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들여다보기]'호텔링 모델'에도 불구하고 국민의당·바른정당 지지율은 왜 제자리일까
유성운 2017. 8. 13. 06:00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당권 경쟁에 뛰어들며 ‘극중주의(極中主義)’를 내걸었다. 그는 지난 3일 8·27 전당대회 출마 기자회견에서 ‘극중주의’에 대해 “극좌나 극우처럼 좌우 이념에 경도되지 않고 치열하게 국민에 도움이 되는 일에 매진하는 것”이라며 “이 노선을 국민에게 알리는 기회가 전당대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경제학에서 쓰이는 게임이론의 ‘호텔링 모델’로 이를 설명한다. 미국의 경제학자 해럴드 호텔링이 제시한 ‘호텔링 모델’은 일종의 ‘로케이션 게임’이다. 어느 쪽에 자리를 잡아야 많은 고객을 잡을 수 있는지를 이론화한 것이다. 흔히 해변가의 아이스크림 가게의 위치를 예로 들어 소개되곤 한다.
따라서 ‘호텔링 모델’에서는 A와 B가 각각 중간 지대인 5와 6 지점에 자리잡을 것을 권한다. 상대에게 뒤지지 않고 비슷한 규모의 판매 범위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호텔링 모델’은 경제학에서 파생됐지만 정치학에서도 곧잘 인용된다. 미국의 정치학자 앤서니 다운즈와 던컨 블랙 교수는 이를 ‘중위투표자 정리’로 정리했다. 두 정당이 과반수 득표를 위해 극단적 사업보다는 주민의 중간 수준 선호 사업에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이 정강정책에서 큰 차이는 없다는 점 등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또, 지난 프랑스 대선과 총선을 모두 승리한 ‘앙마르슈’도 중도 성향 정당이다. 안철수 전 대표는 지난 3일 ‘극중주의’를 설명하며 “이미 프랑스가 극중주의로 정권을 잡았고 전 세계적으로 파급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①다당제 환경의 한계=한정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호텔링 모델의 주요 가정은 두 개의 정당”이라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두 개의 정당이 경합할 때 중간 지대 유권자의 지지를 얻기 위해 중간 지대로 정당의 정책적 입장이 수렴한다는 것”이라며 “현재 한국과 같이 다당이 경쟁하는 상황에서는 중도로의 수렴이 균형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②지역주의라는 벽=영·호남을 중심으로 한 공고한 지역주의도 꼽힌다. 엄태석 서원대 행정학과 교수는 “영남 사람들이 보수라서, 호남 사람들이 진보이기 때문에 한국당과 민주당에 높은 지지를 보내는 것은 아닐 것”이라며 “이념적 중도주의가 ‘제 값’으로 평가받기엔 어려운 여건”이라고 말했다.
③‘합당론’이라는 유령=각각 ‘모체’였던 한국당 및 민주당과의 합당론도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의 ‘홀로서기’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바른정당의 한 재선 의원은 “지역에서는 ‘중도보수’에 대한 관심 보다는 한국당과 합쳐 여권의 강력한 대항마가 되어달라는 목소리가 더 크다”고 토로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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