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한 맥주 없자 "콜라로" .. 석달 새 똑똑해진 '오페어'
처음엔 하루 100번 인식 오류
서울대 10년 축적한 AI기술 접목
아직은 걸음마, 가능성 무궁무진
"인재 유출 막을 장기 계획 세워야"
“히유.” 인간형 로봇 ‘오페어(AUPAIR)’가 한숨을 크게 쉬었다. 오페어가 작동을 멈출 때 나는 소리다. 오페어 연구팀의 한철호(27·서울대 컴퓨터공학부 박사과정 수료)씨는 “하루에 저 소리를 100번 넘게 들은 날도 있었다”고 말했다.
“오페어!” 연구원이 큰 소리로 불렀지만 오페어는 다른 곳만 쳐다보고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았다. 연구팀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오페어에 무선 인터넷으로 연결된 컴퓨터를 조작해 명령어를 다시 입력했다. “쟤 키우느라 얼마나 속을 썩였는지 몰라요.” 연구팀 리더인 이범진(28·컴퓨터공학부 박사과정 수료)씨가 오페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오페어는 장병탁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가 이끄는 바이오지능 연구실에서 태어났다.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해 지난 4일 연구실로 갔을 때 ‘오페어가 반갑게 맞아주고 음료도 가져다 주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오판이었다.
“주문하실 분은 손을 들어 주세요.” 오페어가 연구실에 딸린 거실로 나와 말을 걸었다. “무엇을 주문하시겠어요?”하고 물었다. 콜라·사이다·맥주 등의 주문을 받고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에서 진열된 음료를 확인한 뒤 거실로 돌아와 “콜라는 있습니다. 맥주는 없는데 다른 음료를 주문하시겠어요”라고 물었다. 누가 무엇을 주문했는지를 정확히 기억했다.
연구팀은 대회 출전을 위해 지난 4월 일본 소프트뱅크사가 개발한 인간형 로봇 ‘페퍼(pepper)’를 구매했다. 키 121㎝에 바퀴로 이동하는 페퍼는 보고 듣고 말하기 위한 센서가 장착된 인간형 로봇이다. 장 교수팀은 여기에 인간의 ‘뇌’에 해당하는 AI를 심었다. 장 교수는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오페어는 집안일을 돕는 가정도우미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때부터 연구팀과 오페어는 동고동락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간신히 전후좌우로 천천히 움직였고 명령어 입력이 조금만 잘못되면 멈춰버려 재부팅을 해야 했다. 오페어가 석 달 만에 급성장할 수 있었던 건 연구실에서 10년 넘게 개발해온 AI 기술 덕분이었다. 연구팀은 오페어의 두뇌에 해당하는 컴퓨터에 그동안 개발해온 음성인식, 대화기능, 상황판단 능력 등의 AI 기능을 부여했다.
기술력의 차이는 대회에서 증명됐다. 7~10분간의 제한시간 동안 오페어는 주어진 과제를 수행했지만 다른 팀의 로봇은 장애물에 걸려 이동조차 못하거나 같은 질문만 반복하다 시간을 넘겼다.
장 교수는 “PC, 스마트폰처럼 몇 년 뒤엔 모든 가정에 AI 로봇이 하나씩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외국으로 개발 인력이 유출되는 것에 대해 걱정했다. 페이스북·구글·아마존 등이 고액 연봉을 제시하며 관련 분야의 고급 두뇌를 입도선매하고 있고 최근에는 중국 대기업까지 한국의 인력에게 ‘러브콜’을 보낸다고 한다. 장 교수는 “인력 유출이 계속되면 기술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에게 능력에 맞는 대우를 하고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AI 홈로봇 ‘오페어(AUPAIR)’ 「▶ 키 : 121㎝ ▶ 몸무게 : 29㎏ ▶ 이동 수단 : 바퀴 ▶ 최대 이동속도 : 시속 2㎞ ▶ 장기 : ‘뽀로로’ 보고 아이와 대화하기, 음료 주문 받기, 아침에 잠 깨우기 」
송승환 기자 song.se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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