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추적]'남교사=성추행 가해자'란 고정관념이 낳은 비극인가?
4월 부안경찰서와 교육청 "여학생 7명이 성추행 피해자" 신고 접수
당초 성추행 주장한 여학생들 뒤늦게 하나둘씩 "피해 사실 아니다" 부인
"선생님이 '다리 떨면 복 떨어진다' 무릎 쳤을 뿐인데 성추행 주장" 진술 번복
경찰 내사 종결했지만 인권센터 "성희롱 등 인권침해 있었다" 결정
반발한 유족들은 "인권센터가 누명 씌웠다"며 법적 대응 나서
강씨에 따르면 목숨을 끊은 날 남편 송씨는 은행에서 돈을 찾아 수박과 복숭아·불고기 등을 사들고 부안에 사는 노모(85)를 찾아 갔다. 어머니와 함께 식사도 하고 용돈도 드렸다. 강씨는 "애아빠가 어머니에게 마지막 '하직 인사'를 하러 간 것 같다"며 울먹였다.
송 교사가 숨지기 전 집 책상 위에는 올해 대학에 입학한 딸이 '부모님께 효도하겠다'고 쓴 편지와 자동차 열쇠, 지갑, 집 문서 등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고 한다. 숨진 송 교사의 바지 주머니에는 동전 몇 개와 담배 한 갑, A4 절반 크기의 유서가 나왔다. 유서에는 "모두 내 잘못이다. 아내와 (나를) 도와준 학생 아버지는 아무 잘못이 없다. 이런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전북지방경찰청 여성청소년수사계는 지난 4월 21일 송 교사에 대한 내사를 마무리했다. 당초 피해를 호소한 여학생들이 "성추행을 당한 일이 없다"고 진술을 번복하고 학부모들도 송 교사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시기 성추행 신고를 접수한 전북도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이하 인권센터)는 송 교사에 대한 조사를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인권센터는 "송 교사가 성추행까지는 아니지만 성희롱을 했다"고 판단하고 도교육청에 신분상 제재를 권고했다.
26세 때 장수 산서고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한 송 교사는 지난 2012년 3월 이 학교에 부임했다. 이 사건은 같은 학교 체육교사(54)가 지난 4월 19일 오후 유선전화로 부안교육지원청과 부안경찰서에 "송 교사가 여학생들을 성추행했다"고 신고한 게 발단이 됐다.
강씨에 따르면 송 교사는 지난 5월 2일 인권센터에서 문답 형식의 조사를 받았다. 송 교사가 '내가 무엇으로 신고를 당했느냐'고 묻자 조사관은 "학생 보호 차원에서 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송 교사가 "나도 인권이 있다"고 하자 조사관은 "여기선 학생 인권만 다룬다"고 말했다고 강씨가 전했다. 그래서 송 교사는 '나를 벌 주려고 작정했구나' 생각했다고 부인 강씨가 말했다.
강씨는 "5월 10일 애아빠와 함께 만난 도교육청 중등 담당 장학사로부터 '조사도 하기 전에 사건이 언론에 먼저 알려지는 바람에 교육부에서 교육청에 (송 교사를) 징계 처분하라고 닦달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강씨는 "학생들과 학부모가 탄원서를 제출했다. 제3자가 제기한 구제신청에 대해 피해자가 조사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고 경찰도 내사 종결했다. 학생인권조례에 의하면 각하 조건인데 각하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센터 측은 "사안이 중대하면 직권 조사로 전환하기도 한다. 다시 조사하자"고 했다. 송 교사는 이틀 뒤인 12일 다시 문답서를 작성했다. 강씨는 "인권센터 업무 지침을 보면 직권 조사하려면 구제신청이 없어야 하는데 직권 조사를 정당화하려고 센터 측이 일부러 조사를 다시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부안교육지원청은 송 교사의 직위해제 기간이 끝난 7월 24일과 25일 송 교사를 불렀다. 강씨에 따르면 교육지원청 측은 송 교사에게 "9월 1일자로 전보 발령을 낼 테니 다니던 중학교에는 가지 말라"고 했다. "언론에서 이 사건을 주시하고 있고, 학생들이 2차 피해를 본다"는 게 이유였다. 강씨는 "이날 남편이 '내 인생은 완전히 끝났다'고 낙담했다. '이런 오명을 뒤집어쓰고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했다. 그 뒤로 애아빠는 곡기를 끊고 넋이 나갔다. 몸무게는 13㎏이 빠졌다"고 말했다.
