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허정 감독의 공포영화 '장산범'

정원식 기자

허정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장산범>은 목소리를 흉내내 사람을 홀린다는 하얀 털의 귀신 ‘장산범’을 소재로 삼은 호러 영화다. 장산범은 부산 지역에서 떠도는 도시괴담인데, 감독의 첫 장편이자 호러 장르 영화로는 드물게 5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던 <숨바꼭질>(2013)도 아파트 단지를 배경으로 한 도시괴담을 소재로 했다.

허정 감독의 영화  <장산범>.

허정 감독의 영화 <장산범>.

희연(염정아)과 민호(박혁권) 부부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허진)의 요양을 위해 서울에서 딸 준희와 함께 장산의 외딴 집으로 이사한다. 집 근처 산에는 오래 전에 폐쇄된 장산동굴이 있다. 어느날 희연과 민호는 잃어버린 개를 찾아나선 어린 남매를 도와주다 동굴에 매장당한 시체를 발견한다.

두 사람은 동굴 근처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녀(신린아)를 만나는데, 경찰의 현장 검증으로 부산한 틈에 홀연히 사라졌던 소녀가 어느날 밤 희연의 집 창문을 두드린다. 며칠 동안 말 한 마디 하지 않던 소녀는 함께 놀던 준희의 목소리를 그대로 따라하기 시작하고, 그 뒤부터 집 안에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영화에는 두 종류의 서사가 공존한다. 하나는 귀신을 소재로 한 호러-스릴러적 요소이고 다른 하나는 모성애를 동력으로 삼는 가족-멜로 드라마적 요소다. 결과적으로는 멜로적 요소가 서사의 긴장감을 느슨하게 만들면서 ‘공포’의 강도는 밋밋해졌다.

희연은 5년 전 실종된 아들 준서에 대한 죄책감을 끌어안고 사는 인물이다. 장산으로 이사를 결심한 것도 시어머니의 기억을 되살려 실종 당시의 정황을 복구하기 위해서다. 마을의 무녀(길해연)는 소녀가 장산범의 분신이라며 절대 믿지 말라고 경고하지만, 희연은 소녀가 준서의 목소리마저 똑같이 흉내내며 ‘버리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자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공포를 유발하는 장치들은 다소 진부하다. 갑작스런 귀신의 출현, 날카로운 비명, 피칠갑이 된 귀신 등 호러 영화의 전형적 요소들이 예측 가능한 시점에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등장한다. 장산범 괴담의 공포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내 가족인지 장산범인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나오지만, 영화에서는 목소리 뒤의 실체가 진짜 사람인지 장산범인지가 비교적 쉽게 간파된다. 이 때문에 제작진이 관객에게 충격을 주기 위해 공들여 설계한 사운드의 효과도 반감된다.

허정 감독의 영화 ‘장산범’.

허정 감독의 영화 ‘장산범’.

영화를 지탱하는 힘은 무엇보다도 <장화, 홍련> 이후 14년 만에 호러 영화로 돌아온 염정아와 <덕혜옹주>, <국제시장> 등에 출연했던 배우 신린아의 연기다. 큰 눈에 섬약한 표정으로 호러 장르와 잘 어울리는 분위기를 지닌 염정아는 강력한 모성애를 밀도 높은 연기로 소화한다. 순진무구하고 신비로운 표정으로 한 가족을 파국에 몰아넣는 소녀를 연기한 신린아는 한국 영화가 그동안 발견해온 ‘천재’ 아역들의 계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만하다. 장산범에 영혼을 빼앗긴 무당 역을 맡은, 이준혁의 문자 그대로 ‘신들린’ 연기도 빼어나다. 17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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