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오디세이]다사다난했던 2045년

전치형 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2017. 8. 9.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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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45년은 이제 과거가 된 미래다. 많은 사람이 2005년에, 또 2015년에 2045년을 다 보아 버렸기 때문이다. 변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다 변한 2045년은 다사다난했던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가장 극적인 미래를 상징했던 2045년은 이제 낡아 보이기까지 한다. 2045년이 고생이 많았다.

2045년을 인간 진화의 역사를 통틀어 중요한 의미가 있는 해로 선점한 사람은 엔지니어이자 미래 전문가인 레이 커즈와일이다.

2005년 출판한 책 <특이점이 온다>에서 커즈와일은 40년 후를 내다보았다. “이때야말로 진정 심오한 변화의 시기다. 그래서 나는 2045년을 특이점의 시기로 예상한다.” 커즈와일이 말하는 특이점이란 “기술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빨라지고 그 영향이 매우 깊어서 인간의 생활이 되돌릴 수 없도록 변화되는 시기”이다. 책의 한국어판 부제를 빌리자면 “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순간”이다.

커즈와일은 유전공학, 나노기술, 로봇공학의 힘으로 도달할 특이점에서 인간과 생명이 새롭게 정의될 것으로 생각한다. “특이점을 통해 우리는 생물학적 몸과 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운명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죽음도 제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원하는 만큼 살 수 있을 것이다.”

커즈와일의 말은 기술적 예측인 동시에 종교적 예언처럼 들린다. 커즈와일은 “사실상 모든 의학적 사망 원인을 극복할 수 있다”는 과학의 복음을 전파한다. 믿는 자는 2045년의 구원을 기다리며 깨어 있어야 한다.

많은 한국인은 2015년에 2045년을 맞이했다. 커즈와일보다 10년 늦은 셈이지만, 커즈와일보다 더 열렬히 2045년을 전망하고 기다렸다. 2015년의 한국에서 바라본 2045년은 특이점의 해이자 광복 100년이 되는 해였다. 즉 2045년은 2015년에 사용하기 딱 좋은 미래였다. 미래창조과학부와 광복7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전국 순회 토론회 ‘미래세대 열린광장 2045’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정부, 언론, 학계가 모두 2045년을 말하느라 바빴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이 펴낸 ‘2045 미래사회@인터넷’ 보고서는 인터넷과 정보통신기술이 바꿔 놓을 30년 후 세상을 전망했다. ‘평균수명 120세 시대’를 예측한 것은 커즈와일과 비교하면 조심스러워 보인다. 2025년 100세 시대를 거쳐 2045년 120세 시대로 가는 데에는 나노로봇 수술, 인공장기, 기억 이식 등 의료 및 정보통신 기술이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기술들을 설명하는 그림을 모두 <이너스페이스> <아일랜드> <토털 리콜> 등 영화 장면에서 따왔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보고서가 전망한 2045년의 통일 한국에도 각종 스마트 기술이 중요하다. 가령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하는 로봇이나 마트에서 안내를 하는 서비스 로봇은 남북한의 직원과 고객 간에 언어차이 및 문화충격으로 인한 갈등을 줄이는 역할도 한다”는 식이다.

서울연구원이 발간한 <2045 서울미래보고서> 2권인 ‘미래기술과 미래서울’은 인공지능과 로봇에 초점을 맞췄다. 보고서가 제시한 네 가지 2045년 미래 시나리오는 ‘로봇 사회’ ‘증강인간 사회’ ‘아바타 사회’ ‘큰 변화 없음’으로 요약된다. 로봇의 발달 정도와 양상에 따라 사회의 유형이 달라진다고 본 것이다. 신동아 2015년 11월호에도 네 가지의 2045년 미래사회 시나리오를 다룬 기사가 실렸다. “경제와 과학 강국, 통일, 다문화, 작은 정부, 메가시티” “느림, 여유자본, 제로성장, 놀이, 지역자치” “보존, 쇄신, 생존 에너지, 자연과 균형, 정부 통제, 안전사회” “포스트 휴먼, 인공자연, 화성 인류, 무한 풍부, 새로운 소외” 등이 네 가지 미래의 키워드였다. 2045년은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 미래였다.

2015년이 끝나면서 2045년도 그 매력을 조금 잃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2016년에는 또 2046년이 있었다. 경향신문은 2016년 10월 초 창간 70주년 기획으로 “2046년 10월6일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를 실었다. 1990년생 구보씨가 사는 2046년은 여러 보고서가 전망했던 2045년의 모습과는 매우 달랐다. 자율주행 트램이 다니긴 하지만 젊은이와 아기가 줄어든 사회는 정체되어 있었다. “생산가능인구가 줄면서 생산과 소비가 줄었고, 경제는 활력을 잃었다. 경제성장률이 1%대 이하로 떨어진 지 벌써 몇 해째다.” 경향신문의 우울한 2046년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은 2017년 초에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 전망했다는 2047년 무렵의 특이점, 이른바 초지능의 시대를 기대해봐도 좋겠다. 어쨌든 미래는 30년 후가 가장 그럴듯하다.

2045년의 인류 일정표는 오래전에 다 채웠고, 2046년, 2047년까지 한 번씩 훑고 지나가는 분위기에서 또 미래를 얘기하려면 어느 해를 잡아야 할까. 8월 말에 열리는 카오스재단의 과학 강연 행사에는 ‘2043 과학자 5인이 쓰는 미래보고서’라는 부제가 달렸다. 뜬금없는 2043년이 오히려 재치있어 보인다. 남아 있는 미래 중 하나를 골라잡았는지도 모르지만, 그러는 중에 2040년대 후반의 미래가 이미 예측 포화 상태임을 깨닫게 해 주었다.

연도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과학자들이 강연을 하면서 미래 보고서를 쓴다는 설정이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과학자는 각종 미래 보고서의 인기 필자가 되었다. 즉 과학은 미래를 예측하고, 미래를 약속하고, 미래를 만드는 우월한 지위를 얻었다. 과학이 미래를 거의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과학자가 쓰는 미래 보고서 내용이 적중하든 못하든, 이 보고서들은 이미 우리가 살 2045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래는 여럿이 말하는 대로 흘러가기도 하기 때문이다. 과학이 말하지 않는 미래에 대한 보고서는 누가 쓸 것인가.

<전치형 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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