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은 선거 중] 관록의 9선 정치인vs37세 진보 여성

이왕구 입력 2017. 8. 18. 18:32 수정 2017. 8. 18.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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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3일 뉴질랜드 총선

국민당 잉글리시 집권땐

반세기만에 4선 정부 탄생

젊고 신선한 아던 내세워

노동당, 열세 딛고 대추격전

최대 쟁점 주택문제 놓고 열기 고조

재신다 아던 노동당 대표가 16일 선거 유세를 위해 찾은 크라이스트처치의 애딩턴 초등학교를 찾아 휴대폰을 찍고 있다. 크라이스트처치=AP 연합뉴스

‘보수당(국민당) 4선 정부냐, 노동당의 권토중래냐.’

내달 23일로 예정된 총선거를 앞두고 뉴질랜드에도 선거열기가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뉴질랜드는 1938년 이래 중도 우파인 국민당과 중도 좌파인 노동당이 3년마다 치러지는 총선을 통해 번갈아 집권해왔다. 1960~1972년 집권한 국민당 정부가 유일한 4선 정부다. 2008년 총선에서 노동당으로부터 정권을 빼앗아온 국민당은 이번 총선 승리로 근 반세기 만에 ‘4선 정부’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각오다. 단순다수제로 거대정당이 유리했던 과거와 달리 1996년 강력한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서 거대정당의 독주가 어려운 상황. 국민당이 이번 총선에서 수성(守城)에 성공한다면 그 의미가 남다르다. 반면 2008년 정권을 잃은 노동당은 총선을 치를 때마다 의석을 잃어 현재는 국민당(59석) 절반 수준(32석)으로 벼랑 끝에 몰렸다. 노동당은 환경정당인 녹색당(원내 3당), 민족주의 정당인 뉴질랜드 제일당(원내 4당)과 연정을 통해서라도 정권을 탈환하겠다며 절치부심하고 있다.

빌 잉글리시 뉴질랜드 총리가 지난 6월 국회의사당에 가는 길에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웰링턴=AP 연합뉴스

안정감의 잉글리시 vs 신선함의 아던

“따분할 것 같던 이번 선거가 진짜 경쟁으로 변했다.”

제니퍼 커틴 오클랜드대 교수(정치외교학)가 분석한대로, 지난 1월 총선일이 공고된 이래 반 년 이상 국민당이 안정적 우세를 유지하던 선거전은 이달 들어 크게 요동쳤다. 좀처럼 오르지 않는 지지율에 고민하던 노동당이 지난 1일 앤드루 리틀 대표를 반강제로 사퇴시키고 재신더 아던 부대표를 당 대표로 선출하면서다.

아던 대표는 젊고(37세), 진보적인 여성이라는 점을 내세워 바람몰이를 하고 있다. 현지 언론은 이를 ‘재신더 현상’, ‘젊은 지진(Youth-Quake)’으로 표현하고 있다. 현지 언론들은 벌써 아던을 ‘뉴질랜드의 힐러리 클린턴’이라 지칭하고 있다. 아던 대표 취임 직전 30석이던 노동당의 총선 예상의석(7월 30일ㆍ원뉴스)은 이후 41석(8월 9일ㆍ뉴스헙)으로 껑충 뛰면서 빌 잉글리시(56) 총리가 이끄는 국민당을 긴장 상태에 몰아 넣었다. 지난 11일 일간 뉴질랜드 해럴드가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 총리 후보감으로 아던 대표는 25% 지지를 받아, 잉글리시 총리(31%)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취임 즉시 “국민당 9년 정권의 현상유지 분위기를 일소하겠다”고 일갈한 아던 대표는 2008년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4선 의원. 짧지 않은 정치적 경력이지만 인기의 원동력은 젊고 신선한 이미지다.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과 홍보를 전공했고, 아침 TV쇼에 젊은 정치인을 대표하는 고정 패널로 출연하거나 여성잡지 모델로 나서기도 하는 등 미디어 활용에 능숙한 정치인이다. 트위터에 개인감정을 토로하거나 사생활을 공개하는데도 거리낌 없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열광하는 여성과 젊은층의 폭발적 지지를 받고 있다. 그는 이에 첫 공약으로 모성보호 정책을 내놨고, 대학생 생활비 지원대책 공약에도 공을 들이는 등 선거전에 뛰어들자마자 여성과 20~30대라는 핵심 지지층을 끌어들이는 데 전력투구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ㆍ산업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검증되지 않았고, 잉글리시 총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험이 부족해 보이는 게 약점이다.

2008년 총선 승리 후 8년간 국민당 내각을 이끌었던 존 케이 전 총리로부터 지난해 12월 당 대표와 총리 자리를 넘겨받은 잉글리시 총리는 관록을 자랑하는 9선 정치인. 가톨릭 신자로 종교와 가족의 전통가치를 중시하지만 동성결혼에 찬성하는 전향적 태도를 보이는 등 유연함으로 4기 집권을 겨냥하는 국민당의 새 간판으로 일찌감치 낙점받았다. 최근에는 소년범들을 군대식 훈련으로 교화해야한다며 병영형태의 훈련소 설치를 공약하는 등 ‘법치와 질서’를 중시하는 보수당 지지자들 구미에 맞춘 공약으로 집토끼 지키기에 나섰다. 아던 대표의 급부상에도 불구하고 국민당의 지지율은 크게 빠지지 않는 상황으로, 잉글리시 총리는 안정감을 앞세워 남은 기간 대세론 굳히기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선거 최대 쟁점은 주택문제 해결

뉴질랜드에선 1970년대 중반이후 국민당과 노동당이 복지정책과 선거제도 개편을 놓고 수십년 간 경쟁했지만 1996년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서 경쟁 양상이 바뀌었다. 소수정당의 목소리를 반영한 결과, 극단적이던 양당의 정책은 상당부문 중도로 수렴된 상태다. ‘뉴질랜드 정치에서 이데올로기는 사어(死語)가 됐다. 유일한 이념은 실용주의’(뉴질랜드 해럴드)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실제 이번 선거의 최대 쟁점은 주택문제다. 지난 1월 여론조사(로이 모건 리서치)에서 26%가 치솟는 주거비용ㆍ주택부족 등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빈부격차 해소(17%), 정부의 방만한 재정운용ㆍ정치적 리더십 문제(6%) 등이 뒤를 이었다. 뉴질랜드의 최대 도시 오클랜드는 홍콩, 시드니, 밴쿠버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주거비용이 비싼 도시로 국민당은 신혼부부 주택대출금 상향 및 8만5,000호 건설, 노동당은 주택청 설립과 10년간 10만호 건설 등 공약을 내걸고 표심잡기에 나섰다. 은민수 경기대 융합교양학부 교수는 “탄탄한 노후복지와 높은 주택보급률은 뉴질랜드 복지시스템의 양대 축”이라며 “한 때 80%에 이르던 자가소유율이 60%대로 낮아지는 등 시스템의 한 축이 흔들리며 선거쟁점으로 떠오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잉글리시 총리가 다음달 총선에서 수성에 성공한다면, 집권 중반에 바뀐 총리로는 74년 만에 승리를 지킨 총리가 되고, 아던 대표가 역전에 성공한다면 자신의 정치멘토인 헬렌 클락(노동당ㆍ1999~2008년 재임) 전 총리에 이어 사상 세번째로 여성 총리가 된다.

이왕구 기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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