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신저, "미, 중국을 하청업자처럼 압박하면 안 돼"
"북핵 해법은 북미 대화보다 중미 등 외교로"
그는 기고문에서 지난 30년간 북한에 대해 세계가 규탄하고 경고해왔지만, 북핵 프로그램은 가속을 밟아왔고, 지난 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추가 제재는 한 걸음 진전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만약 김정은이 중국과 미국, 또 유엔 안보리의 추가 제재 결정에도 불구, 핵 프로그램을 지속한다면 주요 플레이어들의 지정학적 관계를 바꾸게 될 것"이며 "특히 도쿄와 한국에서 미국의 핵우산에 대한 신뢰가 심각하게 손상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북한의 핵무기는 미국 영토를 위협하기에 이르렀고, 핵탄두의 소형화 등의 과제가 남아있긴 하지만 이미 아시아 국가들은 기존의 단거리 및 중거리 미사일로도 위협을 받는 상태다. 키신저는 이러한 위협이 지속된다면 "베트남·한국·일본 등이 자국의 핵무기로 자신을 방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되고, 이는 그 지역은 물론 세계에도 불길한 징조"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핵 개발이 더는 진전되지 않도록 막는 것 못지않게 이미 진행된 상황을 되돌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키신저는 또 "중국은 핵 확산에 대한 우려를 공감하고 있고, 사실상 (북핵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나라"라고 말했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대한 과도한 자원을 투자하는 걸 축소하거나 포기하면 정치적 격동, 심지어 체제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음을 중국은 분명히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베이징이 북한의 비핵화 원칙을 지원해 준 건 외교적으로 가장 눈에 띄는 사건 중 하나라고 키신저는 평가했다. 중국은 북한의 붕괴나 혼란이 중국 내부에 미치게 될 사회적·정치적 영향과 함께 동북아 안보를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한반도 전체의 완전한 비핵화를 이끌어낸다면 통일 혹은 북한 지역에 대한 군사력 배치 제한 등에서 정치적 지분을 갖게 될 것이라고 키신저는 내다봤다. 하지만 지금껏 미국 정부는 중국을 "미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하청업자인양 북한을 압박하도록 몰아쳤다"고 지적했다. 미·중 양국이 함께 동등한 위치에서 공동의 노력을 추구해야 한다고 키신저는 강조했다. 미국이 자국의 일방적인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말해봤자 아시아의 안보가 위험하다고 믿는 국가들에겐 충분치 않다고도 꼬집었다. 키신저는 또 비핵화는 각국의 지속적인 협력이 필수이기 때문에 경제 제재만으론 이뤄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구체적인 행동을 담은 미·중 공동성명으로 평양을 더욱 고립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한국과 일본도 이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맡아야 한다"면서 "한국보다 더 직접 연관된 나라는 없다. 중요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썼다. 북·미 직접 대화는 오히려 "미국으로선 최소한의 이익만 얻을 수 있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는 비핵화의 중간단계로 핵실험 중단(동결)을 요구하는 건 "이란식 접근법의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기술적인 면만 제약함으로써 '지연'에 대한 무한한 구실을 제공"하게 되며 영구적인 위험을 고착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이 핵 기술을 판매할 가능성이 있고▶미국은 자국의 영토 보호에만 집중하고, 나머지 아시아는 핵 위협에 노출시키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으며 ▶중국과의 갈등이 불거질 수 있고 ▶다른 지역에서도 확산이 가속화 될 수 있으며 ▶미국 내의 국론이 더욱 분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비핵화에 대한 실질적인 진전을 단기간에 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경희 기자 dungle@joognang.co.kr
다음은 헨리 키신저 기고문 원문 링크. How to Resolve the North Korea Cri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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