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연결음이 바뀌자 "씨XX아" 욕설이 사라졌다
"수고한다" 인사하는 고객들 늘고, 상담원들은 스트레스 54%p 낮아져
[한겨레]
“남자 직원 바꿔. 바꾸라고 이 씨XX아. 말귀 존X게 못 알아듣네.”
짜증 섞인 욕설이 사정없이 귀에 꽂힌다. 한국지엠(GM) 고객센터 상담원 박미진씨는 이런 욕설이 들려오면 “아무 것도 못하고 손을 벌벌 떤다”고 했다.
“용역하고 있는 주제에. 미X 씨X.”
반말과 인격모독성 발언도 예사다. 음담패설이나 성희롱 경험도 적지 않다. 상담원 박희경씨는 “‘왜 내가 이런 욕을 듣고 있어야 되지? 나도 집에 가면 귀한 딸인데’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콜센터 상담원들에게 폭언과 성희롱 같은 언어폭력은 일상이다. 그런데 지난달 한국지엠의 상담원들에게 작은 변화가 생겼다.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첫마디에 “수고하십니다”라고 말하는 고객이 생겨났다.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인사를 한 뒤 전화를 끊는 고객도 늘었다. 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한 기업의 사회공헌 캠페인 ‘마음이음 연결음’이 가져온 변화다. 지에스(GS)칼텍스는 한국지엠과 협업해 지금 전화를 받는 상담원은 누군가의 가족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통화연결음을 만들고, 지난 6월30일부터 실제 현장에 적용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해당 연결음이 적용된 지 5일 만에 상담원의 스트레스가 54.2%포인트(79%→25%) 줄었다. 반면 고객의 친절한 한마디는 8.3%포인트(58%→66%) 늘었다. “멘트가 참 좋네요.” “사실은 (자동차) 램프가 좀 어두워서 짜증 났었는데 그분 연결하니까 내가 화를 못 내겠네.” 전화를 건 고객들이 화답했다.
캠페인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유튜브의 ‘마음이음 연결음’ 캠페인 영상은 조회수 200만건을 넘겼다. 페이스북 게시물의 ‘좋아요’도 9700여개를 기록했다.
“이렇게까지 반응이 터질 줄 몰랐어요.”
캠페인을 제안한 광고대행사 역시 지금의 반응이 놀랍다. 전훈철 ‘애드쿠아’ 대표는 “감정노동자분들이 힘든 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라며 “상담원들을 위한 대책은 주로 휴가, 상담, 회식 등 ‘사후’ 프로그램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그걸론 충분히 개선이 안 되는 부분이 있다. 폭언 등을 사전에 막아보자는 데서 시작했다”고 밝혔다.
“통화연결음을 바꾸자.”
캠페인의 시작은 막내 카피라이터가 툭 던진 한마디였다. 이후 전 대표 등 12명의 팀원이 머리를 맞댔다. 지난 2월에 처음 시작해 최종 론칭까지 5개월이 걸렸다. 모두가 환호한 아이디어였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 암초가 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거절 끝에 연이 닿은 곳이 한국지엠이었다. 한국지엠의 관리자들도 현장에서 15년 이상 ‘공력’을 쌓은 사람들이었다. 누구보다 현장의 어려움을 잘 알았고, 실무자들도 적극 협조했다.
애드쿠아가 집중한 건 한 가지였다. ‘사람들이 상담원들을 대할 때 이들도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 일반인들을 섭외해 통화연결음을 녹음했다.
변경된 통화연결음은 지금까지 6주가량 계속되고 있다. 캠페인 영상이 화제가 되자 해당 통화연결음을 들으려고 일부러 전화를 했다가 끊는 사람도 늘었다고 한다. 콜센터 업계에서도 화제다. 국외에서 상담원으로 일하는 한국 교민이 “외국에도 도입하면 좋을 것 같다”며 연락을 해오기도 했다.
애드쿠아의 다음 계획은 ‘엄마’나 ‘딸’ ‘아내’뿐만 아니라 ‘친구’ ‘아빠’ 등 다양한 통화연결음을 만드는 것이다.
“피드백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그중 하나는 남성 상담원들을 위한 연결음은 없냐는 거였죠. ‘믿음직한 제 친구가 상담할 예정입니다’처럼요. 새롭게 녹음해서 더 많은 기업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계속 올릴 계획이에요.”
마음이음 연결음은 원하는 기업이 다운받아 쓸 수 있도록 음원이 공개돼 있다. 이달 말에는 새로운 연결음도 추가된다. 애드쿠아 이민우 소셜커뮤니케이션본부 매니저는 “연결음 저장소를 만들어서 소상공인부터 대기업까지 필요에 따라 적용할 수 있도록 확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전 대표는 ‘마음이음 연결음’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변화할 거라고 믿는다. 전 대표의 소망은 처음 자신의 페이스북에 해당 캠페인을 공개했을 때 적은 글에 오롯이 남아 있다.
“우리의 노력이 세상을 조금만이라도 바꿔줬음 한다. 광고가 세상을 바꿀 수도 있음을 보여줬음 한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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