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을 극복하려던 100일

2017. 8. 15.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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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한겨레> 1면으로 비교해 본 노무현과 문재인의 100일…
현 정부, 대북정책 외 분야서 참여정부 실패 반복 않으려 노력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취임식.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가 가졌던 여러 한계를 극복하려 한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노무현과 문재인은 같고도 다르다. 대통령으로서 그들은 정권 초 각종 정치·사회·경제 개혁을 통해 비정상적 권력 구조를 바로잡는 데 집중했다는 점에서 같다. 북핵 문제라는 엄혹한 외교·안보 환경 아래서 자주적 한-미 관계를 목표로 해야 한다는 점도 같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맞았던 2003년 6월과 문 대통령이 100일을 맞는 2017년 8월 사이에는 한국 사회 전 분야에서 적잖은 상황 변화가 있었다.

참여정부 한계를 뛰어넘는 실험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정부를 이어받았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철저한 소수파 정치인이었다. 대선 과정도 역전을 거듭한 한 편의 드라마였다. 당시에도 개혁 욕구는 넘쳐났지만, 대통령을 탄핵시킨 촛불집회라는 국민적 열망을 등에 업은 지금 상황과 비교할 수 없다.

참여정부 집권 기간엔 신자유주적 경제정책이 사회의 주류적 지위를 점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한국 사회엔 다양한 사회적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 동안 재벌 위주 경제성장 정책을 반성하는 논의가 꾸준히 진행돼왔다. 변화된 시대적 상황과 참여정부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문재인 정부는 과거의 한계를 뛰어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한겨레21>이 노무현 정부 100일(2003년 2월25일~6월5일)과 문재인 정부 94일(2017년 5월10일~8월11일) 동안 <한겨레> 1면을 전수조사해 분석한 결과에도 드러난다. 노무현 정부 100일 동안 보도된 대통령 혹은 정부 관련 기사는 총 211건이었다. 이 가운데 3분의 1이 넘는 70건이 정부의 정책 추진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특히 노무현 정부 초기에 터진 운송노조 파업, 교육행정정보시스템 나이스(NEIS) 시행, 이라크전 파병을 둘러싼 갈등이 주를 이뤘다. 개혁 정책 기사로는 검찰·국정원 개혁 보도가 21건, 재벌 개혁 기사는 상대적으로 적은 3건에 불과했다. 참여정부는 취임 100일 동안 효과적으로 개혁을 추진하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94일은 그와 사뭇 달랐다. 대통령 또는 정부기관과 관련된 기사 164건 가운데 사회적 갈등 기사는 4건에 불과했다. 4건 모두 안경환·조대엽 장관 후보자 낙마, 고위 공직자 인사 배제 5대 원칙 후퇴 등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반면 검찰·국정원 개혁과 국정교과서 폐지 등 적폐청산 정책 추진 기사는 24건, 재벌·노동 개혁 기사는 32건, 복지·탈핵·교육 등의 기사는 14건이었다. <한겨레21>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한국 사회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주요 현안들인 검찰 개혁, 국정원 개혁, 재벌 개혁, 노동 개혁, 외교·안보 등 5개 분야에서 참여정부의 100일과 문재인 정부 초기를 비교해봤다.

검찰 개혁_ 본질은 입법 싸움임을 간파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모두 강하게 실행 의지를 보인 부분이 검찰 개혁이다. 취임 100일까지만 놓고 비교해보면 노 전 대통령의 검찰 개혁 방안이 오히려 더 셌다. 두 대통령 모두 비검찰 출신을 법무부 장관에 임명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강금실 법무부 장관 임명이 훨씬 더 파격적이었다. 기수 파괴로 검사장급을 대폭 교체한 인사에 대해서도 평검사들이 집단 성명을 내는 등 반발이 거셌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은 취임 2주 만인 2003년 3월9일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를 열었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라는 유명한 발언도 이 자리에서 나왔다.

