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도서정가제와 단통법의 다른 미래.. 이유는?

김태훈 기자 입력 2017.08.13.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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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관람객들이 특색 있는 독립서점과 출판사를 초대한 특별기획전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 강윤중 기자

가격은 시장에서 결정된다.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만 봐도 가격은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따라 정해진다고 나온다. 물론 전제가 있다. 수요와 공급 곡선이 마주치는 지점에서 균형이 만들어지는 이상적인 시장 상황은 완전경쟁 아래에서나 가능하다. 때문에 현실의 다양한 시장에서 어떻게 시장가격이 작동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무수한 변수와 이론 모델을 추가로 동원한다. 하지만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 가운데 하나가 가장 파급력이 크기 때문에 때때로 이론은 현실과 동떨어진다. 바로 제도와 정책이다.

3년 시행된 뒤 일몰시한 앞둔 두 법
경제학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원생 김성원씨(28)의 지출내역 중 책값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다행히 아주 조금이지만 김씨의 학과에서는 대학원생들에게 도서구입비를 지원한다. 도서구입비 지원을 받으려 영수증을 정리하던 김씨는 근래에 가까워질수록 중고도서를 사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유명서점에서 운영하는 중고책 매장에 가서 살 때도 있고, 온라인서점에 개인 판매자가 올린 중고책을 살 때도 있죠. 대개는 정가 주고 새책 사는 것보다 값은 싼데 책은 깨끗하니까요.”

중고책 거래가 생각보다 활성화돼 있다는 걸 안 김씨는 자신이 갖고 있던 책도 팔려고 내놓기 시작했다. 학부 시절 들은 교양과목 교재나 다 봐서 더는 필요 없는 책들을 팔았다. “알고 보니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요즘은 후배들한테 교재 물려주기보다는 중고로 파는 게 더 흔해졌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예전엔 기말고사 끝나면 경제학원론 책이나 미시·거시 교과서가 발에 차일 정도로 굴러다녔는데 요즘은 그런 것 같지도 않고.” 책을 도둑 맞지 않으려고 책 곳곳에 큼지막하게 이름을 써놓던 것도 옛말이고, 요즘은 보고 나서 다시 팔아야 하니까 밑줄 하나 긋지 않고 깨끗하게 보는 시절이라며 김씨는 웃었다.

중고도서 시장을 활성화시킨 여러 요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2014년 11월부터 시행된 개정 도서정가제다. 그 무렵 한 달 전인 2014년 10월부터 시행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과 함께 소비자들의 지탄을 받은 ‘악법’으로 지목된 바 있다. 두 제도 모두 비슷한 시기에 도입된 데다, 더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를 가로막았다는 점 때문에 비판을 받았다. 명목상으로는 과열 경쟁을 막고, 시장 생태계를 유지한다는 취지를 내세웠지만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의 부담을 키울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도매금으로 묶여 도마에 오른 것이다.

약 한 달 남짓한 기간의 차이를 두고 연달아 시행된 두 법은 똑같이 3년 동안 시행된 뒤 일몰시한을 앞두고 있다. 출판문화산업진흥법에 따라 시행된 현행 도서정가제는 이름은 정가제이지만 요점은 책에 적용되는 할인폭을 고정시킨다는 데 있다. 개정 전까지는 신간은 최대 19%까지 할인받을 수 있고, 나온 지 18개월이 지난 구간이나 실용·참고서 등은 아예 정해진 할인율이 없었다. 하지만 개정 이후 현재까지는 할인율이 총 15%를 넘길 수 없게 됐다. 출간 후 18개월이 지난 구간이건 실용서나 참고서건 예외는 없다. 다만 18개월 이후부터는 출판사가 정가를 재조정할 수 있다.

