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연의 시시각각] 북한이 우리 동의받고 미사일 쏠까

최상연 입력 2017. 8. 18. 01:48 수정 2017. 8. 18.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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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만은 막겠다는 다짐 옳지만
나라 지킨다는 결의가 우선이다
최상연 논설위원
사나흘만 국내를 떠나도 왠지 어리둥절한 다이내믹 코리아다. 따라잡아야 할 큰 뉴스가 너무 많아서다. 심장 약한 사람은 버티기 힘든 ‘롤러코스터 서울’이란 농담까지 나왔다. 하지만 3~4년쯤 해외에서 살다 오면 떠날 때와 똑같은, 해결되는 문제라곤 없는 대한민국을 느낀다고들 한다. 잊을 만하면 버전을 바꿔 다시 나오는 북핵 위기론이 딱 그렇다. 매일 매일은 섬찟섬찟한데 따지고 보면 20년도 훨씬 넘게 같은 자리다.

불과 며칠 만에 서울은 놀랄 정도로 심드렁해졌다. 심지어 ‘8월 위기설은 미국 군산복합체의 장삿속이자 가짜 뉴스’란 말까지 나왔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번엔 꼭 그런 게 아니다.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위기는 이제 시작이란다. 북한이 핵탄두 실린 ICBM을 실전 배치할 날이 멀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 등의 연쇄 핵무장으로 이어지면 미국도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예방 타격이든, 평화협정과 주한미군 철수든 그 전에 결판이 난다.

진행 속도로만 보면 연말께라고들 한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와 군엔 뜨겁고 비장한 기운이 넘쳐야 한다. 그런데 막상 현실에선 그렇지만은 않은 분위기다. ‘한반도 위기설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청와대에, 총리부터 외교장관까지 줄줄이 휴가를 떠나는 내각이다. 오늘부터 국회가 열리지만 집권 더불어민주당의 목표는 박근혜 정부의 적폐예산 청산이 우선이다. 미 의회가 ICBM 결의안을 통과시킨 게 넉 달 전인데 정작 우린 태평성대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탄생한 정부다. 안전 코리아에 올인하는 건 말하자면 존재 이유다. 그리고 안보야말로 으뜸 안전이다. 그런데도 핵 위기에 위기감이 적은 건 ‘설마 같은 민족에게 핵을 쏘겠느냐’는 안이함 때문인지 모르겠다. 문재인 대통령은 군사 충돌이 없었다는 걸 들어 ‘노무현 정부 안보 유능론’을 폈다. 그러나 그 말을 할 때마다 그때 시작된 북핵 실험은 외면했다. 미국 신문은 ‘대한민국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는 그의 말에 ‘문, 트럼프에 경고’라고 썼다.

사실 ‘모든 걸 걸고 전쟁만은 막겠다’는 언급은 지당한 말이다. 문제는 막무가내 김정은을 상대로 어떻게 평화를 지켜낼 것이냐는 거다. 평화는 무력으로 오지 않지만 무력 없인 평화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경축사엔 ‘모든 걸 걸고 대한민국만은 꼭 지켜내겠다’는 결의가 앞서 나왔어야 했다. 핵과 미사일로 평화를 파괴하는 김정은에 대한 분명한 경고 말이다. 그게 눈에 띄지 않으니 전쟁 불가론은 미국을 향한 거란 제목을 만들었다.

미국의 선제 타격론이 무성하던 23년 전에도 김영삼 대통령은 “전쟁만은 안 된다”고 했다. 그래도 그땐 서울 불바다에 대한 걱정이 배경이란 걸 미국이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다르다. 문 대통령은 두 달 전 “북한의 핵·미사일은 뻥”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문재인 청와대와 내각, 골수 지지층엔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가득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북핵은 방어용’이라고 말했다지 않나. 그러니 평양 불바다를 막겠다는 뜻으로 미국 신문은 보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엊그제 ‘미국과 긴밀히 협력하면서 안보 위기를 타개하겠다’고 말했다. 안심이 되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제 기자회견장에선 여러 의심을 떨쳐낼 답변이 이어졌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우린 지금 어디쯤 있고, 연말께 온다는 레드라인 이후엔 어떻게 되는 건지 같은 얘기 말이다. 그러나 전쟁 불가론이 반복됐다. 옳은 말이지만 걱정도 되는 말이다. 북한이 우리 동의를 받고 군사 행동을 할 건 아니지 않나. 혼나야 하는 건 북한인데, 자꾸 미국을 겨냥하는 것 아닌가 하는.

최상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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