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플러스]'400억' 거짓말 어떻게 나왔나..박철상 인터뷰 추적해보니

김유나 2017. 8. 13.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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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민 사기다.’ 한때 ‘성공한 청년 자산가’, ‘기부왕’으로 알려졌던 박철상(33·경북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씨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그는 주식 투자로 몇백억원을 번 뒤 고액을 기부하는 ‘청년 버핏’이라고 여러차례 언론에 소개돼왔다. 언론에 알려진 그의 자산규모는 400억원이다. 그러나 그는 최근 주식 투자가 신준경씨와의 설전 끝에 자신이 주식으로 몇백억원을 벌었다는 말은 모두 거짓이라고 고백했다.

그는 “자산규모를 400억원이라고 언급한 적이 없으나 기자가 총 기부할 금액을 자산규모로 오해하고 400억원이라고 쓴 것이며, 이후 정정하지 않은 것은 불찰“이라며 거짓말의 책임을 일부 언론에 돌렸다. 그렇다면 스스로 말하지도 않은 ‘400억원’이란 액수는 도대체 언제 어떻게 등장한 것일까? 지난 2년여간의 박씨 관련 언론보도를 추적해봤다. “인터뷰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과 달리 박씨는 2년여간 다양한 매체에서 10차례 넘게 인터뷰를 진행해 그의 기사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의 말처럼 그는 인터뷰에서 스스로 ‘400억원’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산규모가 몇백억원이라는 보도가 쏟아진 뒤 수차례 인터뷰를 했으면서도 이를 정정하지 않고 방관했고, ‘연간 7억원정도씩 40∼50년간 기부할 금액을 이미 마련해놨다’, ‘자산이 100억원은 넘는다’ 는 등 본인을 ‘수백억원대의 자산가’로 생각할 수 있을 말들을 쏟아내며 자신에 대한 세간의 오해를 부추겼던 것으로 확인됐다.

◆2015년 4월 언론 첫 등장…‘수백억원대의 자산가’

박씨가 언론에 처음 등장한것은 2015년 4월3일 영남일보 주말 매거진 위클리포유에서다. 당시 이 매체는 박씨의 인터뷰 기사 3개를 보도했는데, 이중 <‘한국의 청년 버핏’…수백억원대 자산가 대학생 박철상 “기부는 기쁨이다> 는 박씨에 대해 “중학교 3학년 때 주식을 처음 접한 뒤 서른의 나이에 수백억원대 자산가가 됐다”고 서술한다. 정작 인터뷰 본문에서는 자산 규모가 어느정도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해당 기자가 박씨에 대한 배경을 취재한 후 서술한 것으로 보인다.

박씨는 다만 “매년 수입의 15%를 기부하는데, 기부 규모는 연간 3억3400만원”이라고 밝힐 뿐이다. 이 말만 놓고 보면 연간 수입은 대략 22억원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인터뷰 이후 저 <수백억원대의 자산가>는 박씨를 설명하는 수식어로 쓰인다. 박씨는 같은 해 7월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하면서 또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는데, 언론은 대부분 박씨를 ‘20대때 주식 투자로 수백억원대의 자산가가 됐다’고 소개한다. 

◆연이은 인터뷰…자산 규모 정정할 기회 있었으나 안해

첫 인터뷰에서 자산 규모가 수백억원대로 보도된 것은 당시 취재기자의 오해에서 비롯된 헤프닝일 수도 있다. 박씨가 의도적으로 속이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을 수 있고, 박씨 입장에서는 이미 나간 인터뷰 내용을 정정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박씨는 첫 인터뷰 4달 뒤인 2015년 8월 또다시 언론과 인터뷰를 한다. 2015년 8월3일 매경이코노미가 보도한 박씨의 두번째 인터뷰 <주식으로 돈 벌어 기부하는 ‘청년 버핏’ 경북대학교 박철상씨>는 박씨에 대해 “수백억원대(추정) 자산을 짐작할 수 있는 고가의 사치품 흔적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라고 서술한다.

만약 자산 규모를 속일 생각이 없었다면 두번째 인터뷰를 할 때 “언론에 자산규모가 수백억원이라고 알려져있는데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으면 될 일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다음해 1월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2억5000만원을 기부하면서 또 여러 언론에서 ‘수백억원대의 자산가’로 보도되고, TBC 등 방송과도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여기서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자신에 대한 ‘오해’를 정정할 기회가 충분히 주어졌지만 의도적으로 모른척 한 것이다.