정권 초 의욕적으로 검찰 개혁을 추진했지만 결과적으로 참여정부의 검찰 개혁은 실패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나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검찰 개혁의 핵심 내용 모두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지만, 국회의 장벽은 뚫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참여정부는 대법원 아래 사법개혁위원회를 만들어 검찰 개혁 방안을 논의한 뒤 이를 입법화하기 위한 기구로 대통령 직속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를 설치했다. 그러나 사개추위에서 만든 여러 검찰 개혁 방안이 국회로 옮겨진 뒤 대부분 사장됐다. 당시 사개추위에 참여한 하태훈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검찰의 조직적 로비가 굉장히 심했다. 검찰은 워낙 막강하다. 선거법 위반 등의 정보를 가지고 국회의원들에게 로비하면 정치권은 물러설 수밖에 없다. 검사 출신 국회의원도 많다. 그들이 법제사법위원회를 장악하고 있어 개혁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 등 검찰 개혁 의지가 강하다. 그러나 낙관론만큼 회의론도 강하다.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낙마하면서 힘이 빠졌고, 문무일 검찰총장에게서 명확한 개혁 의지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여정부 초기 민정수석이었던 문 대통령은 과거의 실패 경험을 누구보다 잘 아는 위치에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월25일 문무일 총장을 임명하면서 비공식적으로 꼭 한 가지를 당부했다고 알려졌다. “참여정부 때처럼 국회를 상대로 로비하지 말라”는 것이다. 결국 검찰 개혁은 입법 싸움임을 대통령 스스로 정확히 꿰뚫고 있다는 뜻이다. 참여정부의 실패를 발판 삼아 검찰을 개혁할 수 있을지는 대통령과 국회의 손에 달렸다.

국가정보원 개혁_ 구조적 재구성의 제도적 변화

검찰 개혁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과제가 국정원 개혁이다. 참여정부는 국정원 개혁을 위해 정권 초 야당의 거센 반발을 뚫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출신인 고영구 국정원장을 임명해 개혁 작업에 나섰다. 그러나 참여정부의 국정원 개혁은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참여정부에서 국정원 개혁을 위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참여했던 안병욱 가톨릭대 명예교수는 “당시 구체적인 프로그램 없이 의지를 먼저 내세우다 역공을 당한 측면이 있다. 사람을 바꾸고 이를 통해 과거를 성찰하면 다시는 옛날처럼 공작정치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결국 이명박 정부 들어 몇 달 만에 과거로 되돌아가버렸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원 개혁은 현재까지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은 6월19일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를 위원장으로 하는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개혁위)’를 출범시켰다. 개혁위 산하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는 ‘댓글 공작’ 등 국정원의 대선 개입 사건을 비롯한 ‘13대 사건’의 진상 조사에 착수했고, 조직쇄신 TF는 이런 행태를 근본적으로 막는 조직 혁신 작업을 구체화하고 있다. 참여정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전 정권의 적폐만 해결하고 넘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구체적인 제도 변화를 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원 개혁은 참여정부 때의 경험을 안고 시작하는 것이다. 정해구 위원장이 구체적으로 문제를 파고들어 국정원의 본질을 파헤치는 귀납적 방법으로 개혁하는 것이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온다”면서 “적폐 사례들을 지적하는 것과 아울러 국정원을 구조적으로 재구성하는 제도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재벌 개혁_ 금융위 개혁 요구도 제기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차이가 가장 크게 드러나는 정책이 바로 재벌 개혁이다. 참여정부는 정권 초 법인세 인하 등의 정책으로 대기업 손을 들어주었다. 이와 달리 문재인 대통령은 재벌 개혁에 적극 나서는 모양새다.

노 전 대통령은 ‘친재벌’이라는 비판을 들을 만큼 대기업의 편의를 봐주는 정책을 쏟아냈다. 취임 다음날인 2003년 2월26일, 노 전 대통령은 SK그룹 수사로 최태원 회장이 구속된 상황에서 “사정 활동의 속도 조절”을 강조했다. 3월12일에는 당시 고건 국무총리가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기업 부당거래 조사를 연기하라는 뜻을 밝혔고, 6월2일에는 김진표 경제부총리가 법인세 인하를 적극 추진한다고 했다. 물론 2003년의 경제 상황은 지금과 달랐다.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노선이 강화됐고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는 등 경제 위기감이 고조돼 있었다. 그럼에도 노 전 대통령의 행보는 지지자들로부터 따가운 비판을 받았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에는 내용이 없었다. 특히 재벌 개혁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큰 차이가 없다”고 평가했다.

