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탈과학기술'이 위험한 이유

2017. 8. 10.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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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서강대 자연과학부 교수·탄소문화원장
이덕환 서강대 자연과학부 교수·탄소문화원장

뜻밖의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인사로 과학기술계가 시끌벅적하다. 국가연구개발 사업의 예산 심의·조정과 성과 평가를 전담하는 혁신본부를 황우석 사건의 주역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 확실한 중론이다. 인사에 대한 청와대의 해명도 옹색하다. 새 정부와 배치되지 않으면서 혁신에 꼭 필요하다는 과거의 '철학'과 '경험'이 무엇인지 분명치 않다. 논문 조작이나 부당 지원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책임회피성 변명도 구차하고, 오래 전에 폐기돼 이제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과학기술 혁신체계'를 애써 되살려내겠다는 주장도 어색하다.

전 세계 과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2005년 황우석 논문조작 사건은 과학기술중심사회를 만들겠다던 참여정부의 화려한 꿈을 한 순간에 날려버린 희대의 사기극이었다. 과학기술부를 부총리 부서로 승격시키고, 국가연구개발 사업의 규모를 5년 만에 두 배로 확대한 참여정부의 역사적인 노력은 통째로 허사가 돼버렸다. 그뿐이 아니다. 전 세계 과학자들을 철저하게 속여 넘겨 우롱했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던 젊은 학생들과 연구원들의 인권과 꿈을 짓밟아 버렸다. 수많은 불치병 환자들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려 버린 것도 사실이다. 이 땅의 과학자들에게 황우석 사건은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우리 과학의 역사에 가장 부끄러운 일로 기록될 황우석 사건이 남긴 후유증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줄기세포를 비롯한 첨단 생명공학 기술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져버렸다. 그 대신 지나칠 정도로 경직된 윤리적 거부감이 고착화돼 버렸다. 다른 나라에서는 아무 문제없이 수행할 수 있는 멀쩡한 생명공학 연구조차 쉽게 수용하지 못하는 퇴행적 사회가 돼버렸다. 우리 과학자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유전자 가위 기술도 다른 나라 과학자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실험이 가능하고, 그 공로도 상당 부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황우석 사건은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직도 황우석의 망령이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대법원의 유죄 판결이 있었던 2014년에는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가 황우석의 섣부른 복귀를 경계하는 사설을 실었다. 윤리적 고민 때문에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엄두를 내지 않는 상업용 복제견 사업에 대한 자신들의 관심을 오해하지 말아달라는 경고였다. 현대 과학의 역사에서는 찾아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황당한 사기극의 주역이 버젓이 활동을 재개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2016년에는 중국 톈진에 100만 마리 규모의 식용복제소 공장을 지을 것이라는 허황한 사업계획으로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했다. 결국 외국의 과학언론도 이번 혁신본부장 인사를 주목하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형편이다.

과학기술계의 인사와 전력수급 계획의 공론화에서 철저하게 배제 당해버린 과학기술계의 입장이 난처하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대통령의 노력에 동참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 지난 40년 동안 안정적인 전력수급에 결정적인 기여를 해왔던 고리 1호기는 그 공로조차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불명예스러운 강제퇴역을 당해버렸다.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성과 효율성을 공인받은 한국표준형 원자로(APR1400)의 설계·시공·운영 능력을 확보한 원자력계는 '사고'를 은폐해왔던 비윤리적 집단으로 전락해버렸다. 지난 20여 년 동안 엄청난 규모의 투자에도 불구하고 변변한 기술조차 개발하지 못하고, 우리 시장을 중국과 독일에 몽땅 내줘버린 신재생에 밀려나는 처량한 신세가 돼버렸다.

탈권위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훌륭한 첫 걸음이다. 그러나 아무리 대선공약이라도 법치의 틀을 벗어난 탈원전과 탈석탄은 안정적인 국가 운영에 심각한 걸림돌이 되고 말 것이다. 국무총리 훈령이 국회가 정한 법률을 넘어설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21세기 과학기술 시대에 탈과학기술은 더욱 치명적인 선택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4차 산업혁명의 공허한 유혹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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