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인문학] 4차 산업혁명, '튜링'에게 묻다

2017. 8. 1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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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관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
이종관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

정말 4차 산업혁명이 발발했나보다. 곳곳에서 4차산업에 대한 이야기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간다. 그리고 4차산업 혁명은 인공지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사실 4차 산업 혁명은 인공지능이 지휘하는 혁명이 될 것이다. 그런데 대체 인공지능은 언제 누구에 의해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던가.

튜링, 그가 바로 컴퓨터, 나아가 인공지능이란 새로운 존재자를 역사에 진입시킨 최초의 인간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이른바 인공지능의 아버지이다. 튜링은 튜링테스트라는 것을 고안해 다음과 같은 기대를 부풀게 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과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지능이 구별되지 않는 미래가 올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미래는 바로 인공지능을 인간들이 그들 자신과 구별하지 못하는 테스트를 통과하는 시점에 도래한다. 21세기 들어 이 기대는 더욱 짙어졌다. 현재 구글에서 인공지능 프로젝트를 총지휘하고 있는 레이커즈 와일은 2000년 초반 기술발전에 속도를 그래프를 통해 계산했다. 그 결과 2025년 튜링테스트를 통과하는 인공지능이 탄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런데 이 시점이 훨씬 빨리 도래한 것이다. 사실 알파고와 이 세돌의 대결에서 인공지능은 튜링테스트를 통과했다. 만일 이 대결에서 미리 알파고가 감춰진 채, 단순히 대국의 상황이 바둑판 모니터로만 보여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사람들은 틀림없이 이세돌보다 바둑을 잘 두는 인간이 이세돌을 이긴 것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아니 이세돌도 마찬가지다. 알파고가 감춰져 있었다면, 이세돌도 알파고를 자기를 압도하는 천재로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튜링테스트를 고안한 튜링에게 묻고 싶었다. 이 테스트는 정말 어리석은 것이 아니냐고. 이 테스트를 튜링 당신 자신에게 적용시키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만일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방에 튜링과 튜링을 목소리를 잘 흉내 내는 컴퓨터가 있고 밖에 있는 인간들이 튜링과 컴퓨터에 동시에 대화를 나눈 결과 그 인간들이 컴퓨터를 튜링과 구별하지 못한다면? 그러면 이제 컴퓨터는 튜링인가? 그래서 사람들이 더 이상 컴퓨터와 튜링을 구별하지 않고 튜링을 컴퓨터와 동일시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 상황을 튜링은 용납할 것인가. 튜링 자신이 아닌 기계가 마치 튜링처럼 행세하고 사람들이 그 기계를 튜링으로 인정한다면, 튜링은 자신의 튜링테스트가 입증됐다고 기뻐할 것인가. 아니면 내가 바로 튜링 자신이라고 주장할 것인가.

물론 튜링은 이미 죽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는 까뮈가 가장 철학적인 문제라 말한 바 있는 자살을 선택해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결단을 내렸다. 그래서 필자는 튜링이 이 질문에 어떻게 답변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튜링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되돌아본다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모든 인간은 무엇과도 또 누구와도 같을 수 없는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다는데 있다. 이러한 사실은 각 인간들이 일상에 매몰돼 그저 남을 따라 막가는 듯 살 때는 망각된다. 그러나 삶이 위기에 처할 때, 죽음이 의식되는 순간 그리하여 자신의 삶은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이 자신의 책임이라는 사실에 직면할 때, 인간은 원래 다른 무엇과도 어느 누구와도 같을 수 없는 자기 자신이었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 자신은 늘 어떤 역사적 상황 안에 존재한다. 때문에 인간은 어떤 역사적 체험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인간의 체험은 어떤 역사적 상황에서 이뤄지며 이 체험은 그에게 어떤 방식으로 체화된다. 그리하여 인간은 그의 몸과 함께 어떤 삶의 의미를 창조해가는 삶을 산다. 이는 인간에게 거부할 수 없는 삶의 방식이다. 그렇기에 혹자는 그가 속한 역사적 상황이 비리와 모순으로 점철돼있어도 그에 순응하며 편안하고 안일한 삶을 살아간다. 또 혹자는 견딜 수 없어 튜링처럼 자살하기도 한다. 또 혹자는 온몸으로 저항하며 고통을 감수하고 보다 낳은 미래를 향해 고난의 길을 간다.

튜링도 어떤 역사를 살았고, 그에게는 나치에 맞서 지켜야할 그가 속한 인간 공동체가 있었다. 그러기에 그는 2차세계대전의 와중에서 나치의 암호를 해독하는 콜러서스(Colossus)라는 최초의 컴퓨터를 만든 것이 아닌가. 아니면 그는 아무 생각 없이 영국정보국이 시키는 대로 했던 기계였던가. 그리고 그가 결단한 자살은 기계가 갑자기 망가진 것에 불과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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