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뉴스] 검찰 69년 만의 첫 사과, 왜 감동을 못 줬을까

CBS노컷뉴스 권영철 선임기자 2017. 8. 10.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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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뉴스의 행간을 속 시원히 짚어 줍니다. [Why 뉴스]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 방송 : 권영철의 Why뉴스
■ 채널 : 표준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권영철 CBS 선임기자


문무일 검찰총장이 검찰 역사 69년 만에 역대 검찰총장으로는 처음으로 과거의 잘못에 대해 사과했다. 대법원과 국정원, 군과 경찰 등이 과거사 정리를 하면서 사과를 했지만 유독 검찰만은 과거 잘못된 수사와 기소를 인정하지 않다가 문무일 총장이 처음 공식 사과한 것이다.

그렇지만 워낙 늦은 사과인데다 기자간담회 형식을 빌려 사과를 하다보니 진정성이 안 보인다거나 면피용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래서 오늘 [Why 뉴스]에서는 <검찰 69년만에 첫 사과, 왜 감동을 못 줬을까>라는 주제로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 검찰이 과거사에 대해 사과 한 게 처음인가?

= 사실상 처음 사과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2008년 검찰 60주년 기념식에서 임채진 당시 검찰총장이 "(검찰이) 국민들께 실망을 끼쳐드린 순간들도 없지 않았다"며 "국법 질서의 확립이나 사회 정의의 실현에 치우친 나머지 국민의 인권을 최대한 지켜내야 한다는 소임에 보다 더 충실하지 못했던 안타까움이 없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과 같기는 한데 사과는 아닌 듯한 그런 말이었다. '‘사과'나 '죄송' 등의 표현이 전혀 들어 있지 않았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검찰이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일부 시국사건 등에서 적법절차 준수와 인권보장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이 자리를 빌려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립니다" 라고 '깊이 사과드린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잘못 처리한 과거 사건의 대표 사례로 인혁당 사건(1964·74년)과 강기훈씨 유서대필 조작사건(91년),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2000년) 등을 꼽았다. 재심사건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 된 사건이다.

문 총장은 취임사에서도 "국민이 검찰을 신뢰하지 않는 이유로 내부비리, 정치적 중립성 미흡, 과잉수사, 반성하지 않는 자세 등을 꼽고 있다"면서 "투명한 검찰, 바른 검찰, 열린 검찰을 만들어 가자"고 밝혔다. 이미 과거사 문제에 대해 사과하겠다는 의중을 내비쳤다.

▶ 사과를 하긴 했는데 뭔가 미진하다는 느낌이다?

= 그런 얘기가 적지않다. 검찰이 그동안 사과다운 사과를 하지않다가 했으니까 진일보 한 것은 틀림없지만 진정성이 있느냐를 두고는 비판의 목소리가 들린다.

<권력과 검찰>이라는 책을 쓴 최강욱 변호사는 "사과를 한 것은 다행인데 정확한 반성아래 한 것인지는 잘모르겠다"면서 "일단 면피용으로 사과해놓고 .검찰도 사과했다는 알리바이를 만들려고 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과가 그렇게 진정성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검찰이 강력한 개혁요구에 직면해 있다보니까 위기모면용으로 마지못해 사과를 한 게 아닌가?"라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전혀 사과를 안하다가 한 것은 진일보라고 보지만 상황에 떠밀려서 마지못해 사과한다는 시늉만 한 것 같아서 씁쓸하다"고 말했다.

물론 비판만 있는 건 아니다.

과거사 재심사건에서 무죄를 구형해 징계를 받았던 임은정 검사는 "화해와 용서는 잘못을 인정하는데부터 시작되고, 개혁은 잘못을 직시하는데서부터 시작된다"면서 "이제 검찰도 사법정의의 아름다운 합창에 동참할 준비가 되었다. 만시지탄이나, 더 늦지 않았음을 검사로, 국민의 한 사람으로 안도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검사라는 사실이 부끄럽다'며 사표를 냈던 더불어 민주당 백혜련 의원은 "(문 총장의 사과를 보고) "검찰이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면서 "그동안 이런 사과조차 하지 않았으니 그것만으로도 의미부여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문무일 신임 검찰총장이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 69년만에 검찰의 첫 사과인데 왜 감동을 주지 못했을까?

= 첫 번째는 사과의 내용이나 모양새가 어딘지 찜찜하기 때문이다. 검찰이 쫓기듯 사과를 하다보니 사과의 내용도 형식도 어정쩡한 모양새가 됐다.

문무일 총장은 기자간담회에서 공개적으로 사과를 하고, 구체적인 사과의 이유에 대해서는 비공개 질의응답에서 과거 인혁당 사건과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 사건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검찰의 한 고위관계자는 "문 총장의 사과가 감동을 못 줬다면 그건 마지못해 사과한다는 느낌을 줬기 때문일 것"이라며, "기자간담회 보다는 기자회견 형식으로 사과 이후의 구체적인 대책까지 발표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늦어도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2005년 9월 이용훈 대법원장 취임사에서 "독재와 권위주의 시대를 지나면서 그 거친 역사의 격랑 속에서 사법부는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고, 인권보장의 최후의 보루로서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 불행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면서 "대법원장인 저를 포함한 사법부 구성원들 모두는 국민 여러분께 끼쳐드린 심려와 상처에 대하여 가슴 깊이 반성하면서 엄숙한 마음으로 사법부의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자 한다"고 사과했다. 표현에 '사죄'나 '사과'라는 말은 없지만 진솔한 사과의 표현을 담았다.

