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배신에 충격" "이기주의 몰려 당황" 교대생들 대혼란
"교사 증원" 외치던 새 정부, 임용 축소 계획 발표
"초등교사 되려 노력한 삶 기만 당해" 배신감 호소
취준생들로부터 "이기적" 비난 여론에 당황도
대책 마련 시한은 고시 최종공고일인 다음달 14일
교육부는 "교사 정원 추가 어렵다" 난색
서울교육청도 "증원 어려워. 예고대로 확정할 수도"
서른두 살의 최씨는 서울 소재 대학을 나와 대기업을 다니다가 뒤늦게 교사의 꿈을 품고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다시 보고 교대에 '늦깎이'로 입학했다. 최씨는 “새 정부가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며 교원 증원을 약속했는데, 느닷없이 임용 인원을 지난해의 8분의 1로 줄이니 당혹스럽다”면서 “교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 온 내 삶이 통째로 기만당한 것 같다”고 배신감을 토로했다.
지난 3일 전국 시·도교육청이 예고한 올해 초등교사 선발 예정 인원은 모두 3321명. 지난해 선발 인원 6022명에서 2701명(44.9%)이 줄어들었다. 이에 대한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초등학생 수는 해마다 줄어드는데 임용고시에 합격하고서 발령을 기다리는 교원은 적체돼 어쩔 수 없다”고 해명했다.
정부가 교원 수급 계획을 제대로 짜서 교대 입학 정원과 연동했다면 이번과 같은 교원 임용 급감은 피할 수 있는 일이었다는 얘기다. 교대생들은 정부의 '정책실패'를 지적한다. 부산교대 1학년 김모(19)씨는 "초등학생 숫자가 줄어드니 언젠가는 교사 임용도 줄어들겠구나 하고 예상은 했다. 하지만 한 해에 2700명 이상을 한꺼번에 줄인 것은 정책실패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라고 말했다.
교대생들은 특히 문제 삼고 있는 건 새 정부의 '약속 위반'이다. 지난 4월 교대생들은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에 교원 증원에 대한 질의서를 보냈다. 이에 대해 문 캠프는 'OECD 수준으로 교사당 학생수를 줄여 교육 질을 높이겠다'고 답변했다. 학생들의 기초학력 향상을 돕기 위한 '1수업 2교사제'도 공약했다.
경인교대생 이씨는 “문 대통령이 당선되고 당연히 교원이 증원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오히려 정원이 엄청나게 줄었다. 새 정부가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렸다는 생각에 충격이 크다”고 했다. 경인교대 4학년 윤모(23·여)씨도 “임용고시 스터디 때문에 모일 때마다 일관성 없는 정부 정책에 대한 배신감을 성토하게 된다”고 전했다.
정부가 임용고시를 100일 남긴 지난 3일에서야 '임용 절벽'을 예고한 것도 교대생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그간 초등교사 선발인원은 관련 규정에 따라 시험 6개월 전에 예고했다. 올해는 대선과 정권 교체가 맞물리면서 예고가 늦춰졌다.
교대생들은 답답한 심정을 털어놨다. 서울교대 4학년 정모(22)씨는 “정책실패의 책임을 학생에게 전가한 교육당국을 비판하고 해결을 요구한 것인데 어느 순간부터 교대생들이 '경쟁하기 싫어 생떼를 쓰는 이기주의자'로 매도 당하는 듯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 4학년 안씨도 "해당 사이트는 누구나 글을 남길 수 있는 익명 게시판이고, 사람들이 문제삼는 글 역시 서울교대생이 썼다고 확인된 바 없다. 이런 글이 서울교대 학생 전체 의견인양 왜곡돼 서울교대생 전체가 매도되니 참담하고 눈물까지 났다"고 말했다. '임용 절벽' 사태의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최종 시한은 올해 임용시험 최종 공고일인 다음달 14일이다. 조희연 서울교육감 등은 ‘1수업 2교사제’의 조속한 도입과 OECD 수준에 맞춘 교사 정원 확대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교육부 관계자는 "‘1수업 2교사제’의 경우 정책내용이 아직 구체화되지 않아 당장 이를 도입해 교사 정원을 확보하는 건 사실상 어렵다"고 밝혔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교육청 차원에서도 추가 정원을 확보할 방안을 모색 중이나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며 “최악의 경우 사전예고에 고지한 인원만 임용하게 될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박형수·이태윤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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