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깊이보기]왜 제일 가난한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줬다 빼앗을까'?

홍진수 기자 입력 2017. 8. 18. 11:31 수정 2017. 8. 18.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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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 16일 정부는 소득 하위 70% 노인(65세 이상)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을 현행 20만6050원에서 내년 4월부터 25만원, 2021년 4월부터는 3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공약한 내용 그대로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오는 22일 이같은 내용이 담긴 기초연금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다.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는 소득 하위 70%의 선정 기준은 노인 단독가구의 경우 월 소득 119만원이다. 노인 부부 가구는 190만4000원(이상 2017년 기준)이다. 정부는 매년 1월 노인의 소득·재산 분포와 임금·지가·물가상승률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이를 결정한다. 노인가구의 소득과 재산을 합산한 금액(소득인정액)이 이보다 적거나 같으면 기초연금을 받을 자격이 생긴다.

그런데 이보다 소득이 적은데도 기초연금을 못 받는 사람들이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기초연금을 ‘받았다가 다시 빼앗기는’ 사람들이다. 한국에서 제일 가난해, 정부로부터 기초생활보장을 위한 생계급여를 받는 노인들이 그렇다. 무려 42만명이나 이런 일을 당하고 있다.

이는 복지부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보충성의 원리’ 때문이다. 보충성의 원리에 따르면 국가는 개인이 빈곤의 해소를 위해서 모든 수단을 활용해 노력한 뒤 그 나머지만을 채워줘야 한다. 정부가 ‘최저생활비용’을 월 100만원으로 정해뒀는데 한달에 50만원만 버는 사람이 있다면, 나머지 50만원을 지원해주는 방식이다. 90만원을 버는 사람에게는 10만원만 지원해 준다.

지난 4월 2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서 빈곤 노인 기초연금 보장을 위한 연대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기초연금 30만 원 공약’이 우리 사회 가장 가난한 기초생활 수급 노인들에게는 혜택이 돌아오지 않는 공약이라며 ‘줬다 뺏는 기초연금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연합뉴스

생계급여를 받는 노인의 경우 기초연금을 받으면 그만큼 소득인정액이 올라간다. 정부가 채워줘야할 금액이 줄어드는 셈이니 생계급여를 깎을 수 있다. 기초연금을 받았다면 다음달 생계급여를 지급할 때 그만큼 삭감하고 준다. ‘줬다 뺐는 기초연금’이란 표현은 여기서 나온다. 생계급여 수급 노인들은 사실상 기초연금을 못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반면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아 생계급여를 받지 못하는 ‘차상위계층’의 노인은 기초연금 20만원을 그대로 다 받을 수 있다. 여기서 생계급여 수급 노인과 차상위 계층 노인간 소득 격차는 20만원 더 벌어진다. 그리고 이 격차는 내년 4월에는 25만원, 2021년 4월에는 30만원으로 더 커진다. 기초연금은 인상됐는데, 생계급여를 받는 노인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 커지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생계급여를 받는 노인들과 복지관련 시민단체 등은 당장 ‘줬다 뺐는 기초연금’ 제도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초연금의 취지가 빈곤 노인들의 가처분 소득을 올리는 것인만큼 생계급여도 그대로 다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보충성의 원리가 공공부조의 대원칙인 것은 맞지만 복지부는 이를 너무 경직되게 적용하려 한다”며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소득을 산정할 때 기초연금을 제외하는 규정을 두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어린이집 아동에 대한 보육료 지원, 집에서 돌보는 아동을 위한 양육수당(월 10만~20만 원) 등은 생계급여와 별도로 제공된다.

정의당 윤소하 의원도 17일 논평을 통해 “기초수급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더 준다면 차상위계층과의 역전 현상이 일어난다거나, 기초수급 노인은 의료비가 가장 큰 소비이기 때문에 줬다 뺏어도 된다는 것은, 그 논리 자체도 엉성하거니와 여전히 복지를 최소한의 생존권을 유지하는 수준으로만 보고, 조금이나마 어르신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도로는 보지 않는 잘못된 시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복지부의 판단은 다르다. 복지부는 기초생활 생계급여를 받는 극빈층 노인이 기초연금을 고스란히 받으면, 소득과 재산이 선정기준액보다 많거나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서 조차 탈락한 ‘비수급 빈곤 노인’보다 오히려 소득이 높아질 수 있다고 본다.

배병준 복지부 복지정책관은 “(생계급여 등의 지원을 받는)수급자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아 지원을 못 받는)비수급 빈곤층이 더 열악한 상황에 있다는 통계가 있다”며 “기초생활수급자는 생계급여 외에 의료급여, 공과금 감면혜택 등을 받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국민연금을 받는 기초생활수급자도 이를 소득으로 계산해 생계급여에서 삭감한다”며 “국민연금은 본인이 일정부분 기여를 한 부분에서 받는 것이라 더 억울할 수도 있지만, ‘보충성의 원리’를 쉽게 무너뜨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절충안을 만들어보자는 의견도 있다. 기초연금의 일부만 소득으로 인정하자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복지단체의 관계자는 “기초연금 20만원 중 10만원은 공제해주고, 나머지 10만원만 소득으로 인정하면, 기초생활수급 노인의 가처분 소득을 그만큼 올릴 수 있지 않냐”고 말했다.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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