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대통령님 언제 오세요?"..피고인을 기다리는 사람들

입력 2017.08.13. 09:26 수정 2017.08.13.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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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법정 다큐 수인번호 503 ⑥ 417호 법정의 박근혜 지지자들
태극기 배지 달린 모자 쥔 사람들
박 전 대통령 향해 고개 숙이고
재판부 당부에도 일어서서 맞아
재판 내용 꼼꼼히 카톡방 중계도

턱 괴고 끄적이던 박 전 대통령
재판 길어지자 피곤한 기색 보여
"질문 있다"며 소리친 방청객은
"잘못했다" 빌었지만 과태료 50만원

[한겨레]

재판부는 늘 “일어서지 말아달라”고 당부하지만 여전히 방청객 일부는 일어서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맞이한다. 지난 5월23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첫번째 공판. 사진공동취재단

“모두 일어서 주십시오.”

10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 재판장인 김세윤 부장판사, 배석 중 선임인 우배석 심동영 판사, 조국인 판사 순으로 법정 가장 안쪽에 자리잡은 법대 뒤쪽 출입문으로 들어왔다. 재판부가 입장하고 퇴장할 때는 법정에 있는 사람 모두 일어서야 한다. “왜 대통령님 들어올 때는 못 일어나게 하면서 판사님 들어올 때는 일어나야 합니까.” 지난 6월19일 재판 시작 전 한 방청객이 법원 경위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판사보다 더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방청객의 생각이 담긴 질문이었지만, 재판부 입장과 퇴장 때 일어서는 것은 관행이다. 재판부가 앉는 법단이 법정에서 가장 높은 것과 비슷하게 사법부는 존중돼야, 또는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담긴 행위다. 법단이 높은 것도 마찬가지다. ‘법정 좌석에 관한 규칙’이 정한 법단 높이는 형사 법정은 60㎝, 그 외에는 45㎝이다.

“정숙 유지해 협조 부탁드립니다”

재판부 입장 뒤 법정에 들어온 중년의 여성 방청객이 물었다. “대통령님은 아직 안 들어오셨어요?” 3.5 대 1의 경쟁률을 뚫은 방청객이었다. 68석뿐인 박 전 대통령의 방청석 응모는 첫 재판 때는 525명이 몰렸지만 6월부터는 200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리는 긴 재판을 들으려는 사람들의 목적은 비슷하다. 박 전 대통령을 보는 것. “피고인들은 들어와 피고인석에 앉기 바랍니다.” 김 부장판사가 말하자 박 전 대통령이 법정 중간의 왼쪽 문으로 들어왔다. 김 부장판사는 늘 “일어서지 말아달라”고 당부하지만 여전히 방청객 일부는 일어서서 박 전 대통령을 맞이한다. 일어선 방청객 중에 태극기와 태극기 배지가 붙어 있는 흰색 모자를 손에 쥐고 박 전 대통령을 남다른 눈빛으로 쳐다보는 박아무개(61)씨가 눈에 띄었다. 일어서는 대신 자리에서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하는 방청객들도 많았다. 박 전 대통령은 방청석 기준으로 법대 왼쪽에 있는 검사석을 지나 맞은편의 피고인·변호인석으로 향했다. 방청석은 쳐다보지 않았지만 이상철·유영하 변호사 등과 웃으며 인사를 나눈 박 전 대통령은 유 변호사 왼쪽에 앉았다. 변호인을 사이에 두고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앉아 있었다. 곧이어 들어온 최순실씨는 박 전 대통령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278㎡(84평) 규모인 서울중앙지법 417호 형사대법정에 주인공들이 모두 모였다.