기본적인 구도가 단통법과 닮았다. 현행 단통법에서 가장 문제로 지목받고 있는 단말기 판매보조금 상한제 때문에 소비자는 30만원 이상 단말기 보조금을 받고 구매할 수가 없다. 게다가 이동통신사에서 보조금을 상한선까지 지급하는 경우도 드물다. 출시 15개월이 지난 단말기는 보조금을 더 지급받을 수 있지만 주요 기종은 그 전에 단종되기 일쑤다. 무엇보다 사실상 과점 형태로 휴대전화 단말기 유통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이통사들의 자리에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을 대입시키면 시장 구도도 비슷하다. 보조금으로 가격을 경쟁하던 휴대전화 시장과 할인율과 마일리지로 가격 경쟁을 벌여온 도서 유통업계에서 경쟁을 제거해 버리니 소비자들에게는 높은 가격 부담만 뒤따라왔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닮은꼴의 두 제도는 서로 다른 결말을 맞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단통법 중 보조금 상한제 폐지는 문재인 정부의 공약에도 포함돼 있는 데다, 현재 진행 중인 이통사 요금인하 움직임과 맞물리면서 9월 말인 일몰시한을 넘기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관계부처인 미래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물론 국회에서도 연장 논의는 없이 가급적 빠르게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이 힘을 얻고 있다.

당장 단말기 가격 내려갈지는 미지수
반면 도서정가제는 3년의 일몰시한을 넘겨 연장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출판·서점업계 일각에서는 할인 없이 정가대로만 판매하는 완전정가제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대체로 현행 제도를 유지하는 데 합의한 상황이다. 8월 11일 대한출판문화협회, 한국출판인회의, 한국서점조합연합회, 인터넷서점협의회 등 출판·서점업계 단체와 소비자단체들이 현행 제도의 골격을 유지하는 데 합의한 것이다. 이 합의가 도서정가제 일몰시한을 앞두고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재해 만들어진 회의를 통한 것이어서 유지 가능성은 높다.

도서정가제는 출판문화산업진흥법에 따라 문체부 장관이 3년마다 타당성을 검토해 유지와 폐지, 완화 등의 조치를 취하게 되어 있다. 도종환 문체부 장관도 완전정가제 도입에는 난색을 표했지만 현행 도서정가제 유지에는 별다른 이견을 내비치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문체부 관계자는 “이번 합의에 대해선 정부에서도 적극 협력해 나갈 것”이라며 “관련 단체들이 앞으로 3년간 도서정가제 개선안을 마련하는 데 필요한 공동 연구와 조사를 추진하기로 한 점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두 제도가 출발과는 달리 서로 다른 결론으로 향하고 있지만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단통법의 경우 폐지에 공감대가 형성돼 있긴 하지만 당초 법이 목표했던 단말기 유통시장 개선의 방향이 어느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해 어떤 부작용을 낳았는지에 대한 평가가 현재로선 부족하기 때문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장 궁금할 문제가 제도 폐지 이후 단말기를 더 싸게 살 수 있게 되는지 여부다. 그러나 가격을 결정하는 요인이 경쟁을 유도하거나 막는 등의 제도적 차원 외에도,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이통사들의 영업방향과도 관련돼 있어 당장 단말기 가격이 내려갈지는 쉽게 점치기 어렵다.

