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에게 새로운 점자책 세계 '선물'

이윤재 2017. 8. 18.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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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책 읽을 수 있게 점자책 제작 어려움 개선
제도와 규정 도움줬을땐 저예산으로 큰 혜택 가능..이것이 국가가 할 일이죠

민관협업으로 점자책 혁신 이끈 서주현 행안부 과장

"그동안 시각장애인들에게 책의 벽은 매우 높았어요. 책 하나가 점자책으로 제작되기 위해서는 그 긴 내용을 직접 타이핑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이마저도 자원봉사자가 없으면 힘들죠. 이뿐 아니라 점역(글을 점자로 번역하는 일)의 어려움부터 저작권 등에 이르기까지 애로사항이 많았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이 읽고 싶은 책을 마음대로 읽을 수 있게 해주는 일은 국가가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주현 행정안전부 협업정책과장은 평소 '아이디어 맨'으로 유명하다. 행정고시 합격 후 1999년부터 공무원의 길을 걸어 온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 재학 당시에도 새로운 트렌드에 늘 관심이 많은 학생이었다. 공무원 18년 차인 지금도 실종아동 찾기, 다문화가정을 위한 위키표지판 구현 등 정보기술(IT)과 '따뜻한 공무'를 접목하려는 혁신을 꾸준히 시도하고 있다.

최근 서 과장이 동료들과 함께해 온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책의 혁신' 업무는 독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인의 서재'에서 카드뉴스로 제작되면서 페이스북을 비롯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됐다. 평소 점자책 제작에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이 걸리는 상황을 개선하고자 나선 사례가 많은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 것이다. 문제를 풀기 위한 질문의 시작은 바로 '구글이나 애플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였다. 또한 이 사례는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가 쓴 '한국경제, 경로를 재탐색합니다'라는 책에서 정부 역할의 모범 사례로도 소개됐다.

"현재 시각장애인들이 읽을 수 있는 점자책은 그 종류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생업을 위해 꼭 필요한 자격증 교재나 이론서, 안내문 중심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문학 서적 등은 점자책으로 제작된 것이 별로 없습니다. 읽고 싶은 책을 못 읽거나 읽을 수 있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면 참 잔혹한 일이죠."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건복지부와 문화체육관광부의 관련 공무원들을 직접 만나러 다녔다. 또 점자도서관을 비롯해 점자 출판 관계자와 점역 기술이 있는 스타트업, 온라인도서 유통회사 등을 찾아갔다.

행안부 공무원이 왜 이 일을 하느냐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제도와 규정의 문제를 해결해 많은 이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일이라면 국가 녹을 받고 있는 이로서 꼭 해야 한다는 신념은 흔들리지 않았다. 점자도서관에서 일반책으로 점자책 등 대체 도서를 만드는 경우에는 저작권의 허락을 요하지 않는다는 법령도 힘이 됐다.

"점자도서관에 매년 500만원 정도의 예산을 보내서 점자책 수백 권을 더 만들 수 있다면 이런 돈은 정말 의미 있게 쓰인 거죠. 이런 종류의 일을 정부가 다 나서서 할 필요는 없지만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실행해야죠. 민간과 머리를 맞대면 해결될 수 있는 일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서 과장의 프로젝트는 지난 6월부터 본격적인 발걸음을 뗐다. 점자도서관에서 책 신청을 받으면 전자책업체가 가진 책 데이터를 활용하기로 했다. 타이핑으로 보내던 시간이 해결된 것이다. 데이터의 무분별한 유출을 막기 위해 점자프린터는 전자책업체에 두기로 했다. 점자프린터는 사회공헌 차원에서 국내의 한 유명 온라인서점이 투자하기로 했다. 시각장애인용 스마트워치를 만드는 스타트업도 점역 기술을 제공했다. 시각장애인들이 점자책 구매를 원할 경우에 대비해 현재 국내외 유명 작가들과 의견도 교환하고 있다. 점자책을 하루 만에 제작하는 일이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10월 15일은 '흰 지팡이의 날', 그리고 11월 4일은 '점자의 날'입니다. 흰 지팡이는 시각장애인을 상징하죠. 가급적 그때까지 이들이 읽을 수 있는 책 리스트를 공개하려고 합니다. 그들에게 줄 수 있는 하나의 작은 선물이 된다면 좋겠네요. 또 현재 만든 점자책 제작과 유통 방식이 지금까지 없었던 방식이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수출할 수 있는 기술 한류 모델도 되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공시'에 매달리는 상황에서 '공무원'이라는 직업의 좋은 점을 물어 보니 다음과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좋은 일을 하는 것이 공무원의 최고 장점입니다. 공무원 개인이 부자가 아니라도 사회의 꼭 필요한 곳에 돈을 써서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이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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