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무계획·환심사기가 '임용 절벽' 불렀다

윤석만 2017. 8. 14.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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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 사회1부 기자
“정부가 교사 증원을 약속해 놓고 사실상 ‘임용 절벽’을 만들었다. 학생들에게 기대감만 한껏 심어놓고 뒤통수 친 것밖에 더 되나?”

익명을 원한 어느 교육대학 교수는 교사 임용 인원이 급감한 작금의 사태를 이렇게 평했다. 그의 말처럼 배신감을 느낀 교원 임용시험 준비생들은 11일(초등교사 준비생), 12일(중등교사 준비생) 이틀간 서울에서 대규모 항의 집회를 열었다. 초등교사 준비생들의 임용 절벽에서 시작한 논란이 중등교사 준비생으로까지 번졌다. 두 집단이 처한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이들이 공히 비판하는 것은 정부의 잘못된 ‘교원 수급’ 정책이다.

올해 초등교사 선발 인원이 지난해보다 40% 이상 급감한 건 교육부·교육청의 잘못된 선택 때문이다. 초등학생 수 감소에 맞춰 신규 임용 인원을 줄여야 했다. 그런데도 지난 정부에선 매해 5000명 안팎을 새로 뽑았다. 명분은 ‘청년 일자리 확대’였다. 당연히 교사 과잉공급으로 3817명이 미발령 상태가 되었다. 3년간 발령이 안 되면 임용자격이 박탈되기 때문에 각 교육청은 올해 신규 임용 인원을 대폭 줄여야 했다.

중등교사 임용시험 준비생들이 12일 서울 청계천에서 항의집회를 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 교사 1만5900명 증원’을 약속했다.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 창출’의 일환이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올해 3000명 증원 계획을 제시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교사가 부족한 유치원(800명), 특수교사(600명), 보건·영양·상담 등 비교과 교사(1130명)가 대부분이다. 임용 절벽에 처한 초등교사는 아예 증원 대상이 아니고 중등교사는 470명에 불과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원을 단계적으로 증원해야 하는데 특정 시기에 인원을 확 늘려 몇 년 후 임용 절벽 사태를 맞이하는 사태가 반복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근본 원인은 교원 임용을 장기적 계획 없이 환심성 차원에서 폈기 때문이다. 교육 본연의 목적이 아니라 ‘청년 일자리 창출’ 같은 다른 정책수단으로 잘못 쓴 측면도 있다. 새 정부가 계획하는 1만2900명 교사 증원도 치밀함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또 다른 재앙을 부를 수 있다.

교원 수급은 적어도 ‘십년지계(十年之計)’를 세워야 한다. 중장기 계획을 세우고 학생 수 감소와 퇴직 인원을 고려해 신중하게 매년 선발 인원을 정하는 신중함이 필수다. 특정 시기의 유권자와 대학생들 환심 사는 데 급급하면 임용 절벽 폭탄은 언제 또 터질지 모른다.

윤석만 사회1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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