피고인 모두가 자리에 앉자 김 부장판사는 늘 하던 말을 꺼냈다. “피고인들은 재판을 받으면서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진술을 거부할 권리가 있습니다. 방청객들도 정숙을 유지하면서 오늘 재판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협조해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지난 7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결심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도착한 박영수 특별검사를 둘러싼 박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총만 있으면 죽여버리겠다” 등의 욕설과 함께 물통을 던졌다. 법정 안팎에서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소란이 계속되자 이날부터 휴정시간 대법정을 촬영하는 캠코더가 대법정에 설치됐다. 김 부장판사의 발언이 이어지는 동안 박 전 대통령은 안경집에서 안경을 꺼내 쓰고 턱을 괴었다. “신동빈 피고인 변호인께서 증거를 추가로 제출하셨습니다. 검찰에서는 인부(증거 인정의 동의 여부)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검찰이 어제자로 박근혜 피고인의 공소장 변경 허가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블랙리스트 관련 박근혜 피고인의 공모 사실, 실행행위를 명확하게 하는 내용입니다. 공소장 변경 허가 여부는 차회에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김 부장판사는 이날 30여분간 남은 증거의 인부 여부, 증인신문 일정 등을 검사와 변호인 의견을 물어 정리했다. 박 전 대통령은 그사이 오른손 왼손을 번갈아 가며 턱을 괴거나 목을 뒤로 젖히거나 종이에 무언가를 적고 지웠다. 중간중간 유 변호사에게 먼저 말을 걸어 짧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5월25일 “자세한 건 추후에 말씀드리겠다”고 말한 뒤로 지금까지 법정에서 공식 발언을 하지 않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증인으로 채택돼 강제구인장까지 발부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 증인 출석도 거부했다. 이대로라면 재판 마지막 단계에서 진행되는 피고인 신문에 가서야 박 전 대통령의 목소리를 들을 전망이다. 그 전까지는 표정이나 행동밖에 볼 수 없다. 재판 시작 때 옆에 앉아 “대통령님 아직 안 들어오셨냐”고 물었던 방청객은 앞자리로 옮겨 수첩을 펼쳤다. ‘착석. 안경 끼고. 단정한 머리. 야윈 얼굴. 목 운동. 예리한 눈빛. 단호한 표정. 판사: 부드럽고 온건한 말투.’ 수첩이나 휴대전화에 재판 내용을 적는 사람도 많았다. ‘RELEASE President Park NOW!’(박근혜를 당장 석방하라)라고 적힌 흰색 티셔츠를 입은 남성도 휴대전화를 놓지 않았다. ‘박대통령님 방청단 중계방’이라는 카카오톡 대화방에는 ‘대통령님 모니터 보고 계심’, ‘대통령님 어이없어 유변과 웃으심’ 등의 톡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는 이날 오후 6시15분께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리는 바람에 퇴정 조치를 당했고 박 전 대통령의 재판 방청이 금지됐다.

100m 달리기처럼 속전속결로 끝나는 법정 드라마와 달리 현실 법정은 길고 긴 마라톤 경기다. 첫 재판에서 검사와 피고인 쪽이 각각 자기주장의 핵심을 밝히는 모두진술을 하고, 이후 양쪽이 동의한 증거의 조사가 끝나면 길고 지루한 증인신문이 마지막까지 계속된다. 매주 월, 화, 목, 금 열리는 박 전 대통령 재판에도 평균 2명의 증인 신문이 진행된다. 이날은 검찰이 롯데의 부정한 청탁, 대가로 주장하고 있는 면세점 추가 선정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했던 황병하 전 기획재정부 과장과 대관업무를 맡은 이석환 롯데그룹 전무의 증인신문이 점심시간과 휴정시간을 빼고 오전 10시30분부터 저녁 8시30분까지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박 전 대통령부터 방청객까지 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은 유 변호사와 대화를 나누거나, 증거 문서가 띄워진 모니터를 쳐다보며 재판에 관심을 보였고 롯데 변호인들과 검사가 공방할 때는 크게 웃기도 했다. 하지만 마라톤 경기 내내 전속력을 낼 수 없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거나 목을 주무르는 등 피곤한 기색도 내비쳤다. 잠깐 책상에 엎드렸다가 일어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의 체력 문제는 1심 구속 기간이 끝나는 10월16일 전에 심리를 끝내기 위해 재판부가 ‘주 4회 재판’ 방침을 밝혔을 때 제기되기도 했다. 이상철 변호사는 “박근혜 피고인은 전직 대통령이기 이전에 나이가 66세의 고령인 연약한 여자”라며 약한 체력을 걱정하기도 했다. 실제 6월30일에는 박 전 대통령이 재판 중에 갑자기 책상에 엎드리면서 재판이 급하게 중단된 적도 있었다. 반면 지난해 11월 말 기소돼 9개월째 재판을 받는 최씨는 꼿꼿한 자세를 유지해 대비됐다.

대법정에서 가장 바쁜 건 검사와 변호인이었다. 롯데 뇌물 혐의를 수사했던 이원석 서울중앙지법 특수1부장검사는 검사의 질문이나 증인의 답변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나섰다. 롯데그룹 총수인 신동빈 회장이 처벌을 받을 수도 있는 사안이라 롯데 쪽 변호인들도 공세적으로 변론을 펼쳤다. 두번째 증인인 이 전무에 대한 증인신문이 저녁 8시가 넘어 끝나자 “피고인들 혹시 추가로 질문하고 싶은 사항이 있습니까”라는 재판부 질문에 박 전 대통령은 고개를 내저었지만 양쪽은 “한 가지만 더”를 외쳤다. “2016년 6월2일 롯데 면세점과 6월10일 롯데그룹 회장실 등 압수수색을 받은 날짜와 6개 계열사가 낸 70억을 케이스포츠 재단에서 반환받은 날짜가 상당히 중첩되죠?” 이 부장검사의 질문에 이 전무는 “그렇습니다”라고 답했다.