시장에 하나의 제도가 도입되면 제도의 취지에 맞춰 시장이 움직일 것이라는 예상이 깨진 것은 업계로선 큰 교훈이다. 단통법이 시행되면서 이통사들로서는 그간 공격적인 마케팅을 위해 뿌린 보조금 등의 비용이 줄어들어 영업이익률이 높아지는 이점을 맛봤다. 그러나 같은 시기 국내 제조사들은 정반대로 지옥을 경험했다. 소비자들이 단말기를 바꾸려 하지 않으면서 내수시장에 크게 의존하던 팬택은 결국 청산절차를 밟게 됐다. LG전자 역시 단통법 시행 이후 전 세계 스마트폰 제조업계의 스펙 상향 평준화 흐름과 맞물려 영업이익이 크게 떨어져 사실상 적자에 가까운 영업내역을 보이는 등 단통법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았다. 반면 단통법으로 인해 자급제 단말기의 수요가 늘면서 이 트렌드에 부응한 애플이 국내 점유율을 높이는 등 상반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서울 서대문의 한 휴대전화 판매점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 김영민 기자
“제값 주고 책 사는 분위기 형성돼야”
단통법 이후를 쉽게 전망하기 어려운 것은 일몰시한인 9월 말 이후 이동통신업계가 3년 전의 시장 상황을 똑같이 재연하지 못하는 데도 이유가 있다. 현 정부가 대선 공약사항의 하나로 추진 중인 분리공시제 역시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쉽게 점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는 단말기 보조금 중 이통사와 제조사가 각각 어느 정도를 부담하는지 공시하지 않고 뭉뚱그려 보조금 총액만 밝히고 있다. 분리공시제는 이통사와 제조사 각각의 보조금 액수를 따로따로 공시해 제조사의 단말기 공급가격을 보다 투명하게 확인하자는 취지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단통법 보조금 상한제가 사라지고 분리공시제까지 도입되면 시장가격을 결정하는 정보가 소비자들에게도 더 많이 공개돼 단말기 가격이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단, 장기적으로는 가격 인하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지만 당장 가격이 떨어지는 속도는 예상만큼 빠르지 않을 수도 있다. 현재 정부와 이통업계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통신비 기본료 인하 등의 조치가 그 결과에 따라 이통사의 영업이익을 감소시킬 수 있기 때문에 보조금 액수 역시 현행 단통법에서의 보조금보다 당장 크게 늘어나지는 않을 수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경우에 따라 단통법 시대에 비교적 활발해진 자급제 단말기나 중고 단말기 거래를 이용해 알뜰폰의 낮은 요금을 이용하는 방안이 여전히 효과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반면 현행 제도의 틀이 유지될 것으로 보이는 도서정가제의 경우 소비자들보다는 관련 업계가 시장의 동향에 더욱 발빠르게 움직여야 할 것으로 관측된다. 당장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격변동의 폭은 크지 않은 상황에서 점차 성장하고 있는 중고도서 시장을 이용해 싼 값으로 책을 사는 편이 이득일 수 있다. 가격보다는 도서·출판 콘텐츠의 다양성을 중시하는 독자라면 도서정가제의 순기능으로 주목받고 있는 독립출판과 독립서점을 통해 색다른 서비스를 누릴 수도 있다.

특히 다양한 개성을 내세우며 지역사회에 자리잡고 있는 독립서점은 출판·서점업계가 생존을 위해 택할 수 있는 공간으로 평가받고 있기도 하다. 현행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이후 전체 도서시장이 위축되면서 영세 출판업체나 지역서점에 숨통을 틔워준다는 당초의 정책목표는 실현되기 어려워졌음이 업계 안팎에서 확인됐기 때문이다. 한 출판업계 관계자는 “과거 출혈경쟁을 할 때 가격으로 덤핑을 쳐서 매출을 유지하던 시기와 비교하면 사정이 크게 나아진 점은 없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그나마 현금이 안정적으로 들어올 수 있는 여건이 된 점, 잘 팔리는 책만 놓고 보면 (현행 도서정가제) 이전보다는 매출이 늘어난 점을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무분별한 할인이 일상적이던 때보다는 더 비싼 값을 주고 책을 사야 하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현행 도서정가제가 정가를 유지하도록 강제하는 것일 뿐 책값을 더욱 비싸게 받도록 요구하는 제도는 아니라고 항변하는 업계 당사자들의 목소리도 높다. 규모로 봐서나 콘텐츠의 다양성과 질로 봐서나 아직 열악한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도서·출판업계의 산업생태계를 유지하려면 소비자들도 정가를 주고 제대로 된 콘텐츠를 사는 시장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출판인회의의 한 관계자는 “전에 공짜로 듣던 MP3를 이제는 그래도 돈 내고 듣는 게 당연하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는데, 출판 콘텐츠에 대해서도 제값을 주자는 분위기는 아직 없는 현실이 답답하다”면서 “사실 가격으로 소비심리를 자극할 수 없다는 부분에 있어서는 정가제의 한계도 있으니, 문화콘텐츠 다양성을 늘리는 쪽의 대책은 시장에만 맡길 게 아니라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