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벤지포르노·몰카 신고해 삭제하는 '한사성'.."야동 소비하는 행위도 가해"

이재덕·배동미 기자 입력 2017. 8. 13. 16:24 수정 2017. 8. 14.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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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헤어진 이성에게 앙심을 품고 공개하는 과거 성관계 영상인 ‘리벤지 포르노’가 올라와 있는 인터넷 사이트 화면. | 배동미 기자

양지씨(19·가명)는 매달 초만 되면 동료와 함께 PC방에 간다. 포르노 영상이 많이 올라오는 ‘○○박스’ 등 P2P(개인 간) 공유 사이트에 접속해 ‘국노’를 검색한다. ‘국노’는 포르노 영상 이용자들이 ‘국산 야동 노모자이크’를 줄여 부르는 말이다. ‘만취한 여성’을 뜻하는 ‘골뱅이’라는 단어도 검색한다. 검색어마다 관련 동영상 수천개에서 수만개가 검색된다. 주로 남성이 헤어진 여성에게 보복하기 위해 성관계 등 민감한 사생활을 유포하는 ‘리벤지 포르노’ 영상들이다. 양씨는 휴대전화 소액결제 등으로 ‘○○박스’에서 포인트를 구입한 뒤 해당 영상을 내려받는다. 영상마다 100~300포인트(원)를 내야 한다.

양씨는 리벤지 포르노, 몰카 동영상 등을 신고하고 삭제하는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의 활동가다. 그는 모니터링 팀장을 맡고 있다. 개인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면 바이러스에 걸릴 우려가 있기 때문에 PC방 주인의 허락을 받고 PC방 컴퓨터로 진행한다. 다운로드 받은 영상을 빠르게 돌리면서 여성의 성기가 드러난 장면을 확인해 모두 사진으로 저장한다.

모니터링 작업은 영상만 4시간 이상 봐야하는 고역이다. 양씨는 “‘골뱅이’라고 불리는 심신미약 강간 영상을 보고 캡처할 때마다 괴롭다”면서 “작업이 끝나면 멘탈이 나가서 밥먹을 힘도 없다”라고 말했다. 양씨는 ‘○디스크’, ‘○다운’, ‘파일○○’, ‘○○넷’ 등 P2P·포르노 사이트에 접속해 같은 일을 반복한다.

지난 9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 있는 한사성를 찾았다. 좁은 사무실에 예닐곱명의 20대 여성 활동가들이 컴퓨터를 붙들고 있다. 한쪽 벽에 ‘모든 이들을 위한 페미니즘’, ‘성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다’라는 글귀가 보였다. 활동가들은 과거 불법 포르노 사이트 ‘소라넷’ 폐지 운동을 벌였다. 리벤지 포르노, 몰래 카메라 영상 게시, 강간 모의 등이 이뤄진 소라넷 사이트는 한때 회원수가 100만명에 달했지만 이들 여성 활동가들의 문제제기로 지난해 폐지됐다. 서승희 대표(27)는 “소라넷 폐지 활동을 하던 사람들이 피해자를 위한 지원 활동을 해야겠다는 아젠다를 갖고 모였다”고 말했다. 현재 한사성에는 18명의 활동가들이 무급으로 일하고 있다.

양씨도 소라넷 폐지 활동을 하면서 모니터링 노하우를 쌓았다. 양씨는 피해 영상을 수집한 뒤에는 해당 P2P·포르노 사이트의 공식 e메일 계정으로 삭제를 요청한다. 통상 e메일을 보내면 1시간 이내에 삭제된다. 같은 메일을 정부의 온라인 민원 사이트인 ‘국민신문고’에도 보낸다. 해당 영상을 올린 ‘업로더’를 신고하기 위해서다.

지난 9일 서울 대방동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사무실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리벤지 포르노를 검색하고 있다.| 배동미 기자