"송 교사가 성희롱을 했다"는 심의위 결정에 반발한 A중학교 여학생과 남학생, 졸업생들은 지난 달 22일부터 순차적으로 "선생님은 잘못이 없다"는 탄원서를 썼다. 강씨는 "50여 명한테 탄원서를 받았는데 교육청에 보내지도 못하고 남편이 죽었다"며 울먹였다.
탄원서에는 "저희들 모두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잘했다고 칭찬해 주는 것도, 다리 떨면 복 떨어진다고 무릎 친 것을 주물렀다고 적었다. 허벅지는 절대 아니다. 그러면(성추행당했다고 하면) 야자시간에 서운했던 일이 빨리 해결될 줄 알았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강씨는 "남편이 숨지기 전에 김승환 전북교육감을 세 번이나 찾아갔지만 한 번도 만날 수 없었다"며 "남편을 성추행범으로 몬 학교와 부안교육지원청·전북도교육청·인권센터 관계자들에 대해 법적 대응에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강씨는 지난 11일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부패한 교육행정과 오만한 학생인권센터가 제 남편을 죽였습니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13일 오후 5시 현재 1919명의 누리꾼이 지지 서명을 했다.
이에 대해 인권센터 측은 송 교사의 죽음에 대해 안타까워하면서도 "조사는 절차대로 정당히 이뤄졌다"고 반박했다. 인권센터 관계자는 "형법상 성추행으로 보긴 어렵지만 학생들에게 수치심을 줄 수 있는 성희롱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행위는 있었지만 '의도는 없었다'는 것은 내심의 영역"이라며 "(신체) 접촉 횟수에 대해서는 학생들의 진술과 차이가 있지만 (송 교사의 진술이) '접촉은 없었다'는 주장은 아니다"고 말했다.
인권센터에 따르면 여학생들에 대한 자술서는 학교와 부안경찰서·전북경찰청에서 세 차례 받았다. 그는 경찰의 내사 종결에 대해서도 "경찰이 '혐의 없음' 처분을 내린 게 아니라 사안이 경미하고 피해자들이 조사를 원치 않아서 내사 종결한 것으로 안다. 송 교사의 경우 형사처벌을 면한 것이지 행정처벌이나 행정처분은 별개"라고 말했다.
여학생들이 '성추행은 없었다'고 진술을 바꾼 데 대해 그는 "다른 관점에서 보면 학생들이 충분히 수치심을 느껴야 하는데 못 느끼고 있다는 건 성적 자존감이 떨어져 있는 상황으로 해석될 수 있다. 행위가 있었냐, 없었냐의 문제가 아니라 해석의 차이"라고 말했다.
'구제신청에 따른 조사는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각하해야 하는데도 인권센터가 직권 조사를 강행했다'는 송 교사 유족의 주장에 대해 그는 "학교폭력 사안 처리 절차에 따라 처음부터 직권 조사를 결정했다"고 반박했다. '신고한 교사가 송 교사를 음해한 게 아니냐'는 일부 주장에 대해서도 "해당 교사는 학교폭력 전담 교사로서 학교에서 성추행 사건이 일어났을 때 업무를 처리하는 담당자"라고 했다.
전북도교육청은 송 교사 유족의 요청에 따라 진상 조사에 들어갔다. 정옥희 전북도교육청 대변인은 "유족이 명예 회복을 원하기 때문에 도교육청 차원에서 진상 조사를 하고 있다"며 "돌아가신 분이 어떤 마음 상태였는지 이해는 가지만 교육청 인사 업무 지침상 학교에서 성 관련 제보가 왔을 때는 가벼운 사안이라도 교사는 직위해제한 상태에서 대기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정 대변인은 "인권센터는 경찰 수사와 상관없이 인권 침해에 대한 설문 및 상담을 하고, 설문 자료를 바탕으로 교육감에게 교사에 대한 징계 등을 권고한다"며 "학생들은 학교에서 약자이고, 약자의 얘기를 들어주는 게 인권센터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전북교원단체총연합회는 지난 9일 성명서를 통해 "인권센터는 그동안 무리한 조사와 지나치게 학생들의 진술에 의존한 조사 등으로 현장 교사들의 비판을 받아 왔다"며 "사법 당국이 (송 교사 죽음에 대한) 철저한 진상을 밝혀 책임을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안=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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