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택시운전사' 속 실제 기자가 목숨 걸고 찍은 광주 모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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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민주화를 촉구하는 시위와 항쟁이 연일 계속되던 광주를 찍은 한 독일 기자가 있었다.
이 기자는 택시기사 김사복의 도움을 받아 광주로 향했고, 학살 현장과 병원을 찾아다니며 광주항쟁을 촬영하고 이 영상을 독일로 보내 광주의 참상을 전세계에 알렸다.
20일 항쟁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을 때 광주시민들은 계엄군의 삼엄한 봉쇄망을 뚫고 들어온 외신 기자 힌츠페터를 뜨겁게 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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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1980년 5월 민주화를 촉구하는 시위와 항쟁이 연일 계속되던 광주를 찍은 한 독일 기자가 있었다. 이 기자는 택시기사 김사복의 도움을 받아 광주로 향했고, 학살 현장과 병원을 찾아다니며 광주항쟁을 촬영하고 이 영상을 독일로 보내 광주의 참상을 전세계에 알렸다. 바로 최근 개봉된 영화 '택시운전사'에 나오는 외신 기자의 실존 모델인 독일 제1공영방송(ARD-NDR) 특파원 위르겐 힌츠페터(1937~2016)이다.
출판사 창비는 9일 힌츠페터 기자가 당시 찍은 광주의 사진 등을 공개했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창비)의 공저자이자 광주에 있었던 기자들의 취재수첩 내용을 모은 '5·18 특파원 리포트'(풀빛, 1997년 출간)의 출간을 계기로 힌츠페터와의 각별한 인연을 이어온 이재의 5.18 기념재단 자료위원이 소장하고 있던 사진들이다.
광주 민주화 항쟁 당시에 언론통제로 국내 언론이 진실을 보도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1980년 5월의 광주는 대한민국 안에서 '고립된 섬'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힌츠페터같은 용기있는 기자 덕에 "우리를 잊지 말아주십시오"라는 피어린 광주 희생자들의 외침은 역사 속에 묻히지 않게 되었다.
1980년 광주 뿐 아니라 1987년의 '6·10민주항쟁'까지 민주화를 향한 한국 국민의 열망이 모두 힌츠페터의 뷰파인더 속에 담겼다. 6·10민주항쟁 취재 당시 경찰에 맞아 생긴 디스크로 고생하기도 한 힌츠페터는 2016년 독일 북부의 라체부르크에서 투병 끝에 향년 79세로 타계했다.
하지만 2004년 심장마비로 쓰러져 투병 중일 때 '죽으면 광주에 묻어달라'고 미리 유언을 남길 정도로 광주는 그에게 '마음의 고향'이었다. 고인의 뜻에 따라 타계 후 그가 남긴 머리카락과 손톱 등은 광주 망월동 5·18 묘역에 묻혔고 구묘지 돌탑 주변에 기념공원과 기념비석도 세워져 힌츠페터 기자는 영원히 광주와 함께 하게 되었다.
다음은 이재의 위원 등이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통해 기록으로 남긴 힌츠페터 기자의 광주민주화 항쟁 당시 취재 활동 모습이다.
'독일 공영방송(NDR) 아시아특파원 힌츠페터가 ‘계엄령 하의 광주에서 시민과 계엄군 충돌’이라는 짤막한 뉴스를 일본 도쿄에서 접한 시각은 5월 19일 오전이었다. 곧바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 20일 오전 광주에 도착했다. 대부분의 외신 기자들이 21일에야 광주로 향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힌츠페터의 육감은 남달랐다.
당시 외국 기자가 국내에서 취재하려면 국가홍보원에 신고해야 했지만, 그는 광주 취재 허가를 받는 것이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해 아예 신고를 하지 않고 광주로 잠입했다. 20일 항쟁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을 때 광주시민들은 계엄군의 삼엄한 봉쇄망을 뚫고 들어온 외신 기자 힌츠페터를 뜨겁게 환영했다. 그는 학살 현장과 병원을 찾아다니며 비디오로 촬영했다. 베트남전쟁에서 종군기자로 활동했지만 이렇듯 비참한 광경은 처음 보았다. 가슴이 꽉 막히고 흐르는 눈물 때문에 가끔씩 촬영하는 것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21일 집단 발포현장의 총성도 담았다. 그는 필름을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본사에 보내기 위해 21일 오후 광주에서 서울을 경유하여 비행기로 일본 도쿄까지 직접 가지고 갔다. 검문을 뚫고 가는 데 무려 22시간이나 걸렸다. 도쿄 공항에서 필름만 넘겨주고 곧장 광주로 되돌아왔다. 23일부터 그는 해방 공간의 시민군 활동과 궐기대회 등 여러 장면을 찍었다. 항쟁 이후 흔히 접할 수 있던 광주항쟁의 현장 동영상 장면은 대부분 이때 힌츠페터가 찍은 영상들이다.'('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349~350쪽)
ungaun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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