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기회의 땅' 극동러시아] 南·北·러 3각 경협 기반 마련.. 北 개방 이끌 지렛대 활용

김예진 입력 2017.08.13. 18:57 수정 2017.08.13.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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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내달 訪러 동방경제포럼 참석/中·日보다 먼저 방문한 것은 처음/北·4강 외교 숨통 틔울 기회될 수도/北 개혁 유도 남북 공존 공영 구상/경제공동체 구축 평화 유지 노려
5·9 대통령 선거를 2주 앞둔 지난 4월25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에서는 한·러 양국의 민·관·산 합동대화채널인 한·러대화(KRD)가 개최한 ‘차기정부 한·러관계 발전방향’ 토론회가 열렸다. 러시아 전문가들이 총출동해 역대 정부의 한·러관계 평가와 차기 정부에 대한 고언을 쏟아낸 토론회를 찾은 대선 캠프는 단 한 곳이었다. 이날 사회자는 “한 대선 캠프에서도 와 계시다”며 사의(謝意)를 표시하기도 했다. 이 캠프가 문재인 후보 측이었다.



◆한국 정상 최초 중·일보다 먼저 러시아 방문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러시아와의 관계회복이 중요하다”며 한·러 관계 강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대(對)러시아 특사로서 북방경제협력위원회(가칭) 초대 위원장에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방러 직후인 지난 6월 세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부친 고향이 함경남도 함흥이다. (문 대통령이) 러시아와 가까운 아버지 고향에 애정이 있어 남·북·러 경제협력 사업에 관심이 있는 DNA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다음달 6∼7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제3차 동방경제포럼(EEF)에 참석한다. 취임 후 주변 4강(미·중·러·일) 국가 중 미국에 이어 두 번째 방문국이다.

한국 대통령이 취임 후 중국, 일본보다 먼저 러시아를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13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로 한·중관계가 악화하면서 8월 방중이 무산된 것도 한 이유지만 방중, 방일에 앞선 방러는 그만큼 특별한 의미”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방러는 북한과 4강에 둘러싸인 우리의 외교안보적 상황이 꽉 막혔을 때 러시아가 공간을 제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문재인정부는 지난달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계획을 통해 동북아시아 지역의 지정학적 긴장과 경쟁구도를 타파하고 동북아지역의 장기적 평화협력적 환경조성 구상으로 신북방정책을 제시했다.

주요 내용으로는 △유라시아협력 강화 등 대륙전략으로서의 신북방정책 추진 △나진·하산물류사업과 철도 전력망 등 남·북·러 3각 협력 추진 기반 마련 △러시아· 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 등이 회원국인 유라시아경제연합(EA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구상 참여 등을 포함하고 있다.

대선공약으로 밝혔던 북극 항로 공동개척과 에너지 등 경제협력 확대 문제도 한·러 협력강화의 시야(視野)에 들어 있다. 부산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는 기존 항로에 비해 러시아 극동지역 해안을 거쳐 북극항로를 이용할 경우 거리상으로는 7000㎞, 운항 일수로는 10일이 단축돼 획기적 물류 혁명이 일어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는 북극항로 이용에 러시아와의 협력은 필수다. 러시아는 북극항로로 가는 관문이자, 북극에 국경을 인접한 몇 안 되는 국가 중 최대 면적을 북극항로에 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정부의 신북방정책은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구조 재편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당면한 경제과제와도 접점을 이루는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남·북·러 경제협력의 장으로 극동을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통해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하고 남북이 공존공영하는 경제공동체 구축을 통해 한반도 안보를 유지하겠다는 구상으로 보인다.

◆북한, 경제성, 미·러관계 3대 변수 고려해야

역대 정부는 북방관련 정책을 추진했으나 노태우정부의 대(對)공산권 외교 외에는 가시적 성과가 크지 않았다. 객관적 현실에 따른 냉철한 분석을 통해 여러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외교부 고위간부 출신의 한 러시아 전문가는 “과거 정부도 중요성이나 방향성에 대한 인식은 같았다”며 “실질적으로 구체적 협력을 해나가고자 하는 문재인정부의 의욕은 평가할 만하나 제약요소를 어떻게 극복해나갈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주(駐)러시아 대사를 지낸 위성락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객원교수는 △북한 △경제성 △미·러 관계라는 3대 변수에 대한 점검을 강조했다. 위 교수는 “철도나 가스관 연결 사업 등 남·북·러 3자 협력 사업은 북한 변수를 감안해 실현가능성을 냉정하게 봐야 한다”며 “한·러 양자 사업의 경우는 정치적 고려를 배제하고 압도적으로 경제성을 중시하면서 기업인들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러관계 등 큰 흐름을 감안해 행보를 맞춰가는 것도 요구된다”며 “비전만으로 상황을 루스(안이)하게 보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문재인정부가 북방경제협력위원회라는 전담 조직을 구성하고 남·북·러 3자 협력뿐 아니라 한·러 양자 협력 강화를 병행추진하는 것에 대해선 현실적 접근이라는 지적이다. 그동안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국 외교가 한·러 관계를 북한 문제에 종속시킴으로써 실질적인 양자 관계 발전을 저해했다는 목소리가 컸다.

성원용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는 “다행스럽게도 정부의지와 방향성, 이를 뒷받침할 전담 조직구성과 예산에 대한 준비가 제대로 가고 있다”며 “북방경제위는 남·북·러 3자 협력과 한·러 양자 경제협력사업이 다른 한쪽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투트랙으로 동시 병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러시아도 문재인정부 출범에 대한 기대를 표하면서 작더라도 성공 사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분위기다.

성 교수는 “현재 러시아 극동에 변화의 증거가 나타나기 시작한 상황“이라며 “우선 북방경제위에 충분한 인력을 갖춰 위원회를 조기에 안착시키고 경제적 타당성이 있는 사업을 발굴하면서 한·러관계를 윈윈(win-win)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