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금인하 정부 압박에 통신사는 '헌법 위반' 반격

하선영 2017. 8. 10.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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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 못찾는 통신비 인하 갈등
"사적계약에 정부 관여할 근거 없어"
공정위는 요금담합 현장 조사 나서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가 요금제 가격과 구조를 담합했다는 의혹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9일 현장 조사를 진행하는 등 본격적으로 칼을 빼 들었다. 지난 6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발표한 통신비 인하 대책에 강하게 반발하던 통신사들은 공정위까지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더욱 코너에 몰리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들은 이날 오전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사옥을 차례대로 방문했다. 이들은 통신사들의 단말기 출고가·유심칩 가격 관련 자료를 열람하고 실무자들과 만났다.

참여연대, 녹색소비자연대는 지난 5월 “통신 요금과 단말기 출고가 등이 모든 통신사에서 비슷하게 책정된 점 등을 미뤄볼 때 담합 가능성이 있다”며 통신 3사를 공정위에 신고한 바 있다.
참여연대는 “한 달에 데이터를 300MB를 제공하는 요금제가 3사 모두 3만2890~3만2900원으로 통신사 간에 고작 10원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며 “심지어 무제한 요금제는 6만5890원으로 3사가 모두 동일하다”고 지적했다.

이들 시민단체의 신고 후 석 달 가까이 지난 9일 공정위가 급작스럽게 현장 조사를 한 데 대해 통신사들은 당황해하는 모습이다. 마침 9일은 통신사들이 정부의 선택약정 요금 할인율 상향(현행 20%에서 25%로) 방침에 대해 의견서를 내야 하는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이는 행정절차법에 따른 의견 수렴절차다. 정부는 의견서를 받은 뒤 오는 9월부터 요금 할인율을 올릴 방침이다. 통신사들은 공정위의 현장 조사가 끝난 뒤인 이날 오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정부의 요금 대책에 반대하는 의견서를 일제히 제출했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하필 통신사들이 정부의 방침에 반대하는 의견서를 제출하는 날에 공정위 조사가 이뤄진 것도 결국은 정부가 통신사들을 압박하기 위한 조치로 보일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통신사가 이날 정부에 제출한 반대 의견서는 헌법과 행정법을 근거로 문재인 정부의 요금 인하 방침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4장짜리 문서에서 SK텔레콤은 “통신사와 가입자 간에 이미 행해진 사적인 계약에 대해 정부가 행정 처분으로 침해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며 “이는 ‘법률유보의 원칙’을 위반한다”고 지적했다.

법률유보의 원칙은 어떠한 행정 행위를 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법률에 근거해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SK텔레콤은 의견서에서 행정법상의 ‘신뢰보호의 원칙’도 언급했다. 정부는 2015년 4월에도 선택약정 할인율을 12%에서 20%로 올린 바 있다. SK텔레콤은 “이미 선택약정 할인율을 올린 상황에서 또 할인율의 변경을 명령하는 것은 신뢰보호의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6월말 통신비 인하 대책을 발표한지 두 달 만에 요금 인하를 실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SK텔레콤은 의견서에서 “관련 전산 시스템을 개편하고 이해 관계 당사자들과의 여러 협의도 거쳐야 하는 상황인데 정부가 일방적으로 9월이라고 못박은 데 대해서도 적절하지 못하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통신사들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9월부터 선택약정 할인율 인상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통신사들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비롯해 행정소송까지도 검토하고 있다. 만약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 재판이 끝날 때까지 할인율 인상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5G 주파수 할당과 제4이동통신 업체 진입 등 정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이슈들이 산적한 상황에서 새 정부와 법적 분쟁까지 불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힘들 것이란 지적도 많다.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도 지난달 2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소송까지 가는 일은 있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통신사들을 압박한 바 있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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