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새 정부 출범 100일, 공식 논평 한 곳도 안 낸 경제5단체
기업 현장의 목소리 들리지 않아
정부, 이견 내면 가차없이 경고장
일방적인 소통 강요해선 안돼
“역대 정부 중에 기업들 기(氣)를 이렇게 눌러놓은 정부는 없었던 것 같아요. 조심하지 않으면 각개격파 당합니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단체 관계자의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여름밤 대기업 대표들을 청와대로 불러 수제 맥주로 건배까지 했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반응이다.
원인은 ‘국민 카타르시스’를 추구하는 새 정부의 국정 스타일과 기업에 대한 일방적인 소통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정부와 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관계 설정을 하려고 노력하기보다, 기업에 국정 과제의 이행을 요구하며 이견을 내면 가차 없이 경고를 날리는 식이다. 정부 출범 전인 지난 3~4월 대한상의와 경총은 각각 ‘경제계 제언’과 ‘경영계 정책건의서’ 등을 통해 자유롭게 주장을 펼쳤다. 기류가 확연히 바뀐 건 지난 5월 경총이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선언에 대해 “기업마다 다른 인력 운용을 고려하지 않고 이분법으로 접근하면 갈등만 부추기고 사회 전체 일자리를 감소시킨다”는 입장을 나타낸 뒤다. 다음날 청와대 박수현 대변인은 “경총은 진지한 성찰과 반성부터 하라”는 문 대통령의 발언을 공개했다. 국정자문기획위원회 박광온 대변인은 “대단히 편협한 발상”이라고 밝혔다. 경총은 물론 기업계에 대한 경고였다.
최근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바통을 이어 받았다. 김 위원장은 세재개편안이 나온 당일 한 방송 인터뷰에서 “새 정부의 경제개혁 의지에 대해 의심하지 말고 도전하지 말기를 바란다”고 경고했다. 최근엔 프랜차이즈, TV홈쇼핑, 기업형수퍼마켓(SSM)를 집중 점검하겠다고 ‘규제 예고’를 지속하고 있다. 업계엔 ‘다음은 누가 타깃이 될까’하는 긴장감이 팽배하다.
비판보다 무서운 것은 침묵이다. 타의에 의한 침묵일 경우 더욱 무섭다. 한 경제단체의 문건에는 “무조건 반대할 경우 역풍에 처할 수 있다”, “기업의 핵심 가치를 방어하면서 현실적인 문제를 들어 양보와 지원을 이끌어 내야한다” 등 정부와 터놓고 논의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고심이 가득하다. 투자와 고용의 핵심 주체인 경제계가 정부가 무서워 침묵하는 분위기가 굳어진다면 과연 일자리와 근무환경 등 정부의 정책이 현장에서 얼마나 실효성을 가지며 우리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이소아 산업부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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