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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음식 족발과 감자탕, 미쉐린 할매집은 어떤맛?

다스베이글 기자
입력 : 
2017-08-11 06:01:04
수정 : 
2017-08-11 17: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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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슐랭가볼랭-22] 한국의 맛을 묻거든 고개를 들어 족발과 감자탕을 먹게 하라. 방금 지어낸 말입니다. 하지만 두 음식 모두 푸짐한 한 끼 식사이자 실속 있는 안주나 야식으로 사랑 받아온 한국인의 스테디셀러임에는 분명합니다.

두 음식 모두 메뉴 이름이 곧 상호가 될 정도로(○○족발, ○○감자탕) 뚜렷한 개성을 지녔고, 서로의 대체재로서 존재합니다. 한 식당에서 두 음식을 모두 판매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얘기이지요. 하지만 여기 족발과 감자탕을 모두 즐길 수 있는 음식점이 있습니다. 그것도 미쉐린 가이드 서울 빕 그루망으로 선정된 식당 36곳 중 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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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직로 서울지방경찰청 옆 골목. 할매집 간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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꺾인 골목 끝에 위치한 할매집. 기와집을 개조한 형태다. 아미원 뜻밖의 존재감.
평일 점심시간, 무더위에 지친 이들과 함께 '고기고기 원정대'를 꾸려 서울 사직로에 위치한 할매집으로 향했습니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 내려 서울지방경찰청 방향으로 걷다 보면 직장인들이 몰려 들어가는 작은 골목길이 있습니다. 무리를 좇아 골목길로 들어서보니 비좁은 골목 끝에 위치한 할매집이 보입니다. 문경자 할머니가 1975년 종로구 내자동에서 창업한 할매집은 2006년 현재 위치로 이전했습니다. 문 할머니는 지금도 정정한 모습으로 손님을 맞이합니다. 허리 높이까지 쌓아올린 잡동사니를 지나 좁은 입구를 지나면 개방된 주방이 보입니다. 찜통더위가 무색할 정도로 화구(火口)에서는 뚝배기가 끓고 있었고, 큰 가마솥에는 족발이 넘치도록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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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된 주방의 풍경. 깨진 타일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만 기름때 하나 없는 모습에서 위생과 청결에 대한 신뢰감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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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의 상황이 한눈에 보인다(위). 테이블 간의 간격은 넓은 편이다. 미닫이 문 너머로 좌석이 많이 보인다(아래).
좁은 입구와는 달리 식당 내부는 무척 넓습니다. 주방 맞은 편 방은 미닫이문으로 칸칸이 구분돼 있는데 각 방은 예상 외로 넓습니다. 주방에서 안쪽으로는 더 많은 공간이 마련돼 있습니다. 미쉐린 가이드에서는 최대 수용 인원을 40명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점심 특선메뉴인 뼈해장국을 먹는 손님들은 안쪽 공간부터 채울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단체손님을 제외하면 별도의 예약은 받지 않지만 생각보다 손님이 많지 않고 자리가 넉넉해 기다릴 필요가 없었고, 식사가 끝날 때까지도 만석은 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한여름, 그것도 점심시간에 먹기엔 부담스러운 음식인 탓입니다.

전통적인 서민음식 맛집을 찾은 고객들은 적당한 지저분함과 불편함, 때론 불쾌함마저도 응당 감내해야 하는 요소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불쾌한 식당은 맛없는 음식보다 나쁘다'라는 주의라 이번 방문에서도 그 부분에 방점을 두고 살폈습니다.

위생·청결도 측면에서 할매집은 꽤 만족스럽습니다. 테이블은 기름때 하나 없이 깨끗했고, 수저나 그릇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좌석 간의 간격도 충분히 넓어 외간 남녀가 등을 맞대고 식사를 해야 하는 상황도 없었습니다. 다만 좌식이다 보니 여성의 경우 불편할 수 있고, 입구 쪽에 있는 화장실도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철제문에 간유리 조합이라니 이 무슨 레트로인지요.

