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신동주 "부친 기억 감퇴 2010년 시작, 고관절 수술 뒤 악화"

전영선.장주영.손민호 2017. 8. 18.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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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 신격호』다음주 출간
"소공동 롯데호텔 집무실서 넘어져
전신마취 탓인지 기억 커튼 내려가"
"정신 건강 온전" 기존 주장 번복
롯데측 "출간 의도 의심스러워"
'한국정부의 배신''박정희의 강권" 등
초기 한국 정부와 얽힌 비사들도 담아
신동주(63)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아버지 신격호(95)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전기 성격의 책『나의 아버지 신격호』 를 다음 주 출간한다. 신 명예회장의 출생부터 일본으로 건너간 과정, 롯데를 설립한 배경 등 일대기를 담았다. 언론 인터뷰와 구술 자료를 바탕으로 했다. 신 전 부회장 측은 “책의 출간은 지난해부터 준비해온 것이며 '형제의 난'과는 관련이 없다”면서 “아버지의 일대기를 통해 여러 가지 오해를 풀려고 정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책 곳곳에 동생 신동빈(62) 롯데그룹 회장에 대한 비판이 담겼다.
신격호 전기 표지.[사진 21세기북스]
책에서 신 전 부회장은 집필 이유에 대해 장남으로서 아버지가 직접 자랑하길 꺼리는 업적을 정리했다고 수차례 밝히고 있다. 울산시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 623번지 신격호 명예회장의 생가에서의 생활부터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다시 돌아온 이야기, 한국에서 롯데를 일궈낸 이야기까지 시간 순으로 펼쳐진다.
유년 시절의 신격호 명예회장(뒷줄 오른쪽에서 네 번째).[사진 21세기북스]
눈길을 끄는 부분은 신 전 부회장이 아버지의 정신 건강과 관련한 기존의 주장을 번복한 대목이다. 그는 아버지의 정신이 온전하고 경영 의지가 있다고 해왔다. 그러나 책에서는 “아버지의 기억 감퇴가 2010년에 시작됐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아버지의 기억은 이미 수년 전에 파편화돼 흩어지거나 사라져버렸다. 기억의 증표(Memento)를 다시 제시하지 않으면 아버지는 어제 일을 오늘 기억하지 못했다”고 표현했다.
젊은 시절의 신격호 명예회장.[사진 21세기북스]
이런 아버지의 상태를 숨긴 이유에 대해서는 “아버지의 기억만 돌아온다면 처참하고 비극적인 상황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었을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형제, 가족 사이에서 벌어진 경영권 다툼을 “아버지의 기억이 흐려진 틈을 타 벌어진 찬탈의 음모”로 규정한다.
신 명예회장(왼쪽)과 부인.[사진 21세기북스]
책에 따르면 신 명예회장의 기억력은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 이후 악화됐다. 책은 "동일본대지진을 목도한 그는 예전과는 다르게 좀처럼 일본에 가지 못했다"고 했다. 이후 신 명예회장은 경영 현장에서도 멀어졌다. 기억력 감퇴에는 고관절 수술이 결정적이었다고 했다. 신 전 부회장은 "2013년 12월 아버지는 소공동 롯데호텔 집무실에서 넘어져 고관절 수술을 받았다. 아흔이 넘은 나이에 전신 마취 수술을 받은 뒤부터 그의 기억의 커튼이 내려가기 시작했다”고 적었다.
젊은 시절 신명예회장이 아들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을 안고 있다.[사진 21세기북스]
이후 발생한 일련의 사건에 대해서는 “유일하게 아버지의 편에 선” 삼촌 신선호의 말을 빌려 “한국과 일본의 부하들이 배신하고 아들 하나와 아내가 돌아서고 딸과 친척까지 편을 들어주지 않는, 한꺼번에 모든 것을 잃은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젊은 시절의 신격호 명예회장 일가.[사진 21세기북스]
두 아들과 포즈를 취한 신 명예회장.[사진 21세기북스]
그는 책에서 ‘기억이 없는 아버지를 붙잡고 롯데 경영 현황을 반복 설명한 뒤 언론과 인터뷰를 하게 했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신 전 부회장은 “아버지는 그룹과 계열사 현황을 매일 보고받는 오후 3시를 가장 만족스러워했기 때문에 임원들에게 매일 보고를 지시했다”고 적었다.
젊은 시절의 신 명예회장 일가.[사진 21세기북스]
책은 또한 삼촌 신선호가 전한 신 명예회장의 국적을 둘러싼 에피소드도 담고 있다. 일본의 지인 몇몇은 신 명예회장에게 일본으로 귀화할 것을 권유했는데 그런 지인 중에는 일본 총리를 지낸 인사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라. 기분이 좋지 않다.”고 일갈했다. 지인들이 무안을 느꼈던 것이 아니라 “시게미츠 상(신 명예회장)은 남자답다. 뒤끝이 없다.”고 웃어넘겼다.
롯데호텔 건설을 구상 중인 신 명예회장.[사진 21세기북스]
신 전 부회장은 2015년 '형제의 난' 이후 롯데 경영권에서 완전히 배제된 뒤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통해 끊임없이 반격에 나서고 있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아직 없는 상황이다.
딸 신영자 씨(왼쪽), 부인과 함께한 신 명예회장.[사진 21세기북스]
책 후반부에는 재일교포 사업가였던 부친 신 명예회장과 한국 정부간 얽힌 사연도 자세히 적혀 있어 눈길을 끈다.‘한국 정부의 배신’이라는 제목을 붙인 부분에서 박정희 정권 초기, 정부의 권유로 한국에서 제철사업을 펼칠 계획을 갖고 있었으나, ‘한국 정부의 뒤통수를 맞고 무산됐다’는 비사를 밝혔다. 어느날 신 회장이 지인의 소개로 도쿄대학에서 박태준씨와 첫 대면을 했는데, 당시 박씨가 종합제철소의 기획 및 건설 책임자로 내정되어 있다면서 자신을 소개했고, 이 때문에 신 회장은 그동안 애써 만든 자료를 박태준씨에게 넘겨야 했다고 기록했다.

‘박정희의 강권과 호텔롯데’라는 제목의 장에서는 1970년 11월13일 신 회장이 대통령 박정희로부터 갑작스런 호출을 받고 서울행 KAL기에 탑승했다고 적었다. 청와대로 직행한 신 회장에게 박 대통령은“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관광호텔을 지어서 경영해주시오.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해주겠소”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신 회장은 처음엔 망설였으나 뒷자리에 앉은 이후락 당시 주일대사의 강요로 어쩔수 없이 박 대통령의 강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책 출간 소식에 롯데 관계자는 “그룹에서도 자서전 출간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지만 평소 실속 있는 일을 중시하는 신 명예회장은 자서전 등을 일절 못 내게 했는데, 의도가 무엇인지 의심스럽다”면서 “총괄회장에 대한 존경심과 선의를 가지고 발간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궤변과 허위사실을 주장하기 위한 도구로 아버지의 업적과 인생을 활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전영선·장주영·손민호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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