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배우는' 자기계발 시대 저무나

2017. 8. 14.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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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서 판매 5년새 32% 급감
인문교양, 과학 서적은 꾸준히 늘어

4차혁명 등 사회급변기 맞아
단기적 요령보다 '미래'에 주목
"자기계발서의 변주일 뿐" 지적도

[한겨레]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2002), <마시멜로 이야기>(2012) 등 굵직한 자기계발서를 내온 21세기북스는 출간하는 책의 분야별 비중을 최근 대폭 조정했다. 4년 전 ‘아르떼’라는 인문교양·문학 단행본 출판 브랜드를 만들면서부터다. 당시엔 자기계발·경제경영서의 비중이 80, 인문교양·문학서의 비중이 20이었는데, 점차 바꿔 올해는 정반대로 20 대 80이 됐다. 신승철 21세기북스 본부장은 “냉정하게 말하자면 정통 자기계발서 시장은 초토화됐다”고 말했다.

출판시장에서 흔들릴 것 같지 않던 자기계발서의 입지가 달라지고 있다. 자기계발서 시장이 줄어드는 것은 전체적인 수치로도 확인된다. 교보문고의 판매 자료를 보면, 2012년 상반기에 견줘 5년 뒤인 2017년 상반기 자기계발 분야 도서는 판매량이 32% 급감했다. 반면, 같은 기간 인문 분야 도서는 14%, 시·에세이는 4% 판매량이 증가했다. 출간된 도서 종수도 비슷한 추이를 보였다. 자기계발 분야 도서는 673종으로 제자리걸음을 한 반면, 인문(2499→2739종)과 시·에세이(1833→2208종) 분야에서 출간된 도서 종수는 대폭 늘어났다. 박정남 교보문고 구매팀 과장은 “종합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자기계발서 3권이 오른 2013년을 끝으로 자기계발 분야 도서의 자리를 가벼운 인문교양서와 에세이류가 대체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분석했다.

*그래프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자기계발·경제경영 전문 중소출판사도 인문교양으로 분야를 넓히고 있다. 2003년 창사 후 자기계발과 경제경영 책만 내던 흐름출판은 지난해 죽음을 앞둔 36살 의사가 쓴 <숨결이 바람 될 때>, 지난 6월엔 한동일 신부의 <라틴어 수업>을 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유정연 흐름출판 대표는 “5년 전부터 앞으론 인문서에 대한 관심이 커질 것이라는 판단에 인문서 비중을 늘려 지금은 자기계발서와 비슷한 정도로 낸다”고 말했다.

이렇게 자기계발서가 줄어드는 반면 인문·과학 서적이 인기를 끄는 배경으로는 사회와 산업 전반의 구조 자체가 바뀐다는 ‘4차 산업혁명’ 담론의 유포가 꼽힌다. 사회가 급변하는 시기엔 단기적인 행동요령이 담긴 자기계발서보다,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변해가는지부터 일단 파악하려는 심리가 작용한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대표 서적으로 일컬어지는 ‘빅 히스토리’로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는 각각 35만부, 12만부가 나갔다. 이 책도 인문교양서로 분류되어 있다. 고세규 김영사 이사는 “이 책이 많이 나간 이유는 ‘미래에 당신의 삶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미래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는 목적성과 실용성이 뚜렷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고 이사는 “독자들이 자기계발서가 제안하는 단기적인 테크닉을 익혀서는 답이 안 나온다는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며 “사회의 변화를 읽기 위해선 인문·과학적 기반이 탄탄한 책들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현상일 뿐, 실상은 자기계발서의 ‘영역 확장’이자 ‘무한 변신’이라는 분석도 있다. 자기계발서 연구·비판서 <거대한 사기극>을 쓴 이원석 작가는 “전통적인 장르의 자기계발서는 약해진 대신 지금은 자기계발서의 다원주의 시대”라고 짚었다. 자기계발서는 ‘이렇게 하라’고 가르치는 전통적인 형식을 뛰어넘어 윤리, 신비주의, 치유, 인문학 등 장르를 넘나들며 퍼져나갔고, 이 가운데 치유적 자기계발서는 에세이로, 인문학적 자기계발서는 인문교양으로 분류돼 출간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1970~80년대 대형교회와 대기업·다단계업체 세일즈맨을 중심으로 유통되던 긍정심리학과 자기계발서는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각자도생’의 장이 열리자, 본격적으로 일반인들한테까지 퍼져나갔다. 당시엔 300만부 이상 팔려나가며 메가히트를 친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1994·자기계발)처럼 ‘노력하면 된다’는 윤리적 자기계발서가 크게 유행했다. 이어 노력만으로는 쉽지 않고 생각을 바꾸면 우주가 돕는다는 신비적 방식의 <시크릿>(론다 번·2007·자기계발) 등이 각광을 받았다. 그 자리를 이어받은 건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2010·에세이), 혜민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2012·에세이) 등 ‘힐링 에세이’ 성격을 띤 ‘자기계발서’들이었다. 이지성 작가의 <리딩으로 리드하라>(2010·자기계발),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2014·인문)처럼 인문고전에서 성공의 길을 찾는 ‘인문학적 자기계발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흐름은 채사장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2014·인문) 같은 실용적인 인문학으로 이어졌다. 이원석 작가는 이런 역사를 근거로 ‘자기계발서의 다원화’를 주장한다.

이 작가는 “사회가 바뀌기 전까지 사람들은 계속 자기계발서를 찾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자기계발서를 찾는 사람들의 뒤엔 자기계발을 요구하는 사회가 있다”며 “핵심은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정말 사회가 바뀌려면 시민들이 정치의식을 가져야 하고, 공동체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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