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손님은 안오고, 시위대가 화장실 사용위해 줄서"

최아리 기자 2017. 8. 11.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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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못한 청운효자동 주민 "집회 규제 가처분 신청 낼 것"]
청와대 인근서 한달 300건
"앰프 소음에 통화 불가능" 문 닫은 가게까지 나와
피해사례 모아 법원 제출 계획.. 17일엔 '집회 항의 위한 집회'

10일 청와대로부터 200m 떨어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 횡단보도 양쪽에 '집회 시위 제발 그만! 위험하고 시끄러워 더 이상 못 살겠어요-청운효자동 집회 및 시위금지 주민대책위원회'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경복궁역에서 청운효자동 주민센터까지 이르는 약 1㎞ 구간 곳곳에 '앰프의 소음으로 인해 주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상인들도 장사를 할 수가 없을 지경'이라는 내용의 벽보가 40여장 붙었다. 청운효자동은 서울 도심에서 가장 조용한 동네 중 하나였다. 청와대 인근이라 경호가 삼엄하다. 한 주민은 "밤에도 고성방가 한번 들은 적이 없던 곳"이라고 했다.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한 달에 집회 300건… "살 수가 없다"

지난 9일 오후 1시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길 건너 푸르메재활센터 앞. '부산 사하구 승하산 차량기지창 건설 반대'를 주장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빨간 머리띠를 매고 모인 100명의 참가자들은 2시간 동안 "문재인 대통령 고향 사람 보러 나오세요" 등의 구호를 외쳤다. 스피커 2대로 '임을 위한 행진곡', '남행 열차' 같은 노래도 불렀다. 옆 사람 말이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소음은 청운효자동 주민에겐 일상이 됐다. 참다 못해 '청운효자동 주민자치위원회'는 지난 8일부터 오는 14일까지 주민센터 1층에서 집회와 시위로 인해 피해를 본 주민 사례를 접수 중이다. 집회가 가능한 시간과 소음을 규제하도록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낼 예정이다. 김종구(62) 자치위원장은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있다는 것은 존중하지만 주민들의 고통이 너무 크다"고 했다. 오는 17일에는 대책위원장을 선출하고, 주민 100명이 모여 '집회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겠다고 종로경찰서에 신고했다.

시끄러워 못살겠다는데… - 9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신교동 푸르메재활센터 앞에서 ‘부산 사하구 승학산 차량기지창 건설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 집회 참가자들 머리 위로 ‘집회 시위 이제 그만!’이라고 쓰인 현수막이 보인다. 이날 참가자들이 확성기를 틀고 도로를 점유해 센터를 이용하는 환자와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고운호 기자

동네 분위기가 바뀐 것은 지난해 11월 열린 촛불 집회 때부터였다. 광화문광장에서 머물던 시위대가 청와대로 향했다. 처음엔 경복궁역까지만 진출이 가능했다. 나중엔 청와대에서 200m 떨어진 곳까지 허용됐다. 동네가 시위대에 완전히 휩싸인 것이다.

촛불 집회가 끝나면 다시 조용해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새 정부 출범 후 청운효자동 일대는 각종 민원을 제기하는 시위대가 몰려드는 장소가 됐다.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7월 한 달 동안 청와대 인근에서 열린 집회·행진은 300건이 넘는다.

상인들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았다. 올해 초 효자치안센터 옆 꽃집은 문을 닫았다. 주민센터에서 청와대로 가는 길목에 있는 이 꽃집은 원래 내년까지 임대계약을 맺었다. 꽃집이 비었지만, 새로 들어오려는 사람은 없다. 인근 수퍼마켓 앞에는 경찰차가 상시 배치돼 있다. 한 상인은 "손님은 없고, 화장실 찾는 사람만 들어온다"고 한숨을 쉬었다.

인근 카센터 직원은 "시위를 하러 온 사람들이 가게 화장실 앞에 줄을 선다. 하루에 휴지 세 통을 갈아 끼운 적도 있다"고 했다.

◇집회 소음에 "전화도 못 받는다"

주민들은 소음이 고역이라고 입을 모았다. 주민센터에서 200m 정도 떨어진 빌라에 사는 박종원(78)씨는 "아들에게 전화가 걸려와도 집회 소음에 도저히 의사소통이 안 되더라"고 했다.

집값 걱정을 하는 주민도 늘었다. 한 주민은 "못 살겠다고 집 내놓는 사람은 많은데 들어오려는 사람은 없으니 집값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인근에 위치한 경복고의 한 교사는 "지금이야 문을 닫고 에어컨을 틀면 되지만, 가을이 걱정이다. 11월에 수능을 봐야 하는 고 3들의 스트레스가 크다"고 했다. 청운효자동에는 국립서울농학교, 국립서울맹학교 등 6개 학교가 있다.

서울의 한 사립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김모(31)씨는 지난해 6월 논문을 쓰기 위해 이 지역에 방을 2년간 계약했다. 지금은 집회 소음을 피해 매일 정독도서관으로 간다. 김씨는 "지난겨울 나도 촛불을 들었지만 이런 걸 원한 건 아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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