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MBC몰락 10년사⑥] 블랙리스트 ..MBC장악 마지막 퍼즐

김재영 PD (PD수첩 등 연출, 현재 송출실 근무) 기자 입력 2017.08.13.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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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영상카메라기자들이 8월 8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MBC가 카메라기자들의 성향을 분류해 문건을 만든 것에 대해 검찰의 철저한 수사와 관계자 처벌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지난 8일 밝혀진 MBC판 블랙리스트는 충격적이었다. 문건에 의하면 65명의 카메라기자들의 성향을 충성도에 따라 4등급으로 나누고 개인 한 명 한 명을 ‘충성’, ‘회유 가능’, ‘회색분자’, ‘강성이고 격리가 필요한 전복세력’이라는 표현으로 분류했다. 이 문건에 등장한 카메라기자들은 “우리가 등급으로 나누는 고깃덩어리였느냐”며 절규했다. MBC 블랙리스트 사건은 그동안 MBC 사측이 언론인들을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문건의 사실 여부는 검찰의 수사로 밝혀질 문제지만, 사실 블랙리스트 존재에 대해서는 소문이 파다했다. MBC 구성원들은 2012년 170일 파업 이후 경영진의 폭압적인 관리체계를 생각하면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MBC 사측은 김재철·안광한·김장겸 사장을 거치는 동안 10명을 해고했고, 110명을 징계했으며, 157명을 ‘유배’시키는 등 꼼꼼한 폭력을 자행했다. 그들은 각종 승진·전출·인사고과를 통해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성원들에게 모욕을 주었는데, 이 모든 행위들은 정리된 블랙리스트가 없다면 불가능할 일이었다. 폭로된 블랙리스트는 일종의 마지막 퍼즐 같았다.

MBC 경영진은 지금까지 90여건에 달하는 소송에서 법원으로부터 각종 징계와 인사조치들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았지만 멈추지 않고 부당노동행위를 계속했다. 독재시대에도 찾아볼 수 없었던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그들은 ‘반바지는 입지 말라’는 복장의무, 업무 위치까지도 강제 보고하라는 인사관리를 도입했고, 드디어 블랙리스트까지 폭로되었다. 언론사 MBC가 최악의 노동탄압 현장이 된 것이다. 10년 전까지 가장 공신력 있는 언론사였던 MBC가 어떻게 블랙리스트로 인간을 분류하고, 근거도 없이 해고를 하는 인권 유린의 현장이 될 수 있었을까.

MBC 사태의 공범자들
권력자들은 MBC에서 벌어진 희대의 언론자유 침해사태에 대해 부인으로 일관했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은 공식석상에서 “언론의 자유는 침해할 수도 없고, 침해할 이유도 없습니다”라는 식의 답변을 반복했다. 그들은 MBC에서 멀쩡한 사장이 쫓겨나가고, 최고의 자리에 있던 김미화·신경민 등 진행자들이 마이크를 빼앗겼으며, 4대강을 비롯한 정부 정책을 검증하고 비판하는 프로그램이 불방되는 객관적 사실을 무시했고, 그런 태도로 사실상의 가해자가 되었다. 권력자들에게 질문하는 언론은 없었고, 그들의 일방적 진술만 국민들에게 전달되었다.

관리·감독 기능이 있는 공적 기구의 기능은 완전히 마비되었다. 파업과 해고, 징계가 계속되는 가운데 “MBC 사태는 노사 양측 간의 갈등일 뿐이고, 언론자유와는 관계가 없다”는 식으로 회피했다. “최승호 PD, 박성제 기자 등을 근거 없이 해고했다”고 스스로 발언한 ‘백종문(현재 MBC 부사장) 녹취록’이 세상에 공개되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판사 출신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은 눈치를 보는 데 급급했다. “(2심까지 해고 무효가 되었지만) 아직 대법원 판결이 나오지 않았다. MBC 노사문제에 개입하는 건 적절치 않다”며 논의조차 거부했다. MBC의 이사회 격인 방송문화진흥회와 새누리당 국회의원들도 여기에 가세했는데, 방송사 임원이 법인카드를 써가면서 가진 회동에서의 발언을 “사적인 대화일 뿐”이라며 역시 논의를 거부했다. 언론인을 근거 없이 해고했다는데, 그 사건이 언론의 자유와는 무관하다는 그들의 뻔뻔한 논리 앞에 해고자들은 무력했고 MBC 경영진은 미소를 지었다.

