가금류의 수가 90만마리에 불과했다는 점이 이를 보여준다. 한국의 경우 3000만마리 이상을 도살했다. 한국의 경우 구제역 등을 계기로 한우농가에서 시도되지만 양계농가에서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지방정부에서 지방직 공무원으로 수의사들을 채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수 등 처우의 메리트가 없고 승진에도 불리해 인기를 끌지 못한다. 구제역·AI 등으로 급하게 필요할 때만 쓰다 보니 고도의 전문지식과 기술, 농장과의 유대감이 필수인 방역사들은 계약직으로 채용돼 단기적으로만 일하는 경우도 많아 현장과 당국 간의 불신을 키운다. 윤종웅 한국가금수의사회 회장은 “한국에는 공공수의사라는 개념은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책의 공백을 파고드는 것은 농약회사다. ㄱ씨도 닭진드기 문제로 지방자치단체나 농업 관련 기관의 전화를 받은 적은 없지만 농약회사의 홍보전화는 받아봤다. 당연히 살충제 살포의 결과에 대해 말해주지는 않는다. 닭진드기 문제가 해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것은 농약에 내성이 생겨 점점 더 박멸하기 어려워진 까닭도 있다. 서상희 충남대 수의과대 교수는 “국가의 과학기술심의위원회에서도 이런 농민을 위한 기술의 연구개발은 뒷전으로 밀린다. 농업과 농민이 그만큼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때문”이라며 “농민들이 고군분투 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 2분기 평균을 조사한 것으로 8월 14일부터 실시된 전수 조사 대상 농장의 수와 차이가 있다.

‘친환경 농장’에서 ‘살충제 계란’이 나온 것에 대한 분노가 크지만 이상한 일은 아니다. 현재 HACCP 등에서 발행하는 등급체계는 3등급으로 이뤄진다. 일반 계란, 무항생제 인증 계란, 유기 축산물 계란이 있다. 공장식 축산이라도 사료에 항생제를 넣지 않으면 친환경으로 인증 받는다. 즉, 동물과 생산자는 무관하게 소비자에게 위해한가 여부만 관건이다. 동물에게 투여하는 항생제나 의약품은 반드시 수의사의 진단과 처방을 받도록 하고 있지만 농약은 해당 사항이 없다. 즉 독성물질인 농약은 관리체계가 없다. 정작 ‘살충제’에 가장 많이 노출된 것은 농민이다. 결국 문제의 근원은 닭도, 닭을 기르는 이도 생물이라는 데서 오는 셈이다. 여기에 산업의 논리가 한 번 더 개입해 문제의 구조를 완성하는 것이다. ‘살충제 계란’에 분노하며 농가를 질타하는 한국 사회의 민낯이자 진짜 ‘악조건’인 셈이다.

최세현씨가 운영하는 경남 산청의 ‘간디 유정란 농장’ /간디 유정란 농장 제공.
■살충제에 분노하지만 계란값 인상은 가능할까?
악조건은 ‘동물복지농장’을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동물복지농장’이 동물을 위해, 동물을 기르는 사람을 위해, 그리고 소비자들을 위해 훌륭한 것은 모두가 주지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양계장이 동물복지농장으로 전환하지 못하는 것은 농가의 탐욕이나 무지 때문이 아니다.

