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견제' 걸프국의 '키플레이어'로 떠오른 이라크 사드르

김보미 기자 2017. 8. 17. 22: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라크와 맞닿은 북부 국경의 문을 열기로 했다. 1990년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관계가 단절된 지 27년 만이다. 사우디는 2년 전 바그다드에 주이라크 대사관을 재개설한 이후 올 들어 본격적으로 외교라인을 다시 가동한 데 이어 이라크에 대한 대규모 투자도 계획 중이다.

시아파가 주류인 이라크와 수니파 대국 사우디가 손을 잡는 낯선 행보가 잇따르면서 이라크의 강경 시아파 성직자인 무크타다 알 사드르(44 ·사진)가 주목받고 있다. 그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초청으로 사우디를 방문한 데 이어 지난 13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도 초청 방문했다. 양국의 이례적인 초대에 대해 블룸버그는 “중동 내 이란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는 수니 걸프국가들의 움직임에 사드르가 주요 인물(key player)이 됐다”고 보도했다.

바그다드와 이라크 남부 빈민층 지지를 받고 있는 사드르는 이라크 내에선 드문 반(反)이란 성향 인사다. 후세인 정권 당시 반정부 투쟁을 이끌어 국민들의 추앙을 받던 시아파 종교지도자 아야톨라 무하마드 사데크 알 사드르의 셋째 아들이다. 아들 사드르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자신의 민병대를 이끌고 시아파 성지인 나자프를 장악한 뒤 미군에 맞서면서 대표적인 반미 민족주의자로 떠올랐다. 특히 이슬람국가(IS)가 지난달 모술에서 3년 만에 격퇴된 이후엔 정부에 민병대 조직의 해체도 요구하고 있다. IS를 몰아내는 데 큰 공을 세운 민병대는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다. 알모니터는 “이라크에 다시 일어난 시아파 민족주의 붐과 이란이 공존하는 법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보도했다.

사드르의 이 같은 성향은 이란의 견제세력을 키워야 하는 사우디, UAE 등과 이해가 맞아떨어진다. 이란과 경제·정치적 친밀도를 높였다는 이유로 카타르와 단교까지 선언하며 압박에 나섰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한 상황에서 걸프의 북쪽 이라크가 합세해 준다면 새 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이집트와 몰디브 등 수니파 무슬림국가에 영향력을 키울 때처럼 자금력을 앞세울 것으로 보인다. 사드르는 무함마드 왕세자와의 회동 직후 “사우디가 이라크 정부에 1000만달러를 지원하고 이라크 남부에 투자 가능성을 검토하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이라크의 이런 움직임이 이란에 미치는 타격은 크다. 이란은 IS 사태를 계기로 물밑에서 이라크에 대한 지원을 늘렸고 지난달 양국의 군사협력 강화 합의를 이끌어냈다. 1980년 이란-이라크 8년 전쟁 이후 29년 만에 군사동맹을 맺은 것이다. 이는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에 걸친 시아파 ‘초승달 벨트’를 완성해 지중해까지 영향권을 구축하려는 이란엔 큰 진전이었다.

이란은 내색하지 않고 있다. 아라즈 마제디 주이라크 이란 대사는 “이라크는 독립된 국가로 사우디와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이라크 내부 문제”라며 “이란과 이라크, 이라크 시아파와의 관계는 여전히 굳건하다”고 말했다고 이라키뉴스가 지난 14일 전했다.

사우디가 이라크를 이란과의 화해 중재자로 내세우려 한다는 보도도 나와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카심 모하마드 알아라지 이라크 내무장관은 “무함마드 왕세자가 이란과 관계 개선을 중재해달라고 요청해왔다”며 “이란과 사우디의 관계 회복은 전체 지역(중동) 차원에서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사드르와 걸프 간 교류와 관련이 있지 않겠냐는 추측도 있지만 반이란 전선을 형성하는 데 열을 올리는 사우디가 친이란 성향이 더 강한 이라크를 중재자로 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해석이 많다.

런던정경대 사드 자와드 교수는 “사우디는 이란이 이라크에 얼마나 영향력을 미치는지 알고 있다”며 “(차라리) 쿠웨이트나 오만에 중재를 요구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고 알자지라에 말했다.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