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산책] 디지털 흔적과 잊힐 권리

2017. 8. 10.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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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환 ETRI 책임연구원
임명환 ETRI 책임연구원

우리는 손안의 컴퓨터인 스마트폰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쉽게 찾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소통하면서 편리한 생활을 하고 있다. 반면에 손끝으로 터치한 디지털 흔적이 때로는 곤란한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취업과 결혼을 앞두고 과거 악성 댓글이나 부적절한 사진, 동영상을 삭제해 달라는 요청이 쇄도해 이른바 '디지털 세탁소'라는 신규 직업이 탄생했다. 실제 상당수 기업들은 겉으로 드러난 이력서 외에 속으로 가려진 인성과 품성을 판단할 수 있는 자료로서 온라인 활동을 참고하고 있다. 최근에는 음란성 게시물을 없애려는 고객의 50% 이상이 청소년층으로 나타나 일부 10대들의 일탈행위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사람은 빈손으로 태어나 출생신고를 시작으로 학교 입학 및 성적, 은행통장 및 신용카드, 학력 및 경력, 일상생활 및 사회활동 등에서 수많은 기록을 생성하고 빈몸으로 돌아간다. 그렇지만 사망신고 이후에도 디지털 흔적은 남아 있어, 이를 제거하고 금융관련 개인정보를 삭제해 주는 '디지털 장의사'라는 전문 직업이 등장했다. 2000년대 중반 미국의 온라인 상조회사로 출발한 고인의 디지털 유산 정리는 이제 보편화돼 개념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잊힐 권리(Right to be Forgotten)'는 2010년대 초반 유럽에서 뜨거운 논쟁을 거쳐, 2014년 5월 최초로 유럽사법재판소가 법적으로 인정한 이래 오늘날 제도로 정착된 것이다.

우리나라도 세계적 추세에 맞춰 2016년 4월 '인터넷 자기게시물 접근배제요청권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시행 중이다. 온라인상의 특정 개인정보와 콘텐츠를 제거토록 요청하는 잊힐 권리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의거 사생활 침해나 명예 훼손 등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해당 정보를 삭제 또는 반박 게재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즉 본인이 작성한 내용을 직접 삭제할 수 없는 경우, 게시판 운영관리자 또는 검색서비스 사업자에게 삭제 또는 검색 배제를 요청하는 제도다. 그러나 유럽과 달리 한국의 잊힐 권리는 타인이 작성한 게시물은 해당되지 않고 법적 구속력도 부족해 명예훼손 등 다른 법제도를 병행해야만 보장을 받을 수 있으므로 개선이 필요하다.

이렇게 디지털 흔적과 잊힐 권리가 부각되면서 온라인상에서 채팅 내용 또는 게시물이 일정시간 지나면 사라지는 휘발성 정보통신 서비스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가장 먼저 출시된 '스냅챗'은 사진과 동영상이 24시간 안에, 메시지는 상대방 확인 후 10초 내에 삭제되는 기능으로 청소년들에게 커다란 인기를 받고 있다. 인스타그램은 24시간 동안 사진과 동영상을 공유할 수 있는 '인스타그램 스토리'와 상대방이 메시지를 읽으면 사라지는 '인스타그램 다이렉트'를 추가하였다. 페이스북도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과 동영상이 24시간 이후 자동으로 없어지는 '메신저 데이' 서비스를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한복제가 가능한 디지털의 속성과 중앙통제가 없는 인터넷의 특성으로 원치 않는 개인정보를 완벽하게 제거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게다가 해외 사업자가 운영하는 광범위한 게시물을 전부 조사해 없애는 것은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수반돼 현실적이지 못하다. 저작권에 보호(Copyright)와 공유(Copyleft)가 있듯이 잊힐 권리에 상반되는 알 권리도 중요하기 때문에 콘텐츠의 종류와 내용에 따라 게시물 삭제는 제한될 수 있다. 디지털 흔적을 파악할 수 있는 'e프라이버시 클린서비스' 등이 제공되고 잊힐 권리를 위해 '인터넷 자기게시물 접근배제요청권' 등이 시행되고 있지만, 무엇보다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엄격한 자기관리가 필요하다. 부적절한 단어나 편파적인 문장과 민감한 영상들이 언젠가는 나를 평가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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