경남 산청에서 최세현 대표가 운영하는 ‘간디 유정란 농장’은 동물복지에 신경쓰는 농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닭은 1000마리만 키운다. 사육과정에서 항생제를 쓰지 않는 것은 물론, 닭들에게 순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풀어놓는다. 암탉과 수탉의 비율도 적정수준으로 유지한다. 최 대표 혼자서 운영하는데 이 정도 규모면 운영에 어려움이 없다. 무리를 해서 일하지 않아도 되고, 닭들을 좁은 공간에 몰아넣을 필요도 없다. 직거래를 통해 소비자들에게는 계란 한 알당 1000원에 판다. ‘작은 규모의 농장’을 유지하기 위해선 비싸게 팔아야 한다. 맛 좋은 친환경 달갈로 이름 높은 ‘청리 토종란’의 경우 한 알당 500원선에 팔린다. 농식품부의 조사를 보면 지난 2분기 일반란의 경우 양계장의 생산가는 한 판(30알)당 5904원, 도매가는 7050원, 소매가는 8362원이다. 한 알에 생산가 약 190원, 소매가 약 280원에 팔리는 셈이다. ‘동물복지농장’으로의 전환은 135억개 이상의 계란 생산량을 포기하는 동시에 1알에 280원가량으로 공급되는 값싼 계란도 포기하는 셈이다. 식당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계란찜이나 계란말이 서비스를 포기하는 길이기도 하다. 최 대표는 “개별 농가는 하청 및 납품구조로 인해 이윤이 박하다. 구조적 문제가 굉장히 큰 부분이다. 점진적으로 변화시켜나갈 수밖에 없다”며 “농가에만 적용되는 엄격한 품질인증제도 등을 이번 계기를 통해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살충제 계란 파동이 남긴 커다란 상흔은 중소규모 농가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는 점이다. 한편에서 동물복지농장을 이야기하는 한편 ‘값싼 계란’을 원하는 쪽에서는 대기업 식품육가공업체의 관리를 받는 농장의 수직적 계열화를 지지하는 목소리를 보인다. 하지만 ‘닭고기 시장’을 보면 이 역시 대안이 아니다. 한국에서 양계업이 권장된 것은 1960년대부터다. 당시는 농가소득의 증대를 위해 집집마다 논·밭농사 외에도 닭·돼지 등의 경제동물을 기를 것을 권했다. 노태우 정부 때 조금씩 기조가 바뀐다. 1986년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정부는 양계업의 현대화와 과학화를 추진했다. 정부 보조금까지 지급하며 개별 계사의 규모를 늘리도록 했고, 사설 도축을 금지하고 현대화된 시설을 갖춘 곳에서만 도축을 허용했는데, 이때 성장한 기업이 하림이다. 한국 육계의 경우 87%가 ‘하림’과 계약한다. 즉 양계업의 과학화와 현대화는 하림을 정점으로 한 닭고기 시장의 수직계열화 구조를 탄생시켰다. 산란계도 ‘살충제 계란’ 파동을 통해 이 같은 구조로 재편하자는 목소리다. <대한민국 치킨傳>의 저자인 농촌사회학자 정은정씨는 “하림이나 SPC 등 대기업과 계약하는 경우 해당 기업이 농가의 위생 및 안전관리까지 도맡아 하는 경우로 오해받지만 실제로는 납품된 고기의 질만 검사하며, 안전 및 위생은 개별 양계장이 책임진다. 대기업은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는 동시에 원가절감을 위해 각 양계장을 경쟁시켜 저가 생산체계를 유지한다”고 말했다. 결국 ‘양계장의 하루하루’는 똑같아지는 셈이다. 그나마 양계장 입장에서 대기업의 수직계열체제로 들어갔을 때 이로운 것은 정기적으로 수입이 들어온다는 점이지만, 납품기준을 맞추기 위해 개별 농민은 더욱 큰 부담을 진다. 조금이라도 이득을 더 내기 위해 사육 두수를 늘리고 더 초과노동하지만 그렇게 나빠진 사육환경은 AI로 되돌아온다. ‘계열화’에서 답을 찾는 전략은 ‘출구전략’ 없는 구조로 들어가는 셈이다.

8월 16일 경기 남양주시의 한 양계장 직원이 기계를 이용해 게란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 농민이 일하는 계사와 소비자에게 보낼 계란 분류 공간의 이미지는 사뭇 다르다. /김영민 기자

■피할 수 없는 현대식 축산의 재조

전국에서 계란 출하가 중단됐지만 양계장에서의 계란 생산이 중단된 것은 아니다. 현대축산은 공장에 곧잘 비유되지만 공장과 달리 문제가 생기더라도 ‘가동 중지’는 불가능하다. 닭들은 여전히 사료를 먹고 배설을 하며, 양계장은 사료를 공급하고 전력을 들여 계사의 위생을 유지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드는 비용은 고스란히 양계농의 빚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양계협회조차 반성문에 가까운 논평을 낸 상황에서 ‘억울함’을 호소할 자리는 좁다. 곧 AI의 계절도 몰아친다. 자신의 양계장에 문제가 없어도 지역 내 농장에서 한 곳이라도 발생하면 닭들을 도살시킬 준비를 해야 한다. 방사형 농장에서도 ‘시즌’이 되면 닭들을 풀어 키우지 말라고 농식품부의 ‘지도’를 받는다. ㄱ씨는 “반복되는 이 과정이 너무 괴롭다”며 양계업계를 몇 년 후 그만둘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식 축산의 재조정은 피할 수 없다. 책임 있게 점진적으로 조정해나가는 것이 관건이다. 지난해 하반기 AI로 계란 한 판의 소매가가 8000원까지 올랐을 때 언론은 이를 ‘계란파동’이라고 보도했다. 현재 동물복지농장에서 직거래로 제공하는 판매가보다 비싸지 않다. 그러나 김재수 당시 농식품부 장관은 계란값 안정을 위해 수입까지 추진했다. 정은정씨는 “AI 등은 때때로 시장을 조정하는 기능을 한다. 현재의 저가 시스템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결국 시장조정을 통해 적절한 시스템을 찾아야 하는데, 정부는 계란 수입 카드로 양계농가만 압박해 이 기회를 놓쳤다. 김재수 전 장관의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문홍길 국립축산과학원 가금연구소장은 “동물복지농장이 이상적이지만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해관계가 맞아야 한다. 동물복지와 관련해 설문조사하면 소비자들은 ‘(동물복지농장에서 생산된 농산물이 가격이 올라도) 사먹겠다’고 응답하지만 실제 사먹는 수는 응답률에 미치지 못한다. 100% 동물복지농장으로 전환한다면 계란 수급을 맞추지 못하고 물가가 폭등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의 시스템을 유지하자는 말은 아니다. 문 소장은 “케이지식 농장에서도 점진적으로 가축 밀집도를 개선하고, 닭진드기 문제는 수의학, 곤충학, 영양학, 화학 등 과학자들이 합동으로 연구를 해서 친환경적인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점진적인 방법이라도 시행이 된다면 계란값은 반드시 오른다. 농민도 소비자도 행복할 수 있는 적정한 계란값은 얼마일까? 한 알에 250원? 500원? 1000원? 어느 선에서 답을 찾고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박은하 기자·정상빈 인턴기자 eunha999@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