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31조 마련도 힘든데 .. 문 대통령 임기 뒤 재정 부담 한 해 10조

신성식.정종훈 2017. 8. 10.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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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병원 쏠림 대책 없이 보장만 늘려
2인 병실 건보 되면 중소병원 타격
의료계 "큰병원 100억 손실 불가피"
전문가 "개혁 방향 맞고 꼭 필요"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현장 방문으로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을 찾았다. 문 대통령이 병원 내 어린이학교에서 환자의 이마를 만져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9일 정부가 내놓은 건강보험 대책은 지금까지 나온 보장성 강화 계획 중 가장 강력하다. 2005년 이후 보장성 강화 계획이 세 차례 나왔지만 재정을 고려한 단계적 확대였다. 한 발 더 나간 게 박근혜 정부의 암·심장병·뇌질환·희귀난치질환 등 4대 중증 질환 보장이었다. 그 결과 중증 보장률은 선진국 수준인 80%에 육박했다. 나머지 질환은 수년째 63% 언저리에 머물고 있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은 보건·의료 분야 제1의 공약으로 보장성 강화를 내세웠고 취임 석 달여 만에 공개했다. 2022년까지 30조6000억원을 투입한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국민 1인당 연간 의료비 부담이 현재 50만4000원에서 5년 뒤인 2022년엔 41만6000원으로 18% 감소한다. 연 500만원 이상 의료비를 내는 저소득층(소득 하위 50%)이 12만3000명에서 6000명으로 95%가량 줄어든다.

◆“획기적 대안” 평가=중앙일보는 전문가·의료계·환자단체 등 20여 명에게 이번 대책의 평가를 요청했다. 거의 모두 “방향이 맞고 필요성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건보 적립금을 20조원 쌓아둘 필요가 없는데 그리 했다. 지금이라도 비급여와 전쟁에 나선 게 다행”이라고 평가했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비급여를 급여화하면 정부가 지출내역 등을 모니터링할 수 있어 국민 부담이 줄 것”이라며 “대통령 국정과제로 추진하게 되면 속도가 붙게 된다”고 말했다.

윤석준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정부가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걸 내놨다. 잘 집행하면 환영할 만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비급여 사라지지 않는다=정부는 3800개 비급여를 건보로 전환하면서 환자가 진료비의 30~90%를 부담하게 한다(예비 급여제도). 건보를 정상 적용하면 환자 부담 비중이 20% 이하여야 하는데 이보다 높은 편이다. 비급여를 건보로 전환할 때 일반적으로 시장가격(관행 수가)의 60%로 낮춰 건보 수가를 정한다. 정통령 복지부 보험급여과장은 “비급여를 전환할 때 되도록이면 현재가를 반영할 예정이다. 적정 수가를 보장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건보 수가를 낮추지 않으면 환자 부담이 크게 줄지 않는다. 가령 40만원짜리 검사를 건보 적용할 때 25만원으로 수가를 정해 예비급여(90% 환자 부담)를 적용하면 부담이 44% 준다. 그러나 건보 수가를 40만원으로 정하면 4만원(10%)밖에 줄지 않는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정부 계획대로 시행하면 연간 비급여 진료비가 13조5000억원에서 4조8000억원으로 64% 줄어들게 된다. 4조8000억원은 주로 1인 병실, 고가의 의약품 등이다.

이번 대책에서 약품은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비급여 약품은 1만4000개다. 이 중 일부만 예비 급여로 전환한다. 일괄적으로 건보를 적용하기 곤란해서다. 지금처럼 비용 대비 효과를 따져 될성부른 것만 보험을 적용한다.

또 의료기관들이 비급여를 늘리거나 새로 만들 경우 통제할 방법이 마땅하지 않다. 일본은 한 환자에게 ‘건보진료+비급여진료’를 섞는 혼합진료를 법으로 금지한다. 정부는 공공병원 42곳에 적용하는 신포괄수가 제도를 민간병원 200개로 늘리는 방안을 제시했다. 신포괄수가는 정액 비용 제도다. 의료 행위를 표준화해 행위량에 관계없이 수가를 지급한다. 여기에 비급여 진료가 포함된다. 새로운 비급여 행위를 하기 힘들다. 그러나 신포괄수가는 중소병원만 적용 가능하다. 대형병원은 2022년까지 적용할 수 없다.

◆재원 조달 쉽지 않을 듯=정부는 매년 보험료를 3% 이내 올릴 방침이다. 2013년 이후 인상률이 1%대를 넘은 적이 없다. 올해는 동결했다. 3% 인상이 가능할지 미지수다. 건보에 지원하는 국고(일반예산) 보조금도 6조9000억원에서 8조6000억원으로 늘리려 한다. 기초연금·아동수당 등 돈 쓸 곳이 즐비한 점을 고려하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2023년 한 해에만 건보 보장성 강화와 부과체계 개편으로 10조원이 더 필요하다. 고령화도 변수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3월 사회보험 중기재정추계에서 건보 지출이 지난해 52조6000억원에서 2025년에 111조6000억원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의료사업단장은 “건보 보장을 늘리려면 국민이 더 부담하는 게 맞다. 정부가 ‘재정 추이를 봐서 보험료 인상과 연동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큰 병원 쏠림 심해질 듯=윤석준 교수는 “보장성을 강화하면 환자 부담이 줄면서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더 몰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보장성 강화와 의료전달체계 개선 대책이 같이 가야 효과를 내는데 이번에는 그게 빠졌다. 김주현 의사협회 대변인은 “2인 병실에 건보를 적용하면 누가 중소병원을 이용하려 하겠느냐”고 말했다. 홍정용 대한병원협회 회장은 “이번 대책에 돈이 많이 들어가는데 비급여의 핵심인 MRI와 초음파 검사부터 먼저 건보를 적용해도 된다”고 말했다.

◆의료계 협조가 관건=이번 대책은 의료계 전반에 충격을 미친다. 김주현 의협 대변인은 “우리와 사전에 협의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일방적으로 발표해 놓고 따라오라는 식이라는 지적이다.

이종훈 사립대학병원협의회 사무국장은 “이번 조치는 의료 공급자 입장에서 보면 굶어 죽으라는 얘기처럼 들린다”며 “비급여를 급여로 전환할 때 현재 수가를 100% 다 보장해 줄 게 아니어서 의료기관당 100억원 이상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의사협회는 9일 성명서에서 ▶필수의료와 재난적 의료비를 중심으로 단계적인 보장성 강화 ▶적절한 보상 기전 및 합리적인 급여 기준 마련 ▶확고한 의료전달체계 대책 마련 등을 요구했다.

의료계 재야그룹인 전국의사총연합(전의총) 최대집 상임대표는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는 실현 불가능한 망상에 가깝다. 건보 재정 상황에 맞춰 의학적으로 필수적인 비급여 진료를 점진적으로 급여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의총·대한흉부외과의사회·대한평의사회 등 5개 단체는 ‘비급여 전면 급여화 저지 연석회의’를 결성했다. 이달 말 서울 광화문에서 결의대회를 열기로 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정종훈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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