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배신에 충격" "이기주의 몰려 당황" 교대생들 대혼란

박형수.이태윤 2017. 8. 9.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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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임용고시 94일 앞둔 교대생들, 분노·허탈 표출
"교사 증원" 외치던 새 정부, 임용 축소 계획 발표
"초등교사 되려 노력한 삶 기만 당해" 배신감 호소
취준생들로부터 "이기적" 비난 여론에 당황도
대책 마련 시한은 고시 최종공고일인 다음달 14일
교육부는 "교사 정원 추가 어렵다" 난색
서울교육청도 "증원 어려워. 예고대로 확정할 수도"
8일 경인교육대학교 안양캠퍼스 도서관 자유열람실에서 학생들이 임용고시 준비에 열중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오는 11월 11일 초등교사 임용 1차 시험을 준비 중인 서울교대 4학년 최모(32)씨는 요즘 통 책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지난 3일 서울교육청이 올해 임용고시에서 초등교사를 105명만 선발하겠다고 예고한 뒤부터다. 지난해 서울교육청은 초등교사를 846명 뽑았다.

서른두 살의 최씨는 서울 소재 대학을 나와 대기업을 다니다가 뒤늦게 교사의 꿈을 품고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다시 보고 교대에 '늦깎이'로 입학했다. 최씨는 “새 정부가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며 교원 증원을 약속했는데, 느닷없이 임용 인원을 지난해의 8분의 1로 줄이니 당혹스럽다”면서 “교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 온 내 삶이 통째로 기만당한 것 같다”고 배신감을 토로했다.

지난 3일 전국 시·도교육청이 예고한 올해 초등교사 선발 예정 인원은 모두 3321명. 지난해 선발 인원 6022명에서 2701명(44.9%)이 줄어들었다. 이에 대한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초등학생 수는 해마다 줄어드는데 임용고시에 합격하고서 발령을 기다리는 교원은 적체돼 어쩔 수 없다”고 해명했다.

전국 11개 교육대학 학생들은 허탈감과 충격을 호소하고 있다. 본지가 만난 교대생들은 “정부가 우리를 배신했다”고 한결같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1수업 2교사제' 시행, 교사당 학생 수 감축 계획 등을 공약한 터라 교대생들은 교원 증원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도 지난달 19일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 보고서에서 "학급당 학생 수 감축 등 교사 1인당 학생 수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개선할 것"이라면서 "2022년까지 OECD 평균 수준의 교수-학습 여건 조성"을 약속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교대생들은 교육부와 교육청들의 해명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반박했다. 경인교대 3학년 이모(21)씨는 “초등교사를 양성하는 전국 교육대학 10곳은 모두 정부의 계획에 따라 운영되는 국립대학이다. 정부가 출산율, 학령인구, 퇴직 교원 숫자 등을 고려해 교대 정원과 교원 임용인원을 정하는 것 아니냐. 그런데 어떻게 마치 남일인 처럼 '정부로서도 어쩔 수 없다'고 하느냐”고 성토했다.

정부가 교원 수급 계획을 제대로 짜서 교대 입학 정원과 연동했다면 이번과 같은 교원 임용 급감은 피할 수 있는 일이었다는 얘기다. 교대생들은 정부의 '정책실패'를 지적한다. 부산교대 1학년 김모(19)씨는 "초등학생 숫자가 줄어드니 언젠가는 교사 임용도 줄어들겠구나 하고 예상은 했다. 하지만 한 해에 2700명 이상을 한꺼번에 줄인 것은 정책실패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라고 말했다.

교대생들은 특히 문제 삼고 있는 건 새 정부의 '약속 위반'이다. 지난 4월 교대생들은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에 교원 증원에 대한 질의서를 보냈다. 이에 대해 문 캠프는 'OECD 수준으로 교사당 학생수를 줄여 교육 질을 높이겠다'고 답변했다. 학생들의 기초학력 향상을 돕기 위한 '1수업 2교사제'도 공약했다.

경인교대생 이씨는 “문 대통령이 당선되고 당연히 교원이 증원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오히려 정원이 엄청나게 줄었다. 새 정부가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렸다는 생각에 충격이 크다”고 했다. 경인교대 4학년 윤모(23·여)씨도 “임용고시 스터디 때문에 모일 때마다 일관성 없는 정부 정책에 대한 배신감을 성토하게 된다”고 전했다.

정부가 임용고시를 100일 남긴 지난 3일에서야 '임용 절벽'을 예고한 것도 교대생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그간 초등교사 선발인원은 관련 규정에 따라 시험 6개월 전에 예고했다. 올해는 대선과 정권 교체가 맞물리면서 예고가 늦춰졌다.

서울교대 4학년 김모씨(22)는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라면 100일 전 예고가 문제 되지 않겠지만, 이 정도로 급격한 변화를 시험 직전에 일방 통보한 건 황당하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 4학년 안모씨(27)도 “최소한 올해 초라도 교육청에서 이런 상황을 알렸다면 휴학 등을 고민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이미 시험이 코앞이라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이라며 답답해했다.
서울교대생과 이화여대 초등교육학과 학생들이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교육청 앞에서 2018년도 초등교사 선발 인원 대폭 축소에 항의하며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오종택 기자
교대는 교원 양성을 주 목적으로 하는 대학이라 졸업생 대부분이 초등교사로 임용돼왔다. 서울교대의 경우 졸업생중 90% 넘게 교원임용고시에 합격한다. 이런 가운에 교대생들로부터 '임용 절벽'을 항의하는 목소리가 나오자 '집단 이기주의'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극심한 구직난에 시달리는 또래 취업준비생, 또 임용고시 경쟁률이 초등교사의 10배에 이르는 중등교사 임용시험 응시자들(사범대 출신)로부터 "이기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서울교대 학생들의 온라인 익명 게시판(대나무숲)에 '죽어도 시골(학교) 가기 싫다'는 글이 오른 뒤부터는 "대도시에서만 일하려 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교대생들은 답답한 심정을 털어놨다. 서울교대 4학년 정모(22)씨는 “정책실패의 책임을 학생에게 전가한 교육당국을 비판하고 해결을 요구한 것인데 어느 순간부터 교대생들이 '경쟁하기 싫어 생떼를 쓰는 이기주의자'로 매도 당하는 듯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 4학년 안씨도 "해당 사이트는 누구나 글을 남길 수 있는 익명 게시판이고, 사람들이 문제삼는 글 역시 서울교대생이 썼다고 확인된 바 없다. 이런 글이 서울교대 학생 전체 의견인양 왜곡돼 서울교대생 전체가 매도되니 참담하고 눈물까지 났다"고 말했다. '임용 절벽' 사태의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최종 시한은 올해 임용시험 최종 공고일인 다음달 14일이다. 조희연 서울교육감 등은 ‘1수업 2교사제’의 조속한 도입과 OECD 수준에 맞춘 교사 정원 확대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교육부 관계자는 "‘1수업 2교사제’의 경우 정책내용이 아직 구체화되지 않아 당장 이를 도입해 교사 정원을 확보하는 건 사실상 어렵다"고 밝혔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교육청 차원에서도 추가 정원을 확보할 방안을 모색 중이나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며 “최악의 경우 사전예고에 고지한 인원만 임용하게 될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박형수·이태윤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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