이용훈 대법원장 2008년 사법부 60주년 기념식에서 "사법부가 헌법상 책무를 충실히 완수하지 못함으로써 국민에게 실망과 고통을 드린 데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거듭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리고 재심사건 판결때마다 재판장이 사과의 입장을 밝혔다.

검찰은 그동안 버티다가 문무일 총장이 취임한 뒤 69년만에 사과를 했기 때문에 감동을 주지 못하고 박한 평가를 받는 것이다.

백혜련 의원은 "검찰의 사과가 감동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면서, "(사과가) 다른기관에 비해 너무 늦었다"라고 말했다.

법무부 법무·검찰 개혁위원회 위원장인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한인섭 교수는 페이스북에 "대법원장의 취임사에서 과거사 사과한지 12년이 지난 지금, 검찰총장이 기자간담회에서 사과한다. 늦었지만, 더늦은 것보다 늦은 건 아니다"라고 에둘러 늦은 사과라는 걸 꼬집었다.

세 번째는 자발적인 사과이기 보다는 국민적인 검찰개혁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사과를 했기 때문이다.

얼마전 이철성 경찰청장이 과거사에 대해 사과했다 이 청장은 "그간 민주화 과정에서 경찰에 의해 유명을 달리하신 박종철 님, 이한열 님 등 희생자분들과 특히 2015년 민중총궐기집회시위 과정에서 유명을 달리하신 고 백남기 농민과 유가족분들께 깊은 애도와 함께 진심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라고 사과했다.

이철성 경찰청장 (사진=윤창원 기자)

이철성 청장은 6월 항쟁 30주년을 앞두고는 박종철군 물고문의 현장인 남영동 인권센터를 방문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경찰이나 검찰의 이런 모습이 정권이 바뀌지 않았더라도 그랬을까? 하는 의문에는 어떻게 답할까?

촛불시민혁명 과정에서 시민들의 개혁요구 1번이 검찰개혁이었다. 문무일 총장의 사과가 이런 배경에서 나왔기 때문에 감동을 주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네 번째는 사과이후의 구체적인 후속조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과란 말로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과를 한다는 건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검찰이 69년만에 사과를 했지만 그 이후의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가 공개되지 않았다.

법무·검찰 개혁위원인 김남준 변호사는 "검찰이 처음으로 사과를 했는데 내용도 괜찮고 전향적인 자세라고 평가한다"면서도 "수사심의회 설치나 이런걸로 수사.기소 분리 같은 검찰개혁을 피해가려는 건 아닌지 의구심을 낳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인섭 서울대 교수는 "법원은 재심재판을 통해 해결해갔는데, 검찰은 그 사과를 어떻게 <구체화>하는가가 진정성의 잣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 검찰이 사과한 뒤 후속조치는 없는 건가?

= 그건 아니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여러 후속조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핵심관계자는 "문 총장이 사과직후 암투병 중인 강기훈씨를 병문안 하는 방안을 추진하다가 사과하고 바로 방문하는 것이 보여주기로 비춰질까봐 시점을 늦추기로 했다"면서 "곧 강기훈씨를 병문안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문 총장은 또 인혁당 사건과 민청학련 사건의 생존자들을 찾아서 면담하는 방안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의 핵심관계자는 "인혁당 사건 등에 있어서 누구는 재심신청을 하고 누구는 안하고 그랬는데 하지 않은 사람을 대신해서 검찰이 재심신청을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재심사건에서 백지구형이 아니라 무죄를 구형했다고 징계를 했던 검찰이 스스로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재심신청을 대신 하겠다는건 엄청난 변화일 것이다.

검찰은 특히 재심사건과 국가배상소송 등에서 무죄가 선고되거나 국가배상 판결이 날 경우 지금까지는 기계적으로 항소하고 상고를 해왔지만 과거사 재심사건에서는 1심 판결이 나면 항소를 하지 않기로 하고 이미 시행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의 고위관계자는 "검찰에서부터 기계적인 항소나 상고를 하지 않을 방침"이라면서 "앞으로 1,2심에서 무죄가 선고될 경우 상고를 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하고, 꼭 상고를 하고자 할 경우 외부 전문가들의 동의를 구하도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문무일 총장은 검찰총장이 되기 전부터 과거의 잘못에 대해 사과하고 바로 잡아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고 부산고검장 시절 대검찰청 검찰개혁태스크포스(TF) 팀장을 맡았을 때도 과거 잘못에 대해 사과하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법무·검찰 개혁위원회'에서 과거사 진상위원회 구성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고 검찰에서도 곧 민간위원들로 구성된 검찰개혁위원회를 출범시킬 예정인데 여기서도 과거사 진상조사 문제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검찰은 주요 사건의 경우 수사착수에서부터 수사진행과정, 수사종결까지 외부의 눈으로 심의한다는 방침이어서 수사를 둘러싼 논란은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CBS노컷뉴스 권영철 선임기자] bamboo4@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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