또 다른 공범자들의 주장은 “보수정권만 그런 게 아니라 진보정권 때도 그랬다”는 것이었다. 찬찬히 따져보면 역시 거짓말이다. 비교적 MBC 문제에 관심이 있다는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나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도 여기에 가담했다. 정작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어떻게 구체적으로 공영방송 종사자들의 언론자유를 침해했는지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다. 국제기관들의 언론자유지수가 보수정부 9년 사이 두 배 넘게 악화되었다는 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MBC는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아끼던 황우석 박사의 불법 난자 매매와 논문 부정행위를 밝혔고, 참여정부의 한·미 FTA, 부동산 정책, 고위공직자의 재산 등에 대해서 치밀하게 검증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공범자들은 언론인에게 고통을 가하는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들의 기술을 이렇게 정의했다. “MBC에서 언론 탄압이 일어난 적이 없고, 일어났다 해도 그것은 노사관계일 뿐이며, 이런 갈등은 진보정권 시절에도 있었다”는 거대한 거짓말. 지금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합창을 하고 있는 궤변은 이렇게 완성이 되었다.

거래는 계속된다
한때 MBC의 위기를 극복할 기회가 있었다. 2012년 당시 MBC의 170일 파업은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무한도전>의 불방이 6개월간 계속되면서 집권당인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 후보에게도 큰 부담이 되었다. 박근혜 후보는 “파업이 해고사태에까지 이르게 돼 안타깝다”는 공개적인 메시지를 냈고, 파업을 하는 노동조합 집행부와 ‘MBC 정상화’에 대해 합의를 했다. 이 합의를 근거로 노동조합은 대통령 선거를 5개월 앞두고 긴 파업을 풀었다. 당시 MBC 김재철 사장과 임원들은 멘붕에 빠졌다. 정상화란 그들의 퇴진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경영진이 그냥 물러설 수는 없었다. 일단 MBC 뉴스는 박근혜 후보와 박빙으로 경쟁하던 안철수와 문재인에 대한 대형 오보를 만들었다. 안철수의 박사 논문 표절, 노무현 NLL 녹취록 보도 등이었다. 불공정보도가 횡행했다. 실질적 책임자는 당시 김장겸 정치부장, 현 MBC 사장이었다.

결국 ‘MBC 정상화’ 약속은 사라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생했고 불공정보도의 과실은 달콤했다. 선거 당시 임원이었던 안광한·권재홍·김장겸 등은 이후 사장, 부사장, 보도본부장 등으로 영전했다. 경영진은 무서울 게 없었다. 자기들을 한때 위기로 몰아넣었던 강력한 노동조합의 뿌리를 완전히 제거하겠다는 욕망을 숨기지 않았다. 월급사장이어서 임기만 마치면 자연인이 되는 경영진들이 후배들에게 해고와 징계의 칼날을 마구 휘두르고,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심지어 암 투병 중인 해고자를 외면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박근혜 권력은 탄핵되었지만 아직도 그 일부가 잔존해 있는 상황이다. 수많은 MBC 구성원들이 김장겸 퇴진을 외치며 제작 거부에 나섰다. 이런 와중에도 MBC 뉴스 책임자들은 ‘최저임금 인상, 탈원전정책, 고소득자 증세 등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무조건 까라’는 오더를 경제부 기자들에게 남발했고, 자유한국당은 블랙리스트 사태가 문재인 정부의 언론 장악 음모라는 창의적(?)인 발상의 역정을 내고 있다. ‘공범자들’ 사이의 거래는 계속되고 있다.

김재영 MBC PD(PD수첩 등 연출, 현재 송출실 근무)

*참고문헌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 스탠리 코언 지음, 조효제 옮김, 창비

<김재영 PD (PD수첩 등 연출, 현재 송출실 근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