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영등포 등 민자역사 30년계약 연말 종료..유통사는 '깜깜이 전쟁'

안재광 입력 2017.08.13. 19:10 수정 2017.08.14.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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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영등포역·동인천역사 가이드라인 준다던 국토부
지난 3년간 차일피일 미뤄
기존업체 고용 등 불확실성
진입 노리는 유통업체들도 "정부 입만 쳐다보고 있다"

[ 안재광 기자 ]

영등포역 롯데백화점


1987년 롯데는 서울 영등포역 자리에 백화점을 짓기로 했다. 낡은 영등포역을 크고 깨끗하게 바꿔주는 대신 정부로부터 백화점 운영권을 받았다. 국내 최초 민자역사였다. 정부는 같은 해 서울역(옛 역사)과 동인천역도 민자역사 전환을 결정했다. 계약기간은 30년. 올해 말 이들 민자역사 3곳의 계약이 끝난다. 국내 총 15개 민자역사 중 첫 계약만료 사례다. 그런데 이들 민자역사 3곳은 영업을 더 할 수 있을지, 정부에 시설물을 반납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정부가 계약만료 4개월을 앞두고도 이들 민자역사 처리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어서다. 민자역사에서 영업 중인 유통회사들도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국토부 “연내 처리…기다려달라”

국토교통부는 애초 2014년 가이드라인을 주기로 했다. 30년이나 역사를 쓰고 있는 사업자들의 불확실성을 덜어 줄 필요가 있었다. 영등포역은 롯데백화점이, 서울역 옛 역사는 계약자인 한화로부터 롯데마트가 임차해 쓰고 있다. 동인천역은 과거 쇼핑몰과 백화점 등이 있다가 현재는 영업을 하고 있지 않다.

국토부 산하 철도시설공사는 당시 공정한 처리를 위해 서울대 산학협력단에 가이드라인 연구용역 위탁을 줬다. 그런데 용역결과가 나온 뒤 국토부는 결정을 보류했다. 국토부는 보류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2015년 같은 곳에 또 한 차례 연구용역을 맡겼다. 국토부는 이후 “조만간 방향을 정하겠다”며 차일피일 결정을 미뤘다. 그렇게 3년을 끌다 계약 만료 직전까지 왔다.

서울역 롯데마트


서울역과 영등포역 계약자인 한화와 롯데 관계자들은 “기다리란 얘기뿐 다른 말은 듣지 못 했다”고 했다. “언론플레이하는 것처럼 오해를 살 수 있어 어디에 하소연도 못 했다”는 말도 나왔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연구용역 결과는 이미 나왔으며 올해 안에 처리 결과를 공개할 테니 기다려 달라”고 했다.

민자역사에서 영업 중인 유통사는 사업계획을 세우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불확실성 때문에 인력 채용이나 시설 투자는 엄두를 못 낸다. 이들 민자역사에 새롭게 진입하고 싶어 하는 유통사들도 불만이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3개 역사 모두 입지가 좋아 새 사업자를 뽑는다면 입찰에 참여하고 싶다”며 “정부 입만 보고 있다”고 했다.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동인천역사는 올초 상가 임대분양에 나섰다가 중도에 접었다. 시행사 측이 “민자역사 계약이 연장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동인천역은 과거 인천백화점 등 대규모 상업시설로 쓰이다 영업이 어려워지자 지금은 사실상 방치된 채 있다.

“국가 귀속 시 상권 활성화 어려워”

정부가 어떤 식으로 결론을 내리든 파장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국가 귀속 후 새 사업자 선정이 이뤄지면 고용대란 가능성이 있다.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에는 판매사원 등 3000여 명이 근무 중이다. 서울역 롯데마트 근무 인원은 약 700명이다. 새 사업자가 선정돼 이들 직원 중 일부를 다시 채용한다 해도 대량 해고가 불가피하다. 작년 면세점 특허권 만료 과정에서 SK와 롯데에서 실제 이런 일이 있었다. SK의 워커힐면세점과 롯데의 월드타워점 면세점 특허를 관세청이 취소하자 수천 명이 이직 또는 휴직하거나 회사를 그만뒀다.

국가에 귀속되면 ‘국유재산법’상 임대기간이 최장 10년(기본 5년, 추가 5년)으로 제한되는 것도 유통업계의 우려 사항이다. 30년 계약 때는 대규모 시설 투자가 가능했지만, 10년 계약을 할 경우엔 투자가 쉽지 않다. 더구나 국유재산은 제3자에게 임대할 수 없어 상당수가 임대 매장인 백화점이나 마트 등은 영업이 힘들다. 한화가 롯데에 통째로 재임대를 줘 영업 중인 서울역 롯데마트 같은 형태도 불가능하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달 보고서에서 “역사 임대가 가능하도록 철도사업법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