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원의 IT세상]아이폰 안면인식이 오싹한 이유

최희원 인터넷진흥원 수석연구위원·'해커묵시록' 저자 2017. 8. 9.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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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배경은 2054년이지만, 영화 속 장면은 35년 이상 앞당겨져 눈앞의 현실이 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 시내 한 광고판은 안면인식 기술을 이용하여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맞춤형 광고를 제공하고 있다.

20대 중반의 여자가 광고 게시판 앞을 지나가면 내장된 소프트웨어가 그녀의 예상 나이와 성별을 확인하고 그에 맞는 제품 광고를 보여준다.

이 정도는 그냥 애교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길거리나 식당 등에서 당신의 얼굴을 포착한 폐쇄회로(CC)TV가 ‘이름표’를 달아 신상정보를 드러낸다면. 그것이 온라인에 떠돌고 있다면.

걱정스럽게도 이처럼 오싹한 상황을 맞게 될 날도 그리 머지않았다. 출시를 앞둔 아이폰 신제품에 안면인식 시스템이 탑재된다는 예사롭지 않은 소식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애플보다 먼저 안면인식 기능 탑재 갤럭시 시리즈를 출시하려던 삼성전자가 접은 카드를 아이폰이 꺼내들었다는 점이다. 어쨌든 아이폰의 안면인식 시스템 탑재는 생체인증, 즉 잠금 해제로서의 기능만을 갖는 게 아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애플의 위상을 감안한다면 그 상징성에 큰 의미를 둘 수 있다. 안면인식 대중화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사실 안면인식 시스템은 조심스럽게 대중화 일로를 걷고 있다. 일본과 프랑스, 캐나다 등은 공항에 안면인식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미국 정부에서도 운전면허 및 신원확인에 안면인식을 활용하는 추세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은 안면인식 시스템을 통해 매 순간 온라인에 올라오는 수백만장의 사진을 가로채 분류작업에 들어간다. 범죄나 테러범 추적을 위해서다.

안면인식 시스템은 이처럼 긍정적으로 활용될 수 있지만 남용되는 경우를 간과할 수 없다. 범죄자나 스토커들이 안면인식 기술을 이용해 누군가를 추적하는 경우도 하나의 사례다.

그동안 안면인식 기술이 대중화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정확도가 높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카네기멜론대학이 9·11 이후 미국 정부 지원을 받아 개발한 핏팻이라는 프로그램이 등장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이 프로그램의 안면인식 기술은 미 연방수사국(FBI)보다 정확하다. 길거리에서 아무나 카메라에 담아 소셜미디어 프로필과 결합할 경우 사회보장번호 등 다양한 개인정보를 알아낼 수 있게 해준다.

지문이나 홍채, 음성 등의 경우 개인의 동의를 얻고 생체 데이터가 추출되어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안면인식은 다르다. 당신이 아무 생각 없이 블로그나 사회관계망서비스에 태그를 붙여 놓은 사진도 충분한 안면인식 데이터로 활용될 수 있다. 페이스북 유저들은 안면인식 데이터 수집요원(?)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 그들은 수백억개의 사진에 일일이 태그를 달고 있고 서버에 1000억개가 넘는 안면인식 데이터로 쌓여가고 있다. 세계 인구가 75억명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숫자다.

구글의 에릭 슈미트는 기술을 구축하고 있음에도 프라이버시 문제와 악의적으로 이용될 것을 우려해서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아무튼 인권과 사생활 침해 논란 등으로 상용화에 소극적인 틈을 타서 중국은 관련 기술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있고, ‘페이스++(투러스)’라는 기업은 지난해 말 1억달러가 넘는 대규모 투자를 받고 고속 성장 중이다.

한 남성이 백화점 주차장에서 고급 외제차를 타고 와 내리는 여성을 발견하고, 스마트폰으로 스냅사진을 찍었다고 하자. 굳이 스마트폰을 사용할 필요도 없다. 마이크로카메라가 부착된 안경을 쓴 채 길거리 수영장, 지하철 등에서 타깃에 시선을 던지면 포착된 얼굴 사진은 그대로 상대의 신상이 되어 나타난다. 그의 이름이나 주소, 친·인척 정보, 전화번호 등에 이르기까지.

이제 그가 어떤 일을 벌일지는 전적으로 그에게 달려 있다. 안면인식은 겉으로는 우리 신분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확신을 깨트린다. 사실상 우리 얼굴이 바로 명찰이 되는 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지금이라도 안면인식 사이트 등을 통할 경우 얼굴 사진 하나만으로도 개인 신상정보에 어느 정도 접근할 수 있다.

런던이나 뉴욕 등 전 세계 곳곳에는 수천만대의 감시카메라들이 도시 전역에 흩어져 있다. 경찰들은 이미 군중 속에서 원하는 얼굴을 찾아내고 있다. 사악한 독재정권과 하수인들에게는 어쩌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스템이다. 푸틴이나 중국 정부는 광장에 모여 시위하는 사람들을 감시카메라로 포착한 사진을 통해 시위대의 신원을 파악, 체포에 나서고 있다. 얼굴이 명찰이 되는 시대는 개인의 삶에 더 이상 익명을 허락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카메라나 CCTV에 포착되면 신변이 노출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당신이 국가의 요주의 인물이라고 한다면, 조심하라. 한적한 길거리를 걷고 있는 당신에게 안면인식 프로그램과 소음총기가 탑재된 드론이 별안간 달려들지 모르니까.

<최희원 인터넷진흥원 수석연구위원·'해커묵시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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