신문고에 민원이 접수되면 신고자 인근 경찰서로 사건이 배정되고 수사가 시작된다. 경찰은 각 P2P·포르노 사이트로부터 해당 영상을 올린 업로더의 주민등록번호 등 신상정보를 받아낸 뒤 이들을 검거한다.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등에관한 법률은 문제의 음란물을 업로드 한 사람을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경찰 관계자는 “이런 영상들을 집중적으로 올린 ‘헤비업로더’ 신고가 들어와도 통상 100만원 수준의 벌금형으로 끝나는 사례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서 대표도 “하나의 웹하드마다 평균 5만개의 피해 영상이 있는데 이를 다 삭제하기는 어렵다”면서 “헤비업로더를 강하게 처벌해 유통을 막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이들은 리벤지 포르노 피해자를 상담하고 해당 영상이 삭제될 수 있도록 돕는다. 대면 상담은 물론 e메일·전화 상담도 진행된다. 서 대표는 “피해자들이 자신이 등장하는 영상을 바로 알아채는 경우는 거의 없고 많이 유포된 이후에야 알게 되는 사례가 많다”면서 “뒤늦게 알고는 직장을 그만두고 혼자 칩거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피해자의 남자친구가 대신 찾아오기도 한다. 여자친구가 전 애인에 의해 유출된 영상으로 괴로워하자 남자친구가 대신 도움을 청하러 온 것이다.

이럴 때는 피해자의 영상만 골라서 삭제해야 하기 때문에 ‘디지털 장의사’의 도움을 받는다. 보통 ‘디지털 장의사’는 피해자가 나온 영상을 P2P·포르노 사이트 등에서 찾아낸 뒤 업체에 삭제 요청 메일을 보내는 방식으로 해당 영상을 지운다. 150개에 달하는 사이트에서 특정 피해자의 영상을 어떤 검색어를 이용해 찾아내느냐가 관건이다. 디지털 장의사들은 삭제 비용으로 월 200만~300만원을 요구한다. 최소 3개월 단위로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1회 이용 비용은 최소 600만원에 달한다.

서 대표는 “포르노 등이 유통되는 한글 사이트는 109개, P2P 사이트는 41개가 있는데 여기에 영상이 한 번 퍼지면 디지털 장의사에게 맡겨도 완벽히 삭제되지 않는다”면서 “피해자는 계속 금전적 지출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크라우드펀딩사이트 ‘텀블벅’에서는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운영자금 확보를 위한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 ‘언락(UNLOCK)’이 진행 중이다. | 트리거포인트 제공

이처럼 피해자들의 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에 한사성은 영상을 삭제하는 작업을 무료로 한다. 서 대표는 “피해 상황 자체가 수익 구조가 돼선 안된다. 우리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프로그램 개발자가 피해자의 영상을 찾아 삭제하는 일을 무료로 해주고 있다”고 했다. 피해자는 ‘잊혀질 권리를 위임한다’는 내용의 위임장을 작성한다. 한사성 활동가들이 위임장과 피해자의 신분증 복사본을 프로그램 개발자에게 보내면 영상 삭제 작업이 진행된다.

한사성 활동가들은 영상 유포자를 처벌하기 위해 피해자와 함께 경찰서를 찾기도 한다. 메모리카드에 피해 영상과, 피해자의 얼굴·신체 특징·성기가 드러난 영상 캡쳐 사진, 해당 영상이 등록된 사이트 주소 링크 등을 담아 가져간다. 서 대표는 “혼자 경찰서에 갔다가 ‘당신이 몸가짐을 제대로 못했으니까 이런 걱정할 일이 생긴게 아니냐’는 말을 들은 피해 여성도 있다”고 했다.

기해자와 합의를 하는 피해자들도 많다고 한다. 피해자지원팀장 이효린씨(29)는 “디지털 장의사 때문에 지출은 크게 늘고, 사회에서 단절이 되다보니 직장이 없어 생활고에 시달리는 피해자들이 많다”면서 “합의금 받으면 생활고가 조금이라도 해소될 수 있고, 영상을 어디에 올렸는지 알아내기 위해 합의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얼마 전 문재인 정부가 몰카 영상 유포자에게 비용을 청구한다고 했지 않나. 그 생각에 많이 동의한다”고 말했다.

양씨는 “음부가 드러나는 국산 영상 대부분은 여성 몰래 촬영한 ‘범죄 영상’이지만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문화나 취향인 양 소비되고 있다”며 “아무도 소비하지 않으면 문제도 커지지 않는다. 유포나 촬영만 가해가 아니라 소비하는 행위도 가해”라고 말했다.

현재 크라우드펀딩사이트 텀블벅에서는 한사성 운영자금 확보를 위한 크라우드펀딩 ‘언락 Unlock’ (▶https://tumblbug.com/unlock)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펀딩으로 마련한 자금은 리벤지 포르노 피해여성 보호 활동 등에 사용된다. 13일 현재 600여명으로부터 1300만원이 모여 목표 금액이었던 500만원을 훌쩍 넘겼다. 펀딩은 오는 25일까지 진행된다.

<이재덕·배동미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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