“변호사님 질문사항 있습니다. 판사님. 판사님한테 질문사항 있습니다!” 저녁 8시30분께 한 방청객이 갑자기 일어나 소리쳤다. 대법정에 있던 7명의 법원 경위들이 바빠졌다. 이날만도 이미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려 방청객 2명이 퇴정과 방청 금지를 당했다. 경위들이 막아섰지만 그는 “왜 말을 못 꺼내게 합니까. 공산주의 국가입니까”라고 계속 외쳤다. 다른 방청객들이 “나가세요”라며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법정 내에서 떠들어서 심각하게 법정질서를 침해했기 때문에 감치를 위한 준비로 구금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후에 감치 재판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피곤한 모습이었지만 김세윤 부장판사는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하게 구금을 명령했다. “아니 국민이 질문하는데 이렇게 구금합니까!” 그는 재판 내내 박 전 대통령을 안타깝게 지켜봤던 박씨였다. 박 전 대통령은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저녁 8시45분께 재판 종료와 함께 퇴장했다. “힘내세요!”, “수고하셨습니다”, “사랑합니다.” 뒤이어 퇴장하는 최순실씨에게도 응원은 이어졌다. “고생하셨습니다.” 50명이 넘었던 방청객은 끝날 때쯤 20명 넘게 남아 있었다. “조윤선씨 봐요. 저렇게 대통령이 깨끗하니까 부하들이 다 깨끗하지.” 방청객들은 두셋씩 모여 대화를 나눴다.

박 전 대통령 재판에서의 첫 감치 재판은 밤 9시10분께 시작됐다. 박씨는 두 손을 모으고 증인석에 섰다. 질문에 답하면서도 몇 번이나 재판부를 향해 허리를 굽혔다.

“현재 직업은 어떻게 되시죠?”(김 부장판사) “건축업인데 무직이라고 되어 있습니다.”(박씨)

“방금 전에 8시 반경입니다. 이 법정에서 공판 진행 도중에 갑자기 일어나서 고함을 지르는 등 법원 심리 방해한 사실이 있습니다.” “저는 판사님이 끝난 줄 알고 이게 끝난 줄 알고…. 저도 처음 왔습니다. 법도 제대로 모르고. 잘못했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한 번만 봐주세요.”

“왜 일어나서 소리친 거예요?” “이 재판이 언제까지 가려는지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저는 서민이고 경기는 바닥이고 가정 파탄이 날 지경입니다. 저한테도 직격타가 왔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판사님께 여쭤보려고 그랬습니다.”

“전에도 이 법정에 온 적 있습니까?” “처음입니다. 처음 당첨돼서 왔습니다.”

“다른 재판도 방청한 적 있습니까?” “없습니다.”

“심리는 다 마쳤는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 있으면 해보세요.” “법도 아무것도 모릅니다. 장애 3급인 아들이 있습니다. 마누라가 있고. 벌어야 먹고사는 심정입니다.” 김 부장판사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퇴정당한 사람만 16명

5분 뒤 합의를 마치고 돌아온 김 부장판사가 말했다. “재판을 시작할 때마다 재판부에서 여러 번 당부를 했습니다. 국민적 관심 많은 중요한 사건이고 재판정에서 어떤 소란행위 있어서도 안 된다고 모든 방청객에게 당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반자는 재판장에서 큰 소리로 고함을 질러 법원 심리가 심각하게 방해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땅히 구치소 구금하는 감치에 처함이 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위반자가 법원 심리 방해하긴 했지만 방해한 시간이 길지 않습니다. 이 사건 심리 과태료 사건 심리에 있어서 많은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감치까지 처하지 않고 과태료 처분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딱한 사정을 알지만 그냥 지나갈 정도 행위는 아닙니다. 결정을 고지하도록 하겠습니다. 위반자를 과태료 50만원에 처한다.” 이날까지 퇴정당해 법정 방청이 금지된 사람은 16명이었다.

밤 9시30분께 대법정에서 나온 한 중년 여성이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재판이 끝난 줄 알고 자기 말하고 싶은 거 해도 되는 줄 알았던 거야. 우리 동네에서 왔다는데 아침 7시에 왔대. 우리가 9시에 오니까 왜 이제 오냐고 하더라고. 불쌍한 사람이야 잘 좀 써줘요.” 비가 오는 늦은 밤, 박 전 대통령이 탄 호송버스가 지나가는 법원 정문 쪽에서 “대통령 박근혜”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시민들이 지난 5월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회생법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첫 재판 방청권을 응모하기 위해 줄서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