서비스 측면에서는 호오가 갈립니다. 지난해 '백종원의 3대 천왕'에 이어 올해 '수요미식회' 등에 소개되며 방문객이 크게 늘어난 덕에 인터넷상에 방문 후기도 덩달아 많이 보이는데, 맛에 대한 호평과 함께 '불친절하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들립니다. 사실 확인이 어려운 관계로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직접 겪은 바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다만 좀 투박하다 싶은 응대인지라 사람에 따라선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일행들은 "불친절할 거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친절했다"는 평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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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촐한 메뉴판. 테이블과 식기의 상태는 매우 양호하다.
메뉴는 단촐합니다. 메인인 족발과 감자탕이 있고, 식사 메뉴로 서리태 콩국수(8000원)와 메뉴판에 없는 점심특선 뼈해장국(8000원)이 있습니다. 4명이 족발(2인 기준, 3만원)과 감자탕 대자(3인 기준, 3만원)를 주문했습니다. 아무래도 많겠다 싶어 감자탕 소자(2인 기준, 2만5000원)를 주문했지만 "소자는 양이 적으니 대자를 추천한다"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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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반찬들. 삼삼한 통양파절임과 무생채가 매력적이다.
고춧가루가 잠시 노닐다 간 무생채와 통째로 간장에 절인 양파절임, 김치, 새우젓, 고추 등 밑반찬이 깔립니다. 그중에서도 통양파절임은 짜지 않고 적당히 새콤하고 아삭한 맛에 자꾸 젓가락이 갑니다. 쌈 채소로는 깻잎만 제공됩니다. 한 블로거는 무생채를 감자탕용으로 준비된 겨자 소스에 버무려 먹는 방법을 추천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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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발은 김이 올라올 정도로 데워서 나온다. 가격 대비 양은 조금 아쉬운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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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발과 깻잎의 궁합이 매우 훌륭하다. 아삭한 양파절임 때문에 식감도 재미있다.
족발이 먼저 나왔습니다. 모든 족발이 그렇듯이 뼈 위에 올린 살코기 덕분에 일견 푸짐해 보이는 착시현상이 있습니다. 가격에 비해 양은 많지 않습니다. 족발은 간장 등으로 양념한 국물에 돼지 다리 부위를 삶아내고 썰어서 내놓는 돼지고기 요리입니다. 돼지족(足)을 활용한 요리는 많습니다. 독일의 슈바인스학세·아이스바인, 폴란드의 골롱카, 필리핀의 족발튀김 크리스피 파타, 일본 오키나와의 향토요리 테비치(てびち), 태국의 족발덮밥 카오카무 등 세계 각국에는 다양한 족발 요리가 있습니다. 아롱사태로 만드는 오향장육(五香醬肉)의 조리법을 적용한 오향족발도 별미죠.

족발은 콜라겐 성분의 쫀득한 식감을 살리고 돼지 냄새를 잡기 위해 일반적으로 한 김 식혀서 먹습니다. 하지만 할매집의 경우 식힌 족발을 다시 한 번 데워서 내놓습니다(전자레인지를 이용해 데운다는 내용을 접했지만 직접 확인하진 못했습니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족발은 접하기 쉽지 않은 터라 일행 모두 신기해하며 입으로 가져갑니다. 쫄깃한 식감을 선호하는 이는 아쉬움을 표했고, 고기는 야들야들하고 목넘김(?)은 부드러운 색다른 족발에 열광하는 이도 있습니다. '쫄깃해야 족발이다'파 일행은 이후 감자탕을 먹으며 기다렸다가 식은 족발을 먹으며 그제야 만족감을 피력했습니다.

이곳의 족발은 고춧가루 양념을 이용해 매운맛을 냅니다. 그렇다고 해서 소위 '불족발'이라고 하는, 요사이 유행하는 스타일의 매운 양념 족발은 아닙니다. 먹고 나면 입술 주위로 은근히 매운 맛이 올라옵니다. 은은하고 깔끔한 매운맛은 데우는 과정에서 자칫 느끼해질 수 있는 여지를 없애는 역할을 합니다.

후반전의 주인공, 감자탕이 나왔습니다. 미쉐린 가이드에서는 할매집을 족발 전문점으로 명시했지만, 몇 차례 방송에서는 모두 감자탕 맛집으로 소개했을 정도로 명성이 높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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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추와 콩나물이 잔뜩 올라간 감자탕은 이 식당의 시그니처 메뉴다. 감자탕의 상식을 깨는 맛과 비주얼이다.
온(溫)족발처럼, 감자탕 역시 색다릅니다. 감자탕의 필수 구성요소인 우거지와 시래기, 감자, 깻잎, 들깨가루는 찾아볼 수 없고 데친 콩나물과 부추가 산처럼 쌓여 있습니다. 이쯤 되니 감자탕이 맞긴 맞는 건가 싶습니다. 종업원이 "고기는 이미 익혀져 나오니 바로 먹고 야채는 익혀서 드시라"고 권하기에 바로 고기와 국물부터 맛봤습니다. 일각에서는 '매운탕 같은 감자탕'이라고 평했는데 그 말도 안 되는 비유도 수긍할 수 있는 맛입니다. 칼칼하면서도 텁텁하지 않은 국물이 매력적입니다. 돼지 사골(다리뼈)로 밑국물을 내고 채 썬 무를 넣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푹 끓여낸 것이 비결이라고 합니다. 고추씨와 마늘로 육수의 느끼함, 텁텁함을 잡아냈고요. 감자탕을 먹다 보면 국물이 느끼하기도 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짜져서 고기 위주로 먹다가 볶음밥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정석인데, 이곳 감자탕은 고기보다 국물이 열일(열심히 일하다)을 합니다. 누린내가 심한 감자탕을 처음 먹고 크게 체하는 바람에 트라우마가 생겼다는 김라미씨(가명·27)는 이날 식사로 수년 만에 감자탕을 다시 먹을 수 있게 됐다며 감자탕 간증을 하기도 했습니다.

