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서문이라도 읽자']무릇 예술가란 황석영 같아야 한다

2017. 8. 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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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은 자신의 생애를 회고한 책 <수인>에서 등장인물들의 몸짓과 목소리를 3D 영화처럼 재현시킨다. 그래서 김일성이나 문익환이나 백기완 같은 사람들이 바로 눈앞에 환영처럼 서 있는 듯하다.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문화사가인 아르놀트 하우저는 예술가를 술집 여자에 빗댄 적이 있다. 술집 여자는 매상을 올리기 위해서 손님들과 얘기도 하고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른다. 얼핏 보기에는 술을 아주 잘 마시고 노래도 즐거워서 부르는 듯하다. 손님들은 안주도 더 시키고 비싼 술도 시킨다. 술집 여자는 한편으로는 즐겁게 술을 마시고 노래도 부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자리의 매상을 계속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이 아슬아슬한 균형이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에잇 까짓 거 오늘 같은 날 마시고 놀아요 하는 듯싶지만, 속으로는 냉정하게 계산을 해야 한다. 예술가란 모름지기 그와 같다는 게 하우저의 생각이다.

이름난 무당을 예로 들 수도 있다. 이를테면 전남 진도의 김대례, 조공례 같은 씻김굿의 대가들 말이다. 죽은 자의 넋을 위로하고 산 자의 슬픔을 어루만지는 굿을 펼치는 씻김굿. 한편으로는 유족들을 울리고 웃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조문객들을 두루 다 살펴서 초상집 사람들의 감정으로 극단으로 휘몰았다가 다시 단속하면서 고인을 추모도 하고 서로들 음식도 나눠먹을 수 있도록 해가면서, 몇 시간이고 굿을 펼친다. 슬픈 감정의 극단을 달리면서도 한편으로는 냉정하게 상황을 통제하는 것, 그것이 예술가의 제1 덕목이다.

최근의 영화로 예를 들면 <군함도>나 <택시운전사>가 영화 외적인 측면에서 꽤 의미가 있고 관심도 높지만, 실제 작품에서는 영화감독의 생각이나 감정이 스크린 밖으로 거의 흘러넘치는 바람에 오히려 작품에 몰입하기 어려워졌고, 일제의 만행이나 광주 학살의 비극이 감상적인 눈물로 얼룩져버리고 말았다. 두 영화의 감독이 소재의 중압감 때문에 영화의 내러티브와 캐릭터를 냉정하게 통제하지 못한 까닭이다.

소설가 황석영이 지난 6월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열린 자서전 「수인」 출간 간담회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 문학동네 제공

놀랍도록 냉정하게 스스로를 통제하다

이 관점에서 국내 최고수를 꼽자면 단연 황석영이다. 비록 <개밥바라기별>이나 <강남몽>같은 태작도 있지만, 황석영은 수많은 작품들에서 변화무쌍한 감정 전개를 하면서도 놀랍도록 냉정하게 스스로를 통제한다. 하나의 장면에 불과 얼음이 공존한다.

<삼포가는 길>에서, 자기 땅에서 유랑민이 되어버린 세 사람이 눈발 날리는 들판을 걸어가는 장면을 보라. 마치 네 사람이 걷는 듯, 황석영은 세 인물 사이에 끼어들어 그들의 감정을 깊이 어루만지지만, 동시에 또 하나의 황석영이 있어 그는 들판 저 너머에서 세 사람을 그윽하게 조망한다. <객지>나 <섬섬옥수>의 마지막 장면에서, 황석영은 이제까지 해온 얘기를 단번에 박살내버리는 충격적인 대사를 던짐으로써 한창 그 두 작품의 상황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독자들 마음을 뒤흔들어 버린다.

<한씨연대기>에서 한영덕이 취조 받는 장면, <손님>에서 주인공이 비행기 안에서 혼령과 얘기하는 장면, <오래된 정원>에서 쓰디쓴 상처를 입은 여자가 멍하니 혼자 스산한 풍경을 내다보는 장면들에서 황석영은 독자들 마음속을 다 헤집어 놓는다. 그래서 독자는 그 상황 속에서 마음 깊이 울고 있거나 정신없이 웃고 있는데, 정작 소설가는 멀찌감치 물러나서는 왜? 슬퍼? 재밌어? 자, 그럼 이런 얘기는 또 어때? 하는 것이다. 그가 소설이 아니라 가짜 명품이나 약효가 의심스러운 약을 팔아도 우리는 아마 다 샀을 것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생애를 회고한 책을 냈다. <수인>이 그것이다. 사실 오래 전에 직접 들은 얘기로, 그는 소설가가 생전에, 그러니까 죽기 전에 자기 이름으로 된 문학비를 세우거나 문학촌장 같은 노릇을 하는 것 그리고 자기 생애를 회고하는 자서전을 쓰는 일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오로지 작품, 그 하나이자 여럿인 세계를 남기고 떠나는 것이 작가다운 태도라는 입장이다. 앞의 두 가지는 그런대로 지켜냈고, 짐작하건대 그가 자기 이름으로 된 문학비나 문학촌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일 같은 건 하지 않으리라 믿어지는데 자서전은 글쎄, 황석영 정도라면 집필하여 출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게 평소 내 생각이다. 황석영이 아니라 해도,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을 써낸 작가라면 유명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처럼 <나의 길 나의 삶> 하는 식으로 천편일률의 자화자찬을 써내지도 않으려니와 특히 황석영이라면, 그의 개인사가 곧 한국 문학사이고 부분적으로는 한국 현대사이기 때문에 기록해야 할 일종의 의무도 있는 것이다.

