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 연습실]마음속 더 큰 울림의 역설 '침묵의 피아노'

조은아 피아니스트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7. 8. 18.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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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연습실에 피아노를 하나 더 들여놓았습니다. 아담한 디지털피아노(사진)인데요. 본래의 용도라면 전기의 힘을 빌려 소리를 내지만 멀찌감치 플러그를 치워 버렸습니다. 그러니 88개의 건반을 제대로 갖추었어도 소리는 먹통일 수밖에요. 이 악기에 매료되었던 계기는 역설적이게도 ‘무성(無聲) 피아노’의 기능 때문이었습니다. 흥미로운 연습 방법들을 발굴했거든요. 덕택에 비록 말문이 막힌 피아노라 할지라도 이 악기와 소일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소리가 나지 않는 피아노와 연습하다보면 신체동작을 좀 더 면밀히 점검할 수 있어 유익합니다. 보통의 악기에선 몸의 움직임이 음색의 굴레, 혹은 청각에 묶여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무성 피아노에선 촉각과 근육이 전혀 새로운 인지를 일으키게 되더군요. 이 동작이 꼭 필요했던가, 왜 유독 이 악절에서 근육이 뭉치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새삼 진지하게 마주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때 억눌린 청각은 한편으론 전혀 새로운 ‘청각적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물리적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마음 안의 울림은 무궁무진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거든요. 들리지 않는 소리가 더 큰 울림을 일으킨다, 얼마나 매력적인 역설인가요. 단 실제 활용할 땐 또각또각 건반소리에 방해받지 않도록 푹신한 헤드폰으로 귓바퀴를 무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소리 없는 피아노의 또 다른 진가는 ‘경청’에 있습니다. 실내악이나 협주곡처럼 여러 악기와 협업을 이루는 작품에서 정말 반짝이는 역량을 발휘합니다. 며칠 전 실내악 연주에서 큰 도움을 받았는데요. 심지어 중독성까지 느꼈던 연습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실내악·협주곡 음반을 풍성한 음량으로 틀어놓습니다. 이때 피아노 파트는 무성 악기로 온 힘을 다해 연주합니다(그러나 들리진 않죠). 이렇게 연습하다보면 내 육중한 소리에만 매몰되어 있던 이기적 관성을 깨닫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동시에 다른 악기들의 여러 성부들이 생생히 살아나는 ‘입체적 경청’을 경험하게 되지요. 피아노는 본질적으로 고독한 악기라 푸념해 왔건만, 무성 피아노는 ‘함께 어울릴 궁리’를 제시해 놀랍더군요.

독주곡에도 이 연습 방법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습니다. 다른 연주자의 음반을 걸어놓고 그의 연주가 마치 나인 듯 무성 피아노를 연주해봅니다. 내가 허투루 흘려버렸던 악절들이 의외의 순간에 빛을 발할 때, 템포를 밀고 당기는 루바토가 나의 어조와 사뭇 다를 때, 내 고착된 습관을 돌이켜보게 되더군요. 그의 연주를 통해 그로 살아보는 것, 역지사지의 또 다른 경지일지 모릅니다. 내 해석과의 교집합이 반갑다가도 나와 전혀 다른 여집합이 참신하게 느껴져 스스로의 객관화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소리가 나지 않는 침묵의 악기는 마음속 더 큰 울림과 경청, 역지사지와 객관화를 이끌어냅니다. 매력적인 역설을 지닌 악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 속 연습실 - 그 첫 이야기, 독자 여러분과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앞으로 연습실과 세상을 잇는 글쓰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조은아 피아니스트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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