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준의 한국은 지금] 미움받는 거리 노점상.."상생은 필요하다"

이동준 입력 2017. 8. 19. 13:29 수정 2017. 8. 19.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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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기준 서울에만 7718개의 노점상이 운영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중 23.8%에 해당하는 1839개 노점상은 구청 통제에 합법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나머지는 모두 불법이다.

노점상은 세금을 내지 않고 현금거래만 하며, 위생문제와 통행에 불편을 준다는 이유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다.

그중 동네를 돌아다니는 ‘차떼기 노점상인(화물차 한 대분의 상품을 한꺼번에 구매해 파는 상인·이하 상인)’은 앞서 시선과 주민들 눈치를 봐가며 장사해 더 힘든 상황이라고 말한다.
과일과 채소를 파는 상인. 차를 대고 손님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 미움받는 이유, 주택지 소음유발…“듣기 싫어도 반강제”
“어묵이 왔습니다. 부산에서 항공으로 직송한 부산 어묵. 지금 나와 많이들 들여가세요”

직장인 A씨는 상인이 주말 아침부터 스피커를 쩌렁쩌렁하게 틀며 꿀잠을 깨우는 통에 토요일, 일요일에도 이른 아침 강제 기상한다.
어쩌다 한 번이 아닌 매주 소음에 시달린 A씨는 차로 달려가 항의하려 했지만 “부모 같은 분이 생계를 위해 거리로 나왔을 텐데..“라는 생각으로 창문을 닫아 소음을 줄이는 쪽을 택한다.

재수생 딸을 둔 B씨 역시 상인에게 좋지 않은 감정이 있다.
B씨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아파트단지 인근에서 장사하는 상인 탓에 딸이 짜증 내며 도서실에 가곤 한다”며 “물건사면서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하지만 그때뿐”이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어 “없는 살림에 학원비로도 모자라 도서실 비용이 추가로 들어 가계에 부담”이라며 “집에서 뒷바라지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미움받는 이유, 허위과장 광고…“모르는 것 아냐”
상인 중에는 현지에서 물건을 가져와 파는 예도 있지만, 다수는 농수산물 도매시장에서 물건을 구매해 마진을 붙여 되판다. 이러한 사실은 대부분이 알고 있다.
그렇지만 앞서 어묵 상인처럼 과장된 광고를 내보내 불신을 자초한다.

한 주부는 “집에서 살림하는 아줌마라고 모르는 거 아니다”라며 “터무니없는 광고를 들으면 신뢰가 떨어져 구매할 마음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또 신선한 과일을 싸게 판다는 광고를 듣고 찾아가 보면 상태가 좋지 않거나 일부 비양심적인 상인은 바구니 윗부분만 깨끗한 제품을 올려 눈속임 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 한 상인에게 복숭아를 구매했는데 바구니 위쪽에 있던 3개를 제외하곤 상태가 좋지 못했다.

구매 전 확인하지 않은 잘못도 있지만 믿고 구매하기 힘든 상황으로, 요즘처럼 더운 날 냉장시설 없는 차에서 “현지에서 갓 잡아 올린 신선한 생선을 판다”는 광고를 믿는 주부들은 없다. 그래서 구매로 이어지지 않고 불편한 감정만 쌓여간다.
냉장시설을 갖춘 상인도 있지만, 형편상 그러지 못한 상인도 있다.
■ “먹고 살아야 하는데..”
이 같은 상황. 대형마트, 인터넷 쇼핑이 일상화해 구매자가 줄은 탓도 있지만, 상인들은 과거와 달라진 영업환경과 곱지 못한 시선에 힘들다고 말한다.

한 상인은 “스피커를 틀지 않으면 주민들이 쳐다도 안 본다”며 “세상이 각박해져서 먹고살기 힘들다”고 푸념했다.
상인 말을 들어보면 장시간 스피커를 틀지 않고, 볼륨을 낮추는 등 주의를 기울이지만 원치 않는 소음을 발생한다는 지적은 피할 길이 없었다.

또 다른 상인은 “목 좋은 아파트단지는 경비원이 막아 들어가지도 못한다”며 “큰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좋은 물건을 근처까지 가져와 싸게 파는데 막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전에는 차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단골도 많았지만 요즘은 그럴 수 없다”며 “물건 사는 사람도 줄고 입구부터 막혀 자리 잡고 장사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들 상인에게 문제로 지적된 세금, 현금거래, 위생, 소음, 과장 광고, 통행 불편 등으로 불편과 불신을 초래한 것 아니냐는 질문을 던져 봤는데 “상품은 좋고, 특히 신경 쓴다”는 말이 돌아왔다. 다른 질문에는 무응답이었다.

■ 30주년 맞은 노점상 운동…"상생 필요하다"
지난 6월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는 민주노점상전국연합(민주노련)과 전국노점상총연합(전노련)회원들이 노점생존권 보장을 요구했다.

이들은 "지자체가 '시민 보행권'과 '거리환경 개선'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철거가 아닌 상생으로 얼마든지 실현할 수 있다"며 "노점 철거를 위한 용역 투입에 예산 쓰는 것이 또 다른 적폐"라고 강조했다.
지난 6월 5일 민주노련과 전노련 회원이 노점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노점과 상생방안이 제시되지 못하는 지금 사회와 갈등 없이 장사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정비하는 등 상인들의 한숨을 덜어줄 현실적 대안은 필요해 보인다. 반면 영세하다는 이유로 지적된 문제를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넘기며 상생을 주장할 것이 아닌, 개선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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