◆“몇십년 기부할 금액 이미 마련했다”…언론 오해 부추겨

박씨는 자산 규모를 묻는 질문에 한번도 구체적으로 대답한 적이 없다. 2016년 2월 대구 MBC 방송에 출현한 그는 “지금 자산이 얼마쯤 되냐”는 질문에 “앞으로 제가 얼마만큼 기부하는가를 보시면 대충 가늠이 되실 겁니다”라고 에둘러 답한다. 같은 달 문화일보의 인터뷰기사에서도 “박씨는 자신의 자산 규모를 비밀에 부쳤다”는 내용이 나온다.

대신 박씨는 이때쯤부터 자신이 앞으로 몇십년동안 기부할 자산 규모에 이미 도달했다는 인터뷰를 하기 시작한다. 2016년 2월2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 <매년 6억∼7억원 기부하는 '청년 버핏' 박철상씨>에 따르면, 박씨는 연간 기부금액을 “6억5000만원에서 7억원 사이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첫 인터뷰를 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기부액이 두배로 뛴 것이다.

그는 기부 계획을 묻는 질문에 “40년간 기부할 계획을 잡고 개인적으로 필요한 비용 등을 계산하니 작년 7월 목표한 자산 규모에 딱 도달했다. 그래서 자산운용업을 접었다. (기부는) 지금 수준으로 40년은 유지할 생각”이라고 말한다. 매년 7억원 정도씩 40년간 280억원을 기부할 건데, 이미 그 자산규모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한달 뒤 경북일보와의 인터뷰 등에서도 같은 말을 반복한다.

◆첫 ‘400억원’ 인터뷰는 작년 7월…“7억원씩 50년간 기부할 재산이 있다”

그리고 지난해 7월, ‘400억원’이란 액수가 처음 명시된다. 2016년 7월19일 조선일보 잡스엔의 인터뷰 기사<주식으로 400억원대 재산 모은 '청년 버핏' 박철상씨 "전재산 기부하겠다"> 에는 아래와 같은 대목이 등장한다.

<‘청년 버핏’ 박철상씨가 최근 '잡스엔'과 인터뷰를 갖고 “주식 투자 활동을 중단한다"며 "갖고 있는 400억원 대 자산 중 노후·생활자금을 제외한 전재산을 50여년에 걸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박씨는 아르바이트로 모은 수백만원으로 주식 투자를 시작해 400억원 대 자산가가 된 인물이다.>

박씨는 또 “대부분 재산을 은행에 넣어놨다. 그걸 40~50년에 걸쳐 기부로 소진할 계획”이라며 “연간 총 7억원 규모로 50여년을 기부할 것”이라고 밝힌다. 앞서 다른 매체들에서 한 인터뷰와 비슷한 내용이지만, 기부 계획이 40년에서 50년으로 늘었다. 7억원씩 50년, 총 350억원을 기부하겠다는 것이다.

즉, 박씨의 말을 종합하면 앞으로 50년간 350억원을 기부할 것인데, 이미 투자로 그 정도의 자산을 마련했다는 말이 된다. 이때문에 해당 기자가 400억원이라고 추정 액수를 명시한 것으로 보인다.

이 뒤로 ‘400억’이란 숫자는 박씨에 대한 언론 보도에 수차례 쓰였다. 박씨는 이후에도 각종 인터뷰를 진행하고, 경제 관련 방송에 ‘30대 주식부자’로 나와 투자 노하우를 설명하기도 했다. 언론과 많이 접촉했고, 자신의 자산 규모를 정정할 기회도 많았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는 단한번도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박철상, “자산 100억원은 넘는다” 직접 밝히기도

올해 3월24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 <9년 동안 20억 기부한 `청년 버핏`>에서는 이같은 대목도 등장한다.

<박씨는 세상에서 제일 유치한 짓이 '돈 자랑'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자산이 얼마인지는 비밀이라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제가 평생 얼마를 기부하는지를 보면 자연스럽게 드러나지 않겠느냐"고 웃었다. 100억원은 넘느냐고 물어보니 그 금액은 넘는다고 답했다.>

이 대답을 할 때 그는 세간에서 자신의 자산을 ‘400억원’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돈자랑은 유치하다’는 말로 오해를 부인하지 않고, 오히려 자산이 ‘100억원은 넘는다’고까지 말한다.

박씨는 “400억원 자산을 직접 언급한 적은 없지만, 관련 질문을 피하고 이를 바로잡지 않았던 것은 제 불찰”이라며 자신의 거짓말의 책임 일부를 언론에 돌렸다. 그의 말처럼, 박씨의 주장을 검증없이 보도한 언론도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하기는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박씨는 자신의 자산규모를 에둘러 표현하면서 기자들이 자산규모를 400억원으로 ‘추리’하게끔 유도했고, 몇달에 한번씩 언론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를 한번도 바로잡지 않았다. 그의 거짓말을 단순히 언론의 ‘오해’라고 보기에는 잘 설명이 되지 않는 이유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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