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택자 기회인가, 위기인가

2017. 8. 16.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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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8·2 부동산대책 이후 주택시장 관망세 뚜렷… 매도·매수자 간 ‘눈치 싸움’ 치열

노무현 정부 이후 가장 강도 높은 부동산 대책인 ‘8·2 부동산 대책’이 발표되면서 주택시장 분위기가 급변하고 있다. 서울 아파트값은 1년 5개월 만에 떨어졌고, 가파른 오름세를 보이며 전반적인 집값 상승을 견인했던 서울 재건축 아파트값도 하락 전환했다.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서울 대부분의 지역에서 매도·매수자의 관망세가 뚜렷해지며 거래 역시 끊긴 상황이다.

새 정부의 첫 번째 부동산 대책인 6·19 대책에도 집값 상승이 이어지자 정부가 40여일 만에 다시 내놓은 8·2 대책은 그간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됐던 다주택자의 투기수요를 잡는 데 집중했다. 무주택 실소유자 입장에서는 내집 마련의 길이 좀 더 넓어진 셈이지만, 바뀐 제도와 급변한 시장 분위기로 수요자와 집주인 간의 ‘눈치 싸움’이 치열해지고 있다.

8·2 대책으로 한층 높아진 청약 문턱은 장기 무주택자들에겐 내집 마련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다만 무주택자 사이에서도 청약가점과 자금력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정부의 '8·2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서울 주택시장의 관망세가 뚜렷해진 가운데 집주인과 수요자의 본격적인 '눈치 싸움'이 시작된 분위기다. 사진은 8월 3일 서울 잠실나루역 일대의 공인중개사무소 모습. / 이상훈 선임기자

청약가점 따라 희비 엇갈려

일단 부양가족이 많은 장기 무주택자라면 투기과열지구와 청약조정 대상지역 내 신규분양을 노려볼 만하다. 이번 대책으로 1순위 자격요건이 강화되고 청약가점제 적용이 확대돼 다주택자의 청약시장 진입이 사실상 봉쇄됐기 때문이다.

오는 9월부터 서울 전역과 과천, 세종 등 투기과열지구와 40개 청약조정 대상지역에서 1순위 자격은 청약통장 가입기간 2년 경과, 24회 이상 납입(국민주택에 한해 적용)으로 강화된다. 또 투기과열지구에서 민간이 짓는 전용면적 85m² 이하 소형아파트는 100% 가점제로 분양하고, 조정 대상지역에서도 가점제 적용 비율이 기존 40%에서 75%로 확대된다. 청약 후 미계약 물량을 배분할 때에도 가점제가 적용된다.

청약가점제는 무주택 기간(최고 32점)과 부양가족 수(최고 35점), 청약통장 가입기간(최고 17점) 등을 점수로 매겨 가점이 높은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당첨 기회를 주는 제도다. 다만 가점제 적용을 받아 당첨을 받았다면 당첨자와 가구원은 2년간 전국에서 가점제 청약을 할 수 없다. 청약가점이 높은 일부 무주택자가 지방의 인기 민영주택을 6개월마다 청약해 당첨 후 분양권 전매를 반복하는 ‘분양권 쇼핑’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부동산인포에 따르면 8·2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서울의 연내 신규아파트 분양물량은 총 1만6200여가구로, 최근 2년 동기 대비 2배 가까이 많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으로 청약 문턱이 대폭 높아지면서 분양시장의 타격이 불가피하지만, 무주택 실수요자 입장에서는 내집 마련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팀장은 “전매 규제에 따른 분양권 거래시장의 환금성이 취약해진 상황에서 투기과열지구 및 조정 대상지역의 1순위 자격요건 강화와 가점제 적용 확대는 가을 분양시장 성수기의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면서 “소비자의 분양가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고분양가 사업장은 순위 내 마감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고 내다봤다. 정부가 민간택지의 분양가 상한제 적용을 예고하고 8·2 대책 이후 세종시에서 실거래가 기준 분양가가 1억원이나 떨어진 아파트가 나오면서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아파트 분양가가 잡힐지도 주목된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청약자들의 선택이 매우 신중해지면서 수요가 많았던 곳과 그렇지 않은 곳 간의 청약률 양극화가 심해지고, 비인기 지역을 중심으로 미달사례가 증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정부가 주택대출을 조이면서 무주택자라 하더라도 자금조달 계획을 꼼꼼하게 세워야 한다. 정부는 이번 대책으로 서울 전역이 포함된 투기과열지구와 투기지역에서 대출금액과 관계없이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각각 60%와 50%에서 40%로 일괄 강화했다.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집을 살 때 집값의 70%까지 빌릴 수 있었지만, 이제는 사실상 40%까지만 가능해 적어도 60~70%의 자기자본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는 서민과 실수요자에 한해서는 LTV와 DTI를 50%로 완화했지만, 무주택 세대주와 부부합산 연소득 6000만원(생애 최초 구입자는 7000만원) 이하, 주택가격 6억원 이하 등 세 가지 요건을 총족해야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는 서울의 집값 수준 및 맞벌이 부부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서울의 아파트 중위가격(순서대로 한 줄로 세웠을 때 한가운데에 위치하는 값)은 지난 4월 이미 6억원을 돌파한 상황이다. 서울의 집값이 이미 오를대로 오른 상황에서 무주택 실소유자의 자금줄까지 막힐 수 있다는 것이다.

싱글·무자녀 신혼부부는 ‘울상’

또 서울 전역과 과천, 세종에서 전용 85m² 이하 민영 아파트의 가점제 비율이 100%로 높아진 것 역시 무주택 기간이 짧고 아이가 없는 젊은 층과 신혼부부의 청약 당첨길을 막았다는 불만도 나온다. 서울 서대문구의 전셋집에 거주하는 직장인 오모씨(36)는 “무주택자가 유리하다고 해서 청약을 넣을까 고민했지만 현재 가점으로는 당첨 가능성이 없는 데다, 아내와 소득을 합치면 7000만원이 넘어 대출한도도 부족하다”면서 “투기가 아니라 실거주 목적인데도 내집 마련은 여전히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무주택자임에도 청약가점제의 혜택을 보기 어려운 경우, 다주택자나 갭 투자자들이 내놓는 급매물을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정부가 내년 4월부터 청약조정 대상지역 내 2주택 이상을 보유한 다주택자의 양도소득세 중과로 ‘다주택자는 집을 팔아라’는 시그널을 시장에 보내면서 세부담을 피하기 위해 나오는 저렴한 매물을 노려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서성권 부동산114 선임연구원은 “양도세 중과 적용이 내년 4월 이후 양도하는 주택부터 적용돼 다소 시간의 여유가 있고 서둘러 매물을 처분하기보다 시장 추이를 지켜본 후 보유 여부를 결정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면서 “최근 매도 호가 하락으로 급매물이 나오면서 실수요자들의 머릿속도 복잡하지만, 정부가 이달 말 가계부채 대책을 준비 중이고 9월엔 부동산 공급대책 세부 내역을 발표할 예정으로, 성급하게 매수에 나서기보다 시장 추이를 지켜보며 결정을 내리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무주택자가 기존 주택을 매입하려는 경우 거주요건도 잘 따져야 한다. 앞으로 청약조정 대상지역에서는 1가구 1주택자라 할지라도 양도세 비과세를 위해서는 2년 이상 실거주해야 하는 만큼 실제로 2년간 거주할 요건이 안 된다면 이 지역 내 주택 구입은 피하는 게 좋다. 과거처럼 전세를 끼고 집을 매입한 뒤 본인은 다른 곳에 전세를 사는 식의 투자가 어려워진 것이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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