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삼성 장충기'가 받은 취업 청탁 문자
<시사IN>이 단독 입수한,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의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추가 공개한다(아래 표 참조). 그의 휴대전화에는 삼성의 힘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내용이 담겼다. ‘이재용 뇌물 혐의 재판’의 핵심인 정경유착을 뒷받침해줄 물증이다(<시사IN> 제517호 ‘장충기 문자에 비친 대한민국의 민낯’ 커버스토리 참조).
박영수 특검팀은 이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이재용-박근혜 독대, 대한승마협회를 통한 승마 지원과 같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공소사실에 직접 가닿는 내용뿐 아니라 삼성의 광범위한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라는 취지였다. 실제로 <시사IN>이 입수한 장충기 문자 메시지를 분석해보면,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국회의원 동향을 파악하는 등 어떻게 움직였는지 알 수 있다. 또 삼성그룹이 한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영향력도 가늠해볼 수 있다. 이 부회장 쪽 변호인은 공소사실 입증과 관련이 없다고 맞섰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는 7월25일 장 전 사장의 문자 메시지를 증거로 채택했다.
특히 장충기 전 사장이 받은 인사 청탁은 ‘관리의 삼성’이 작동하는 방식을 가늠하게 한다. 정계·재계·언론계 등 다수의 유력 인사가 장 전 사장에게 청탁을 했다. 장충기 전 사장이 힘을 써서 자신 혹은 자기와 관련 있는 이들(가족·친지 등)을 삼성에 입사 또는 승진시켜달라는 등의 내용이었다. 특히 ‘삼성 고시’로 불리는 삼성 공채와 관련해 인사 청탁이 적지 않았다.
“○○○(89○○○○-1○○○○○○), 수험번호: 1○○○○○○○, 1지망:호텔부문 영업마케팅, 2지망:면세유통부문 영업마케팅, 3지망:경영지원”과 같이 인사 지원자의 이름·주민등록번호·수험번호에다 지망하는 부문의 우선순위도 상세히 적었다. 이 인사 청탁은 성공하지 못했다. 연이은 문자 메시지를 보면, 인사 청탁 대상자는 SSAT(삼성직무적성검사로 삼성그룹에 지원하면 1차로 보는 필기시험)를 통과하지 못해 면접 대상에 오르지 못했다. 전경련의 한 간부는 아들의 ‘스펙(학력·경력·군필)’을 옮기며 “삼성의 스포츠단이나 사회봉사재단, 학교재단에 근무하면 참 잘할 것 같은데 힘써달라”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이런 문자 메시지를 보면, 삼성 공채 시험에 대한 공정성 의혹이 불거진다. 취업 청탁과 관련한 <시사IN> 첫 보도 이후 편집국에는 특정 언론사의 고위 관계자도 인사 청탁을 했다는 삼성 내부자로 추정되는 구체적인 제보 전화가 오기도 했다.
거꾸로 장충기 전 사장이 청탁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장 전 사장은 “아들은 어디로 배치받았니. 삼성전자 이인용 사장이 안광한 사장과 MBC 입사 동기라 부탁한 건데 안 사장이 쾌히 특임하겠다고 한 건데 어떻게 되었지”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성명 불상의 상대방은 “특임부로 가기 전에 국내유통부에서 바로 연장을 하고 사장님이 경영국장에게 알아보니 이미 연장된 걸 아시고 국내유통부에 그대로 근무하고 있는데 만족하게 잘 다니고 있어요. 어려운 부탁 쾌히 들어주어 고마워요. 시간 나면 기회 주시기를…”이라고 답장했다. 장충기 전 사장이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을 통해 안광한 전 MBC 사장 쪽에 인사 청탁을 한 것으로 보이는 내용이다.
주류 언론은 ‘장충기 문자’ 보도 안 해
문자 메시지에 나오는 ‘특임부(정확히는 특임사업국)’은 안광한 전 사장이 의욕적으로 신설한 사업 부서로 알려져 있다. 브랜드 사업과 캐릭터 사업 등을 추진했는데, 특이하게도 특임사업국에서는 드라마 <옥중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이 드라마에 최순실씨의 전남편 정윤회씨의 아들 정우식씨가 출연해 특혜 논란이 일었다.
삼성의 힘을 새삼 보여주는 장면은 <시사IN>의 장충기 문자 메시지 보도 이후에도 펼쳐졌다. 주요 언론은 ‘침묵의 카르텔’을 유지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의 모니터에 따르면, 8월11일 현재까지 <한겨레>가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발언을 짧게 인용한 기사 한 건 외에 주요 일간지·경제지에는 관련 보도가 없다. 방송 또한 마찬가지다. JTBC만 리포트 한 꼭지와 앵커브리핑에서 다뤘다.
더불어민주당의 대변인실 한 관계자는 “삼성이 세긴 세다. 보통 대변인 논평이 나가면 언론사들이 다 인용 보도를 하는데, 백혜련 대변인의 ‘삼성 장충기 문자, 삼성의 힘이자 삼성공화국의 민낯이다’ 논평은 이후 딱 한 군데에 인용됐다”라고 말했다. 김언경 민언련 사무처장은 “삼성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가 잘 안 나오는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그래도 이번은 좀 심하다. 삼성뿐만 아니라 언론의 동업자 의식이 발휘된 탓이다. 포털 사이트도 마찬가지다. 포털을 관리했다는 정황이 장충기 문자에서 나와서인지, 포털 메인 화면에서도 기사를 볼 수가 없다. 검색해야 겨우 찾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김은지ㆍ주진우 기자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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