문재인 정부의 분위기는 다르다.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의 친재벌 정책을 누구보다 강하게 비판했던 장하성과 김상조를 각각 청와대 정책실장과 공정거래위원장에 임명했다. 특히 김상조 위원장은 현실적 부분을 고려해 속도를 조절하며 재벌 개혁을 차근차근 실행해나간다는 긍정적 평가가 많다. 전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재벌 개혁과 관련해 “정책적으로 굉장히 참신한 부분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하면서 “재벌 개혁을 실현하려면 금융위원회 개혁도 시급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노동 개혁_ 정부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착수

문재인 대통령이 5월12일 인천공항공사에서 비정규직 노조를 방문해 인사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참여정부 초기 큰 사회적 갈등은 노동문제였다. 2003년 5월 초 운송노조 파업이 전국적으로 확대됐고,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인 나이스(NEIS) 도입 과정에서 불거진 인권침해 논란으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의 갈등이 깊어졌다.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노동비서관을 지낸 박태주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재계와 언론을 비롯해, 노동계에서도 높은 기대율을 충족해주지 못하는 정부에 대한 불만과 저항이 많았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의 개혁 의지는 오히려 사회적으로 빠르게 고립돼버리는 현상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반면 문재인 정부의 노동 개혁은 취임 직후부터 전방위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첫날인 5월10일 ‘일자리위원회 설치’를 1호 업무지시로 내리면서 ‘일자리 대통령’을 자임했다. 이어 5월12일 취임 첫 외부 일정으로 인천공항공사를 찾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했다. 공공 일자리를 7만 개 늘리는 추가경정 예산안과 성과연봉제 폐지, 최저임금 7530원으로 대폭 인상 등 혁신적 정책이 진행 중이다. 문 대통령의 정책 기조는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경험에서 나왔다는 평가가 많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역대 어느 정부보다 일자리와 노동 정책을 가장 중시한 정부가 아닌가 한다. (갈등이 불거질 수밖에 없는) 입법을 통한 정책보다는 주로 정부의 행정 조치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을 1차적으로 밀고 나간다”면서 “일단 정부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착수해 초기에 긍정적 성과를 보였다”고 말했다.

외교·안보 정책_ 상황 더 엄혹한데 대처 미흡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모두 ‘남북 평화를 위한 대화 우선주의’를 표방한다는 큰 틀에서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시대적 상황은 전혀 다르다. 참여정부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으로 구축된 우호적인 남북관계라는 유산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보수정권 9년 동안 냉랭해진 남북관계와 북핵·미사일 위기 앞에 고전을 거듭하는 모습이다.

참여정부는 외교정책에서 명분보다 실리를 택했다. 대표적인 예가 이라크 전쟁 파병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명분 없는 전쟁’이던 이라크 전쟁에 파병을 결정하고 국회에 파병 동의안 처리를 요청했다. 이 결정에 시민사회단체와 여당 내부의 반대는 물론,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까지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은 여기에 더해 참여정부 초기인 2003년 6월 북한 핵·미사일 위협 등을 내세워 한국에 미사일방어(MD) 배치를 추진했다. 이는 현재 문재인 정부를 억누르고 있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배치 문제로 변형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참여정부에서 남과 북은 꾸준히 양자 대화의 채널을 열어뒀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을 이어갔다. 결국 참여정부 말에 노 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는 역사적 장면을 연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환경은 훨씬 엄혹하다. 남북관계는 사상 최악으로 악화됐고, 북한은 미국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발사했다.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제안’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다. 당황한 문재인 정부는 북한이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ICBM을 발사하자, 그와 직접 관계없는 사드 발사대 4기를 임시 배치하겠다고 선언했다. 참여정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한반도평화체계담당관을 지낸 김진향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 연구교수는 “분단을 넘어설 수 있는 평화적 남북관계로 가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는 현재 한 치 앞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사드 배치도 즉자적으로 그렇게 (결정)하는 게 맞는지 안타깝다”면서 “미국은 군사적 위기를 조성해 남북관계 정상화를 차단해왔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이 벌여놓은) 판 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김지혜 교육연수생 cuteog@hanmail.net· 윤수현 교육연수생melancholy8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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