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믿고 맡긴 구원투수 → 기약 없는 선발투수

김철오 기자 2017. 8. 16.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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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3패한 4차전에서 5차전 선발이 무슨 의미" 발언의 의미
안철수 국민의당 전 공동대표가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전당대회 합동연설에서 정견발표에 앞서 주먹을 쥐고 있다. 뉴시스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가 1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말한 ‘한국시리즈 4차전’은 절박하고 복잡한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비유였다. “당권 도전이 실패로 끝나면 정계 은퇴에 몰릴 수 있다”는 진행자의 질문에 그는 “당과 운명을 함께 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한국시리즈에서 3패를 당한 뒤 4차전에 임하면 5차전 선발투수는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답했다. 27일 전당대회에 배수진을 쳤다는 얘기인데, 야구에 빗대는 것이 가장 선명한 전달 방법이라 생각한 듯하다.

지난해 11월 2일 경남 창원 마산구장에선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4차전이 열렸다. 두산 베어스 김태형 감독은 경기 시작 1시간쯤 전에 더그아웃에 나타났다. 기자들은 이미 진을 치고 있었다. 김 감독은 여유가 넘쳤다. 편안한 표정으로 슬쩍슬쩍 농담을 건넸다. 한국시리즈는 7전 4선승제다. 두산은 이미 3연승을 했다. 이 경기에서 승리하면 그대로 우승, 져도 조급할 건 없다. 남은 3경기 중 1승만 따내면 그만이었다.

맞은편 NC 다이노스 더그아웃의 김경문 감독 표정은 복잡했다. 김 감독은 벼랑 끝에 있었다. 그날을 포함해 남은 모든 경기에서 총력전을 벌어야 했다. 투수 라인업에서 선발과 불펜의 경계는 허물어진 터였다. 그는 이 경기에서 6명의 투수를 마운드에 세웠다. 미리 낙점해둔 5차전 선발은 어차피 이날 지면 등판할 수 없었다. ‘내일은 없다’는 각오로 임했지만 두산 쪽으로 기운 기세는 넘어오지 않았다. 결과는 두산의 8대 1 승리. NC는 끝내 5차전을 하지 못했다.

박원순(왼쪽) 서울시장과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한 달 앞뒀던 2011년 9월 안 전 대표는 박 시장과 후보 단일화를 합의하고 불출마를 선언했다. 국민일보 DB

믿고 맡겼던 ‘구원투수’

안 전 대표는 6년 전만 해도 믿고 맡길 수 있는 ‘구원투수’였다. 문재인정부에서 다시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참여정부 이후의 선거마다 고전했다.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번번이 참패를 당하고 당 지지율은 추락하는데, 새로운 인물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 재야에서 거론된 인물이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던 안 전 대표였다.

안 전 대표의 첫 정치 시험대는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였다. 오세훈 전 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지지를 얻지 못하고 낙마해 치러진 이 선거에서 안 전 대표는 최고의 유력주자였다. 지지율은 50%를 웃돌았다. ‘안철수 신드롬’이란 말이 생길 정도로 당선은 유력하게 예상됐다.

하지만 안 전 대표가 정계에 입문하면서 그렸던 밑그림은 지방자치단체장만으로 완성될 수 없었다. 안 전 대표는 선거를 한 달여 앞둔 그해 9월 박원순 당시 무소속 후보(현 서울시장)와 불과 17분간 대화하고 단일화를 이뤘다. 박 후보를 지지하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인지도가 거의 없었던 인권변호사 출신 박 후보는 이 선거에서 53.4%의 득표율로,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현 자유한국당 의원‧득표율 46.2%)에게 승리했다. 박 시장은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연임했다.

통 크게 양보하고 승리까지 이끌어낸 안 전 대표의 행보는 지지세의 확대로 이어졌다. 이듬해 12월 열린 제18대 대선까지 안 전 대표의 지지율은 완만한 곡선을 그렸다. 하지만 대선 과정은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차원이 달랐다. 당시 민주통합당(현 민주당) 경선에서 경쟁했던 예비후보는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안 전 대표는 선거일을 한 달여 앞둔 그해 11월 지지표를 문 대통령에게 밀어주고 예비후보직에서 물러났다. 이 대선에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후보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승리했다.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가 지난 4월 16일 경기도 안산 단원구 합동분향소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3주기 추모식에서 악수하고 있다. 두 사람은 당시 대선후보였다. 국민일보 DB

등판 기약 없는 ‘선발투수’

안 전 대표는 비록 두 번의 선거를 완주하지 못했지만 존재감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었다. 2013년 4월 서울 노원병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도전해 60.5%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앞서 ‘예비후보’뿐이었던 안 전 대표의 정계 직함에 처음으로 ‘의원’이라는 타이틀이 달렸다. 안 전 대표의 기치는 ‘새정치’. 이듬해 3월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해 초대 공동대표에 올랐다. 그렇게 한동안 의정에 집중했다.

안 전 대표의 정치행보는 2015년 말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해 12월 김한길‧천정배 등 새정치민주연합 내 거물급 인사들과 함께 탈당해 이듬해 2월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국민의당은 더불어민주당이 완승했던 지난해 4‧13 총선에서 38석(호남 23석‧수도권 2석‧비례대표 13석)을 확보해 약진에 성공했고, 안 전 대표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제19대 대선에 도전했다. 한때 안 전 대표의 지지율은 문 대통령을 오차범위 안까지 추격할 만큼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렸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방송토론이 계속되면서 지지율은 하락했다. 지난 5월 9일 대선을 마치고 집계된 안 전 대표의 최종 득표율 21.41%. 기대에 못 미치는 수치였다.

안 전 대표의 대권 도전 실패로 당은 불협화음을 내기 시작했다. 대선 때 ‘문 대통령 아들 취업 특혜 의혹’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제보에 조작이 있었던 사실까지 뒤늦게 드러나면서 당은 격랑에 휘말리고 말았다. 그나마 대선 때 3위 정도로 방어했던 정당 지지율은 이제 원내 정당 가운데 최하위로 추락했다. 뉴스채널 YTN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에 의뢰해 이날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당의 정당 지지율은 4.5%였다. 더불어민주당은(54.4%) 자유한국당(9.9%) 정의당( 6.1%) 바른정당 (5.5%)에 이어 최하위다.

안 전 대표의 시계는 27일 전당대회와 내년 6월로 예정된 지방선거에 맞춰져 있다. 그는 “내년 지방선거까지만 계획을 세웠다. 모든 것을 걸었다”며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게 가장 도움이 될지는 그때(지방선거)를 기준으로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당내‧외에서 거론되고 있는 서울시장 출마설에 대해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겠다”며 즉각 부인하지 않았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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