감자탕의 어원은 아직도 풀리지 않은 요식업계의 대표적인 미제사건입니다. ①고기가 귀한 시절에 고기 약간에 싼 감자를 많이 넣어 끓여 먹어 감자탕이라 불렀으나 이후 주객이 전도됐다는 설 ②'감자'가 돼지등뼈 혹은 등뼈의 척수 부분을 뜻하는 말이라는 설(그러나 돼지에는 감자라는 부위는 없음) ③싸구려 재료로 인식되던 돼지 뼈다귀 대신 어감이 양호한 감자가 이름을 꿰찼다는 설 등이 있습니다. 물론 중요한 얘기는 아니지만, 원래 알아두면 쓸데없는 잡학 지식은 식사 자리에서 맛깔난 반찬 역할을 하는 법이니까요.

살코기가 푸짐한 목뼈·등뼈는 반드시 부추, 콩나물 등과 함께 먹어야 합니다. 조례로 강제해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잘 어울리거든요. 라면 사리(2000원)가 있지만 배도 부르고, 시원한 국물이 줄어들까 싶어 따로 주문하지 않습니다. 밥은 한 공기에 1000원인데 이상할 정도로 양이 적습니다. 공기의 3분의 2 정도를 겨우 채우는 정도라서 많이 먹는 사람의 경우 야박하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다른 건 다 푸짐하면서 왜 1000원짜리 밥에서 정색을 하는 것인지 - 궁금할 따름입니다.

감자탕의 꽃 '볶음밥'이 없는 것도 아쉽습니다. 식사를 원하면 '미니사이즈 밥'을 주문해야 합니다. 볶음밥이 애초부터 없었던 것은 아니고 과거에 볶음밥 때문에 화재가 발생할 뻔 한 적이 있어서 그 이후로는 볶음밥 메뉴를 없앴다고 합니다. 이 무슨 고심 끝에 해경 해체하는 소리인가 싶지만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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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탕 x 족발의 콜라보 현장. 고기 요리계의 엘클라시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지막 부추와 고기 한 점까지 먹고 나서 든든한 배를 두들기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족발과 감자탕이라는 '쎈' 메뉴임에도 불구하고 뒷맛이 깔끔하고 개운합니다. 특히 술자리 3차 이후에나 찾게 되는 '네맛 내맛 결론은 소주맛'인 감자탕을 맨 정신으로 먹는 경험은 색달랐습니다. 평가가 엇갈리는 서비스에 관해서는 한두 차례 더 방문해보고 판단할 생각입니다. 의외의 조합으로 의외의 만족감을 얻은 곳이라 정리할 수 있겠네요. 주력 메뉴 모두 2~3인분 기준이라 모두 맛보려면 여럿이 방문하길 권합니다. 며칠 뒤 추가 취재를 위해 식당을 재방문 했습니다. 주방이 바로 보이는 자리에 앉았던 첫 번째 방문과는 달리 가장 구석진 곳에 앉게 됐습니다. 식당 직원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이다 보니 서비스에 아쉬움이 남더군요. 선풍기의 바람이 채 미치지 못하는 자리에 앉아 뜨거운 국물 요리를 먹으며 '이열치열'의 뜻을 되새기기도 했습니다. '복불복'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첫 방문 만큼의 만족도는 얻지 못했습니다.

[다스베이글]



<할매집 총평> 맛 ★★☆ (감자탕도 족발도 못 먹어본 맛)

가격 ★★ (예상보다 작은 그릇에 기대보다 푸짐하게 담김)

분위기 ★★ (의외의 깔끔함, 의외의 친절함 그러나 재방문 땐 -☆ )

(★★★ 만점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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