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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광복절을 맞은 태극기 제조·유통업계 현장은 싸늘했다. 과거 광복절이면 매출이 2~3배 올랐던 ‘반짝 특수’는 더이상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태극기 구매 수요가 크게 줄어든데다 탄핵정국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단체들이 각종 집회에서 태극기를 앞세운 탓에 젊은 층을 중심으로 태극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한 것도 태극기 판매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태극기 판매량 예년 절반 수준 급감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태극기 시장은 약 100억원대로 추정된다. 국내에서 태극기를 제조하는 업체는 동산기획, 대한섬유 등 5곳 정도다.
대표적인 태극기 제조회사인 동산기획에도 광복절 특수는 옛날 얘기다. 연매출 30억원 수준인 이 회사는 원단을 외부에서 받아 태극기를 직접 제조한다. 동산기획 외에 대다수의 태극기 제조업체들은 외주업체로부터 원단, 깃, 봉 등을 납품받아 조립하는 방식으로 태극기를 제작하는 영세회사들이다.
동산기획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그나마 일부 판매가 됐었는데 올해는 아예 태극기가 팔리지 않아 힘들다”며 “기대했던 광복절 특수도 전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태극기 제조업체 관계자도 “태극기 판매가 저조해진 것은 오래된 일”이라며 “소비자들이 다양하고 많아야 하는데 일단 수요가 없다. 태극기 제조사들 여러곳이 문을 닫았고 깃봉 등을 납품하는 외주업체들 중에도 실제 폐업 직전인 곳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지난해 무료로 대거 배포해 버린 탓에 가뜩이나 수요가 없는 시장이 올해는 더 어려워졌다”며 “태극기는 수십년도 쓰기 때문에 신규 수요가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태극기 유통사이트 ‘플래그몰’의 올해 태극기 매출은 전년 대비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플래그몰 관계자는 “예전에는 기념일에는 일반 소비자들의 수요가 조금이나마 있었는데 지금은 기업, 단체 등 행사용으로 주문하는 것만 일부 있을 뿐”이라며 “지난 30~40년간 오토바이를 타고 각종 집회나 행사현장에서 태극기를 판매해온 상인들도 요새 같이 일이 없었던 적은 없다면서 울상을 짓더라”고 전했다.
그나마 남아 있는 태극기 시장도 중국산이 대부분 잠식한 상태다. 현재 대규모 행사에서 사용되고 있는 태극기의 약 90% 이상이 중국산인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품질은 떨어지지만 국산 제품보다 가격경쟁력이 월등히 우위여서 최근 1~2년새 시장을 대거 잠식했다.
태극기 집회 탓 부정적 인식 확산
이래원 대한민국국기홍보중앙회 회장은 “태극기를 구입하는 사람이 줄어든 것은 박 전 대통령 탄핵 관련 집회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며 “태극기에 ‘박근혜 탄핵 반대’라는 정치적인 이미지가 덧입혀진 탓에 일반 소비자들은 ‘괜히 오해 받기 싫다’면서 태극기 구매를 꺼려한다”고 우려했다.
심지어 삼일절, 현충일 등 국경일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것조차 기피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정부차원의 대책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신동규 대한민국재향군인회 홍보기획부장은 “태극기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진 까닭에 올해 삼일절과 현충일에 태극기 게양을 꺼리는 사람들이 늘어난 걸 체감했다”며 “국민 통합을 위해서라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나서 게양을 독려하고 한 마음이 될 수 있도록 긍정적인 계기를 만들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태극기 집회보다도 기본적으로 태극기를 국가의 상징으로 바라보는 의식이 희미해진 것이 더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광복회 관계자는 “탄핵 반대 집회 같은 일시적인 이유보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무의식적으로 태극기 게양을 중요시하지 않는 공교육에 있다”며 “일년에 몇 번 안되는 국경일에 조차 태극기를 게양하지 않는 것은 ‘나 하나 쯤은 태극기를 달지 않아도 괜찮다’라는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됐을 개연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