황석영은 관념의 기억이나 다중복화술 대신 정공법으로 썼다. 대신, 나는 어디서 태어났고 어느 해에는 무엇을 했다는 식의 전개는 아니다. 그가 <손님>이나 <심청>에서 리얼리즘 작가지만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고 현실과 몽환의 경계를 지웠듯이, 자전 기록 <수인>도 시공간의 경계가 복잡하게 얽혀 들어간다. 70을 훌쩍 넘긴 작가의 회한의 문장들 사이에 한숨으로 배어 나온다.

「수인」의 책 표지 사진
1000페이지에 달하는 ‘황석영 극장’

이 작품에는 황석영도 있지만, 그의 몸을 관통하여 현대사의 수많은 인물들이 북적거린다. 쾌걸 이문구를 시작으로 칼끝을 가는 김남주, 분기탱천하는 채광석 같은 문학인에, 광주의 윤상원, 밀항하는 윤한봉, 거한 백기완에 거목 문익환 등이 페이지마다 등장한다. 신학철이나 임옥상 같은 화가가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을 집단 초상화로 그려도 될 법하다. 김대중이나 김일성 같은 그야말로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인물들 역시, 생생한 장면으로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청년 황석영이 노가다판이나 구로공단에서 만난 사람들, 중년 황석영이 국내외 곳곳에서 만난 사람들, 방북 이후 황석영이 5년여 감옥생활에서 만난 무명초들이 그의 대하소설 <장길산>처럼 곳곳에서 출몰한다. 그저 누구누구를 어디서 만났더라가 아니라, 황석영은 그들의 몸짓과 목소리를 3D 영화처럼 재현시킨다. 그래서 김일성이나 문익환이나 백기완 같은 사람들이 바로 눈앞에 환영처럼 서 있는 듯하다. 나는 김일성은 만난 적 없지만 문익환, 백기완 두 분은 멀리서나마 여러 번 뵌 적이 있어서 <수인>의 묘사가 얼마나 실감나는지를 보증할 수가 있다. 그들 각각의 출생지에 따라 팔도 사투리가 펼쳐지고 무식쟁이에서 대학교수, 안기부 조사관에서 북한 보위부 간부, 김일성 같은 최고권력자의 육성이 그 현장 그대로 들려온다.

앞서, 하우저의 술집 여자 비유를 했고 진도의 씻김굿 얘기도 했다. 조금 표현을 달리한다면, 무릇 예술가란 황석영 같아야 한다. 그는 수많은 작품에서나 마찬가지로, 자신의 생애를 기록하면서, 냉정한 거리를 날카롭게 유지한다. 독자는 이미 기록 속으로 들어가서, 황석영이라는 개인사를 통해 한국 현대사를 더듬고 있는데, 정작 황석영은 슬쩍 물러서면서 “그래가지구 말이야 어찌되었냐 하믄……” 하면서 다른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 책은 별도의 서문 없이 제목 그대로 <수인>이 되어 감옥에 갇히는 프롤로그로 시작하여 출옥하는 에필로그로 끝이 난다. 달리 ‘서문’이 없으므로, 프롤로그의 한 대목을 인용한다. 금세 당신은 1000페이지에 달하는 ‘황석영 극장’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안기부에서 조사를 받는 장면이다.

“당신은 북에 가서 김일성을 여러 번 만났으니까 아무리 못 살아도 한 칠팔 년은 살아야지.”

나는 팀장의 말에 이번에도 남의 말 하듯이 말했다.

“아이고 이제 고생문이 훤하겠구만.”

“뭘 그래요. 작가에겐 이런 게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찌개백반 아닌가.”

팀장이 말했고 수사관도 덩달아 덧붙였다.

“틀림없이 나가자마자 이런 얘기 다 쓸 거면서….”

“이 양반들 병 주고 약 주네.”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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